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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온도계 그리고 환자

시론

온 세상이 디지털 열풍입니다. 0과 1만이 존재하는 디지털 세상의 기본은 비트(bit)였으며, 16비트니 32비트니 하던 것들은 우리와는 좀 다른 세상의 언어인 줄 알았는데 이젠 주변의 모든 것이 디지털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이미 우리 삶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와 있습니다. 사진과 필름을 스캔하여 디지털 자료를 만들던 방식에서, 이젠 디지털이 그런 자료들을 직접 생성해냅니다. 손으로 적은 글씨나 그림을 스캔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펜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계산기에서 시작한 컴퓨터는 이제 각자의 손에 하나씩 들려있으며 이러한 디지털 기기들이 우리가 일하고 공부하고 또 놀며 커뮤니케이션 하는 삶의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습니다.

치과계는 어떨까요? 방사선 촬영장비가 디지털로 바뀐 지는 오래입니다. 치과모형과 인상채득의 과정이 디지털화가 되었으며 수복물을 만드는 과정도 일정 부분 디지털에 의존합니다. 치과 기자재 전시회에는 CAD/CAM과 구강 내 스캐너 그리고 3D 프린터 등의 열풍이 한창입니다. 현상과 인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가 이미 기성세대가 된 시간만큼 CT를 포함한 X-ray 장비가 디지털화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라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참 재미난 사실은 모든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모방하고 있으며 최선을 다해 아날로그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캐너는 어떻게든 인상을 채득한 것과 동일한 수준이 되려고 노력 중이고, 3D 프린터는 기공사에 의해 만들어진 수복물을 닮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0과 1로 만들어진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이 원자와 물질의 아날로그 세상을 점유해가고 있지만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장점이 있기에 결코 세상은 온전히 디지털화 되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시계와 온도계는 아날로그방식과 디지털 방식 모두가 지금 이세상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오른손을 들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어봅니다. 하나, 둘, 셋, 이렇게 중간 값이 없이 손가락을 오므려 딱딱 떨어지게 숫자를 세는 방식이 디지털이며 그래서 digit-al 입니다. 3시 3분에서 4분으로 디지털 숫자가 딸깍하고 변하는 그 동안에도 아날로그의 세상은 연속적으로 흘러갑니다. 내 몸무게는 76.6킬로그램과 76.7킬로그램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겉보기엔 디지털이 정확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날로그가 훨씬 더 정확합니다. 1에서 출발하여 2를 향해가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순간순간들이 바로 아날로그이며 아날로그의 정확성입니다.

흔히 충치라고 부르는 치아 우식에는 4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는 C1, C2, C3, C4라고 디지털방식으로 표시합니다. 하지만, 치아 우식은 연속선상에 있는 아날로그이며 그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결정하는 것은 디지털적 접근이 아닌 아날로그적인 접근이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치주질환 역시 그러한 연속선상의 흐름을 가진 아날로그적인 질환입니다. 우리는 치아를 스캔하고 CAD/CAM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만들고 또 끼워 넣는 일을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최신의 디지털 치료의 반대쪽에는 자신의 아픔과 불편을 알아주길 바라고 또 위로 받길 원하는 아날로그 인간이 환자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서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치아가 아닌 치아를 가진 사람을 진료하는 사람이 치과의사라는 학교에서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한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최신의 도구와 장비로 무장한 우리 치과의사들의 마음 속에는 공감하고 위로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더욱 굳건히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창진
미소를만드는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