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가슴이 뜨거워지는 진료

Relay Essay 제2350번째


세부 공항에 도착하여 배로 세 시간을 가야하고 배에서 내려 버스로 한 시간을 가야하는 카모테스 섬에서 연속하여 3년을 진료하니 이 지역 주민들의 구강위생 상태에 많은 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처음 진료 시에는 앞니가 조금만 썩어도 빼달라고 했던 분들이 이제는 다 썩어서 흔적만 남은 앞니를 치료해 달라 할 때에는 어이없었지만 그만큼 의식 상태가 변한 듯 하여 내심 흐뭇하였습니다.

다 같이 까만 앞니를 가지고 있었을 때는 누구나 창피하지 않았지만 치료를 받아 예쁘게 된 친구의 앞니를 보고 이제 이를 잘 닦아야하겠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을까요. 우리는 카모테스 섬에서 3년의 진료를 마치고 작년부터는 마닐라 인근 산 마태오 시의 도시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진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치료하실 때 이들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대하지 마시고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이웃으로 정겹게 맞이해주세요”라는 박 신부님의 당부와 함께 우리는 한분 한분을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면서 진료를 시작하였습니다. 간단한 충치치료 하나를 하려 해도 5명의 식구가 이틀을 꼬박 굶어야 그 치료비를 낼 수 있기에 치료를 포기하여 엉망이 되어버린 이들의 치아를 보면서 우리는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320명 진료 예상을 넘어 449명이나 치료를 했습니다. 이제 어떤 이는 극심한 치통에서 해방되었고 어떤 이는 어금니가 회복되어 음식을 먹게 되었고 또 어떤 이는 까만 앞니가 예쁘게 수복되어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지 않아도 됩니다.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프면 울기도 하고 치료 받기 싫으면 엄마 품에서 투정도 부리는데 수사님이 돌보는 길거리에서 사는 부모도 없는 아이들은 아픈 주사를 맞아도 신음 소리 하나 못 내고 닭똥 같은 눈물만 말없이 쏟아냅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박상우 원장도 같이 울었고 보조하시는 선생님들도 같이 울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애틋한 마음들이 있어 매년 자기 치과를 비우고 더운 곳에서 고생을 스스로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진료를 하는데 갑자기 감사와 행복이라는 마음이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했고 이런 진료를 하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더워 흘린 땀과 눈물이 함께 흘러내렸습니다.
감사할 분이 많이 계십니다. 6개월간 준비해주신 간사님들, 그들과 함께 살아가시는 수녀님들, 최안나씨와 임형석 문화 팀들. 약을 주시면서 유창한 타갈로그어로 자세한 설명을 해주신 오마리아님. 밝게 웃으면서 헌신해주신 우리치과 실장님을 비롯한 위생사 선생님들 그리고 라인실씨, 한결같이 약품들을 주고 있는 내 친구 김병정 원장. 열심히 기구를 소독한 나현이와 마리아씨 그리고 제일 고생하시어 너무나 감사드려야 할 박상우, 장정훈 원장님. 모두에게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쁜 하루하루였습니다. 내년에도 즐거운 소풍 같이 갑시다.

P. S: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잘 난 척하는 마음인 듯하여 사양하였지만 이런 것도 알려야 다른 이들이 동참하게 된다는 청하시는 분의 말씀도 일리가 있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실수도 많이 하여 부끄러운 마음 가득합니다. 일일이 용서를 청할 수 없어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이충규
성심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