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銀退와 金退, 정신 차려 보니 隱退

Relay Essay 제2353번째

은퇴했다. 1975년 9월 6일 시작하여 2019년 2월 28일 폐업신고를 하니, 근 44년을 당산동에서 개원 치과의사로 봉직했다.

‘벌써 은퇴하세요? 아직 정정 하신데.’
‘은퇴라니 섭섭하지 않으세요?’

막상 은퇴를 결심하니 섭섭했다.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가슴이 뻥 뚫린 듯 한 허전함.
‘은퇴라니요. 금퇴랍니다. 다시는 스트레스도 없고 자유만 만끽할 수 있는 생활로 들어가는데 銀퇴라기 보다 金퇴가 맞지 않나요?’

하긴 교도소로 들어가거나, 부도를 내고 숨어 버리는 銅퇴도 있으니……, 은퇴도 행복이지요. - 하 하 -
그리고 보니, 은퇴에도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있네, 저절로 실소가 나온다. 그러나 사실 은퇴는 슬픈 것이다. 금, 은, 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퇴는 한문으로 隱退이다. 숨을 隱자는 남이 찾지 모하는 곳에 가는 것이다. 흑석동 211번지에서 이 세상에 온 나는, 이제 코끼리처럼 죽을 때 숨어 버리는, 진짜 은퇴의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코끼리는 죽을 때 제 자리로 간다. 모든 동물이 죽을 땐 제자리를 찾지만 특히 코끼리는 코끼리 무덤에 가서 자신의 주검을 숨긴다. 이런 코끼리의 최후가 진정한 隱退이다.

우리 나이로 75세이니, 친구들과 노래방엘 가면 ‘애창곡- 내 나이가 어때서’가 귀에 못이 박힌다. 더러는 꽃중년이라고, 100세는 아직 멀다고 추태를 벌린다. 그 후렴에서 난 매번 가사를 바꿔 부른다. ‘사망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사망(死亡-죽어 없어짐)은 축복이다. 다시는 배고프지 않고 춥지도 덥지도 않고 밉지도 예쁘지도 않고 오직 참 평화의 세계이다. 사실 이 세상 현세는 남을 잡아먹어야 하는 지옥, 바로 굶주린 악귀들의 아비지옥(阿鼻地獄)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생명을 잡아먹고 6시간만 지나면 허기가 지는 지옥이 이 세상이다. 이 아비규환 중에도, 이빨을 만들어 아비지옥 활성화를 도운이가 바로 ‘나’ 였다. 그리고 보니, 그 죄가 아비지옥인 이 세상을 넘어 저승에 미칠까 무섭다.

아비지옥인 이 세상. 식욕이 너무 왕성해 사람도 잡아먹는다. 국회를 속어로 National Diet라 하는데, Diet는 요즘 젊은이들은 ‘살 뺀다’로 알지만, 원래의 뜻은 그 반대인 ‘밥 먹는다’라는 뜻이다. 식사조절로 살빼는 것을 ‘Diet Control’ - 직역하면 식사조절인데 단어 2개를 하나로 줄여 앞부분만 부르다 보니 먹는 게 살 뺀다로 와전되고 말았다.

각설하고 국회는 National Diet - 국가대표 식당이므로 대통령도 잡아먹어 대통령 탄핵, 그 외에도 중상모략으로 진흙탕 개쌈을 하는 투견장인데, 이 들이 젤 잘 먹는 것은 밥보다 고기 그것도 애매한 죄 뒤집어 쓴 사람 잡기라는 의미가 National Diet라는 비속 영어에 있으니 사람 사는 모양은 古今同 東西同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이렇게 정 떨어지는 지옥을 벗어나는 죽음을 왜 그렇게 싫어할까? 막상 은퇴하니 뻥 뚫린 듯 마음이 허전한데 죽음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가진 것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는 고기잡이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벼락으로 멸망할 때 롯의 가족은 천사의 안내로 구함을 받는다. 이때 천사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가 너무 궁금하여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 보다 소금 기둥으로 변한다.

돌아보지 않고 평생 사랑한 어업을 버린 체, 주님만 따르는 베드로의 행적이 은퇴자의 모습니다. 그래서 가수 노사연은 이렇게 노래했다. ‘돌아 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같은 눈물 흘리지마라.’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 그렇게 신바람 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내일이면 오늘보다 좋아지겠지 하면서 내일을 꿈꾸며 잠들었고, 내년이면 금년보다 더 좋아지겠지, 학교에 가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중학교에 가선 고등학교 가면 얼마나 좋을 까? 대학교 땐 졸업 후 꿈에 부풀고, 군 생활 시절엔 제대 날짜를 달력에 새기고 기다렸으니, 늘 더 좋아질 것이라는 어릴 적 희망이 가시지 않았다. 현재명 선생께서 작곡하신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하다는 ‘희망의 나라로’ 소년시절 나의 희망, 꿈이었다.

그러나 그 가사의 내용 중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한 곳 희망의 나라가 현실이 아니라는 것, 그 나라가 대한민국도 아니라는 사실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유, 제한되었고, 평등은, 평등하지 않았다. 평화? 평화는커녕 6·25 난리 통에 자라나 월남 전쟁에서 가장 많이 죽은 내 친구들.

평화라기보다 전쟁의 상처 중에 살았다. 그리고 행복? 행복은 부정하지 않는다. 늘 사랑하는 나의 조국, 나의 이웃, 나의 친구 그리고 내 가족이 있어서 행복했지만, 그래도 어머니와 사별, 형제와 친지은인의 사별로 그 행복도 한시적이었다.

현재명 선생님의 희망의 나라는 내 조국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빨을 다루면서 이런 흉기로 어린 생선 불쌍한 가축의 살과 피를 씹고, 맛집을 찾아 눈을 밝히는 이 세상은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언덕에/ 산천 경계 좋고 바람 시원한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희망의 나라로-
 

70대가 된 뒤 현재명 작곡의 가곡 ‘희망의 나라로’를 매일 맘속으로 불렀다. 불교에선 이승을 고해(苦海)라 한다. 바로 ‘험한 바다 물결’이다. ‘건너 저편언덕’은 한문으로 피안(彼岸)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선 피안이 저승이다. 저승이 자유 평등 평화 행복 넘치는 희망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 긍정인가.

가까운 장래 인생의 참 은퇴를 만나 반달 쪽배를 타고 은하수를 건널 때 희망의 노래를 부르리라.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한 곳’에 가면, 32세 젊은 나이에 사별한 꿈에서조차 애타게 그리던 어머니를, 그리고 한돌 반 아기 때 사별하여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나를 쪼쪼망(작고 작은 막내)이라 부르시던 그리운 아버지와 하나되리라.
 

 김평일
전 김평일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