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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치

시론

저는 지금 한국을 떠나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올 때, 이러한 결정을 했을 때 그 이유를 많이 궁금해 하시고 어떤 분들은 걱정하기도, 어떤 분들은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동안 치과의사로 지내오면서 레지던트에서 공보의로 강사로 개원의로 형태는 바뀌었지만 일률적으로 해왔던 고민들의 답을 풀고 다시 시작하고자 잠시 일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미용사나 이발사와 참으로 비슷합니다. 우선 근무하는 공간과 체어부터가 닮았습니다. 근무하는 자세도 비슷하고 선배에게서 일대일 대면 교육을 받는 도제식 시스템이나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는 면에서 많은 부분이 비슷합니다. 같은 조상을 가진 직업 사이이기 때문에 형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러 가면 그분들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곤 합니다.
 

다음은 건축가와 비슷합니다. 저희는 입안에 도시를 건설하는 건축가 입니다. 도시의 건물과 도로와 상하수도와 전기 시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입안의 치아와 혀와 잇몸과 입술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그 안에서 각 치아가 각자의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흐름을 만들어 입술에서부터 연구개를 지나 식도까지 가는 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도시를 계획하 듯, 여기에는 이런 방법으로 요런 형태의 이런 치아를 만들고 요건 방해되니 치워주고 하는 설계를 고민하는 과정이 참으로 재밌습니다.

다음은 경찰관과 비슷합니다. 경찰 본연의 의무는 사후 문제 해결이 아니라 범죄 예방에 있듯이, 치과의사의 본연의 의무는 망가진 치아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발생 예방에 있습니다. 치아 하나의 가치가 얼마인지 가격을 매길 수 없지만, 수백을 준다고 해도 입안의 치아와 바꾸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구강건강은 커다란 다이아몬드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는 그 다이아몬드가 상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닦아주고 광을 내주고 도둑들이 못 훔쳐가도록 금고 속에 든든히 지켜주는 경찰관입니다.
 

마지막으로 치과의사는 축구팀의 감독과 비슷합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원장님들, 실장님, 위생사 스탭분들을 잘 묶어서 팀을 이끌고 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팀원들의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모여있는 곳은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기에 이런 갈등이 팀에 영향을 주기 전에 조기에 진화하는 것은 팀을 관리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저희는 너무나 연약합니다. 가족과 환자와 동료들 앞에서 강하게 보이려 어른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이만 먹었을 뿐 30년전 매일 울던 소년에서 한발짝도 성장하지 못한 자아의 한 부분이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저희는 저희 스스로는 연약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타인을 대할 때는 타인에게 완벽한 성인의 완성된 인격을 기대합니다. 책임감, 성숙함, 자제력과, 성실함이 우리가 생각하는 성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남을 비난하고 상처를 줍니다. 저는 팀원들에게 성숙을 바라기 보단 성숙하지 못한 동료를 이해하는 너그러운 마음과 포용을 조금 더 부탁하는 편입니다.
 

치과의사는 참 멋진 직업입니다. 보람도 있고 좋은 직업이지만 가끔은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치아를 뽑아야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치아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들지만 이를 뽑은 자리에 튼튼한 새로운 치아를 만들었을 때 느끼는 뿌듯함과 환자분에게 감사 인사를 들었을 때 마음으로 다가오는 감동은 좋은 차를 사거나 아무리 좋은 곳을 여행하더라도 느낄 수 없는 인생의 큰 기쁨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인생의 발치를 결정 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 동안 가졌던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쓰리지만 시간이 지나서 이곳에 단단한 뼈가 자라면 튼튼하고 멋진 이를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개구리가 더 멀리 뛰기 위해 웅크리는 것처럼 올해는 잠시 웅크리며 새로운 도약에 대해 고민해 보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치는 포기가 아닌 치료의 시작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강희
연세해담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