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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 넘어 사람 치료하는 치과의사 되길”

국립대치과병원 독립 법인화, 회무 헌신 등 봉사 ‘족적’
인터뷰/협회대상 공로상-안성모 치협 고문

협회대상 공로상 안성모 치협 고문

“과거로 돌아가도 회원들을 위해서라면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제40회 협회대상 공로상 수상자로 안성모 치협 고문이 선정됐다.


안성모 고문은 “치과대학에 들어와서부터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치과의사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었고 늘 치과의사로서의 삶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전제하며 “특히 협회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동안 함께 했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26대 집행부 임원들, 그리고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1974년 서울치대를 졸업한 안성모 고문은 서울 중구치과의사회 이사로 회무에 본격 입문, 부회장, 회장 등을 거쳤으며, 대한치주과학회에서도 재무이사를 지내는 등 치과계를 위해 다년간 헌신해 왔다.

그가 협회에 발을 딛게 된 계기는 바로 고 윤흥렬 전 세계치과의사연맹(FDI) 회장이었다. 안 고문은 “당시 FDI 재무이사였던 윤 전 회장이 FDI 차기회장 출마를 결심했을 때 치협 내에서 그 분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 회무를 자임했고, 이후 당선이 돼 한국 치과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3년간의 부회장을 거쳐 협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안 고문은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우선 2007년 9월 의대병원에 예속돼 있던 경북·부산·전남·전북대 병원 치과진료처의 독립 법인화(병원화)를 골자로 한 ‘국립대학치과병원 설치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가장 주목할 만한  회무 성과 중 하나로 회자된다. 이는 당시 치과 진료처가 의대병원의 재정, 인사권 예속에서 벗어나 독자 발전의 길을 걷게 됐다는 의미로, 궁극적으로는 치의학의 온전한 독립을 이뤄낸 쾌거였다.

# 7천여 치과의사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 선봉장

같은 해 3월 과천벌에 열린 ‘의료법 개정저지 범의료인 궐기대회’의 중심에도 안 고문이 있었다. 당시 의료인 단체장을 맡았던 안 고문은 전국 7000여 치과의사들과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나서 결국 당시 정부의 그릇된 시도를 막아내는데 큰 공헌을 했다.

대북지원사업과 관련 ‘단일 창구’를 개설한 것도 안 고문의 몫이었다. 협회장 재임 당시 치위협, 치기협, 치재협(현 치산협), 건치 등과 함께 남북교류 및 협력 사업을 위한 범치과계 단체인 ‘남북구강보건의료협의회’를 결성, 산발적으로 진행돼 오던 대북지원사업을 보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할 단초를 마련했다.

아울러 대외적으로는 의약계 대표들로 구성된 요양급여비용협의회 위원장직을 수행, 각 단체의 의견을 대변하고 아우르며 수가협상이 타결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내부에 산적한 현안과 제도들을 정리하는데도 주력했다. 특히 2008년 협회 내에 ‘치과의료정책연구소’를 개설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치과의료 관련 정책과 제도, 치과병의원 경영관리에 대한 정책연구 등을 통해 치과의료 발전과 국민 구강건강 증진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특히 협회장 직속으로 회원고충처리위원회를 신설, 회원들의 법률·기자재 분쟁, 건강보험 청구 문제, 배상책임, 환자와의 갈등 등을 발 빠르게 해소함으로써 회원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로서의 치협을 강조했다.

또 선언적이고 추상적 의미에 그쳤던 치과의사 윤리규범에 실질적인 용어를 담아 치과의사들이 지켜나갈 수 있도록 외부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치과의사 윤리규범’을 제·개정했다.

안 고문은 특히 “사실 협회장을 지내면서 회원들을 위해 한 일들로 퇴임 후 까지 개인적 고초나 불이익을 많이 겪었지만 당시의 선택을 결코 후회해 본 적은 없다”고 단언했다.

끝으로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안 고문은 잠시 생각한 뒤 치주과 은사인 최상묵 서울치대 명예교수의 당부를 소환했다. “구강만 치료하지 말고 사람을 치료하는 치과의사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