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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치과의사의 위상,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4)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최근 학생들에게 물으니 사람들이 치과의사를 좋게 보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하더군요. 어떤 학생은 택시를 탔는데 치과대학생이라고 하니 치과의사는 사기꾼 아니냐,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하고요. 어떤 학생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치과에 가면 왜 그렇게 진단이 다르냐면서 힐난하는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치과의사가 점점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고, 이것 때문에 직업 만족도는 낮아지고 스트레스는 더 증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문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익명.

점점 치과의사로 일하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 치과의사는 여러 전문직과 함께 선생님 대접을 받았었지요. 선생이라는 칭호가 교사 외에도 남을 높여 부르는 표현으로 사용되긴 하지만, 전문직을 대상으로 하여 선생이라고 부를 때는 그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전문직은 존경받는 자리가 아닌 특정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뿐인 사람으로 비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사회가 점차 상업화되어가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물론 그런 부분이 없잖아 있습니다. 유사 부모-자식 관계에 속했던 스승-제자나 의사-환자 관계, 한쪽이 지식 등을 증여하고 받는 쪽이 그에 대해 보답을 하던 관계는 점차 경제적 교환 관계로 변해 갔습니다. 이제 진료를 받는 일이 의사 편에서 치료를 베푸는 일이라고 하면 환자도, 의사도 깜짝 놀라겠지요. 의사는 자신의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할 것이고, 환자는 자신이 받은 서비스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급하는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이런 상황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런 식의 환자-의사 관계는 부당하다고 말해도, 지금 다시 증여와 보답의 관계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아직 증여라고 하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친구 사이에도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이건 보통 선물을 주면 상대방도 그와 유사한 선물을 나중에 돌려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조금 다르지요. 스승이 나중에 제자에게 다른 걸 배울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 제자를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의사 또한, 나중에 환자가 자신을 치료해 줄 것으로 생각해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아니지요.

문제는 이런 교환 관계가 의사와 치과의사의 사회적 이미지를 부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겁니다. 의료 서비스의 적정 가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없고 사실 존재하기도 어렵지요. 한국의 의료 정책은 의료 서비스를 필수재로 놓고 저렴하게 많은 사람에게 공급하는 방법에 주안을 두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보험 정책은 급여와 비급여 진료를 나누고, 급여 진료에 대해서는 환자부담금을 무척 낮게 설정했지요. 이 정책은 당연지정제와 함께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는 데에 엄청나게 이바지했습니다. 외국에 가면 한국 의료보험이 좋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는데, 저도 미국 생활에서 보험이 있었음에도 아플 때마다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한국과 미국의 의료 접근성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바로 말하게 되지요.

안타까운 점은, 이런 정책하에서 치과의사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흔히 받게 되는 진료는 대부분 보험으로 묶여 있고, 그래서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과의 여러 분야와는 달리 치과는 급여 진료가 한정적이었고 사람들은 치과 진료를 받는 것을 어렵게 생각했지요. 비급여 진료가 많아서 비싼 데다가 치료받는 것은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환자 처지에서 좋아할 만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치과는 비싸다’라는 이미지는 곧 ‘치과의사는 수익을 밝힌다’라는 이미지를 강화했으며, 의료 서비스를 상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일반적인 것이 되자 결국 ‘치과의사는 돈벌이를 위해 진료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게 된 것은 아닐까 싶어요. 이런 인식을 강화했던 것은 진단이 일률적이지 않다는 것인데,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진단이라는 게 충치 몇 개라고 쓰여 있는 글을 읽는 것도 아니고 환자의 구강 상태를 치의학적 진단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지요. 이 번역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는데, 진단은 객관적 작업이라는(저는 이것이 하나의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퍼져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개별 치과의사의 진단 결과 차이를 마치 어떤 치과의사는 돈벌이를 위해 과다 진단, 과잉 진료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퍼지고 있지요. 슬프지만 여기에 일조하는 몇몇 치과의사도 있고요.

일전에 말씀드린 것 같지만 문제 있는 진료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과엔 큰 사회적 물의를 빚은 예가 있지요. 신해철법의 발단이 된 외과 의사라거나 한 연예인의 정신상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진단을 내려 제명이 된 데다가 환자들을 ‘그루밍 성폭력’했다고 고발당한 정신의학과 의사의 사례 말입니다. 치과라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런 사례를 일반화하여 ‘모든 치과의사는 문제다’라거나 ‘모든 치과의사는 사기꾼이다’라는 식의 표현이 나도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International Dental Journal』에 2014년 실린, 여러 국가의 DMFT(우식경험영구치율)를 비교한 논문을 접했습니다. 35~44세의 DMFT 값을 보니, 한국이 다른 국가(미국, 영국, 뉴질랜드, 네덜란드, 일본, 아일랜드, 이란, 그리스, 독일, 핀란드, 덴마크, 캐나다, 호주 등)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는 값을 나타내고 있었어요. 다른 국가는 다 DMFT가 10개 이상이었는데 한국은 5.21개였습니다. 값의 측정에 오차가 있을 수 있고 세부적으로 결손치, 우식치, 충전치를 세는 방식이 다를 수 있지만, 그걸 참작해도 압도적인 차이지요. 구체적으로 더 연구해 보아야 하겠지만 일단 논문 결과로만 볼 땐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더 건강한 치아를 가진 성인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성급하지만, 이런 결과를 구강 건강 향상을 위해 노력한 치과의사들의 공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한국에 치의학이 도입된 이래, 여러 선배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치의학은 이 땅에서 기틀을 다졌습니다. 치과의사들의 노력은 단기간에 구강 건강을 향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저는 믿어요. 이를 단지 환경이 개선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요. 치과의사의 이미지가 여러모로 부식되고 있는 현재, 우리는 이런 노력을 되살리고 알려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치과의사는 최선을 다한 진료로 국민 건강 향상에 일조해왔고, 앞으로도 진력하겠다는 말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우리 자신을 정의하는 기본값이 될 때, 더 ‘윤리적인 전문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리적인 기준을 향상하고 이를 알리면, 우리 자체의 윤리 의식 또한 성장할 테니까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