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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안부

스펙트럼

한 번씩 카카오톡을 열어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구경하곤 합니다. 잘들 살고 있나 궁금할 때면 메시지를 보내 인사를 건네기도 하죠. 그러고 보니 기술의 발전이 개인주의를 공고히 하는 데에만 기여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안부를 묻기에도 썩 괜찮은 기술이니 말이죠.

제 카카오톡 친구 중에는 이미 몇 달째, 그만 살고 싶다며 속을 썩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화창을 열어보니 제가 읽고도 답장하지 않은, 소위 ‘읽씹’ 한 메시지가 펼쳐집니다. 선선한 바람에 산책을 나섰다가 문득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봅니다.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형 안녕하세요.”
녀석은 저와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온 동생입니다. 어머니는 어릴 적 집을 나갔고, 일용직 아버지와는 연락이 쉬이 닿지 않았기에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남다른 성장 배경 탓에 사회성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아, 단순 노무 업종에서조차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또 어느 공장에서 어떤 일을 얼마 동안 하다가 쫓겨났노라, 녀석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아버지는 좀 어떠셔?”
더는 제가 해줄 만한 잔소리도, 조언도 없기에 화제를 돌립니다. 아버지의 안부 말이죠.
“재작년인가? 형이랑 갔다 온 뒤로 가본 적 없어요.”

녀석의 아버지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채 일용직으로 지내다가, 수년 전 사고를 당해 신체의 절반이 마비되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병원을 찾아간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고작 요양병원으로 전원시키는 것밖에 없었지요. 주민등록을 복구시켜 요양급여 수급권자로 만든 뒤, 한 명의 조선족 간병인이 스무 개의 베드를 책임지는 곳에서 ‘요양’할 수 있게 말입니다.

물론 제 역할이 거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주민등록을 복구하니 체납되었던 건강보험료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아들에게 부과되었기 때문입니다. 되돌릴 방법은 물론 있었습니다. 이 부자의 관계를, 아주 없었던 일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천륜을 저버리는 일은 서류 한 장이면 충분했습니다. 글을 잘 알지 못하는 아들, 신체가 마비되어 글을 쓰지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제가 작성한 ‘가족관계단절 신청서’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실없는 대화를 이어 나가던 녀석이 잠시 침묵하고는 말합니다.
“형 저 컵라면 기프티콘 하나만 보내주세요.”

기프티콘을 따로 사서 보내기 귀찮으니 그냥 계좌번호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이제 치과의사도 됐는데 선심 좀 써야지 싶어서 10만원을 눌렀다가, 5만원만 보냅니다. 컵라면 말고 몸에 좋은 것을 먹으라는 말 대신, 세일할 때 박스로 사다가 아껴서 먹으라고 합니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최근 들어 받고 전한 안부 인사는 모두 반가운 것이었습니다. 교수님, 원장님, 선생님까지 모두 안녕했고, 안녕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오늘 모처럼 달갑지 않은 안부를 묻고 듣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어떤 안부를 물으시겠습니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승현
강릉원주대 예방치의학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