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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별

시론

봄이다.

매년 돌아오는 계절이지만 겨울이 끝나고 더위가 시작되기 전 까지의 짧은 시간이 더없이 소중한 봄이다. 이른 비바람에 빨리 져 버린 벚꽃을 아쉬워하자 철쭉과 영산홍이 이어 피어나고 있다. 주말이면 인근 공원에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겨우내 메말라 있던 산도 천천히 신록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얼굴에는 즐거움이 깃든다. 고달픈 일상의 피로를 잠시 떨쳐내고, 먼지가 물러난 따스한 봄바람을 만끽하고 있노라면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잠시 잊을 수도 있다.

이 좋은 계절이 어김없이 돌아왔구나….
사랑하는 이들과 항상 함께 하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이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질병으로, 사고로, 또는 시간의 흐름으로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면 남겨진 이들의 슬픔은 타인이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진료실에서 환자 병력 청취를 위한 상담을 할 때, 괴로운 통증이 이런 슬픔과 함께 시작된 경우를 발견할 때가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배우자, 부모, 형제, 그리고 자녀…… 눌렸던 슬픔이 다시 솟구치듯이, 의사의 ‘언제부터 아프셨나요?’라는 질문에 가족을 잃은 슬픔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환자도 있다. 환자의 증상을 빨리 파악해서 치료하고 다음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자세히 사정을 들을 수 없더라도 잠시 환자를 위로하는 시간을 두는 것이 좋다.

어떤 이별도 가벼울 수는 없다. 짧더라도 나와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환자가 겪은 이별에 애도를 표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남겨진 자의 슬픔.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는 그 감정을 타인이 평가해서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실 건가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요.’, ‘이제 그만 잊으세요.’
…잊을 수 있겠는가?
저런 말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말인가? 위로한다며 하는 말이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사별의 슬픔을 드러낸 환자에게 말을 이어 할 때 순간적으로 혹시라도 내가 하는 말이 더욱 환자의 슬픔을 되살아나게 하거나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소중한 이를 잃은 적이 있기에, 그 슬픔은 누가 위로한다고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겨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잠시나마 함께 애도하고 나서 환자의 현증을 다시 파악하는 질문을 천천히 이어간다. 사랑하는 것을 강요할 수 없듯이 슬픔을 멈추는 것도 강요할 수 없다.

다시 또 봄이다.
이 계절에 떠오르는 사랑했던 이들, 떠나보낸 이들, 소중했던 이들을 하나 둘 생각해본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리워해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들을 생각하며 보고싶다는 말을 홀로 되뇌어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수경 경희치대 구강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