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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스펙트럼

할리웃 남자 배우 중에 믿고 보는 배우가 있다. 성 정체성에 혼란이 있지 않는 한 남자가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데, 확실한 성 정체성 하에 철저하게 여배우만 따라다니며 영화를 골라보다가 브래들리 쿠퍼라는 남자배우가 눈에 익어버렸다. 눈, 코, 입, 키 어느 한 군데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없는데, 이 배우가 출연한 영화이고, 앞으로 대세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여배우 다니엘 로즈 러셀의 러블리한 청소년기 외모를 볼 수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적은 비교적 좋지 않았던 영화가 있다.
 

알로하… 제목부터가 흥행 키워드는 아니고 내용에도 그다지 임팩트는 없다. 그러나, 단 한 군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브래들리 쿠퍼와 한 남자 군인이 눈으로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 남자 대 남자로 주고 받은 눈빛 대화 몇 마디로 한 가정이 파멸을 면하고, 시대의 러블리, 다니엘 로즈 러셀이 연기한 복잡한 가정사의 어느 소녀도 제 갈 길을 잘 가게 된다. 영화는 영화일 뿐, 눈으로 어떻게 말을 한단 말인가… 예쁘고 잘 생긴 배우들 보는 맛에 소파와 일체가 되기에는 족함이 없는 영화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브래들리 쿠퍼와 점 하나 닮은 곳이 없는 내가 마치 영화 알로하 속의 브래들리 쿠퍼가 된 양 눈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일 년차 때 막내로 들어와 이제 어엿한 4년차 치과위생사가 된 직원이 구강카메라를 들고 원장실에 들어왔다.
 

“원장님, 제가 이거 고장 냈어요~. 비닐 커버를 벗기는데 여기 이 부분이 부러져서 딸려 나왔어요. 일단 제가 테이프로 감았거든요. 작동은 돼요. 죄송해요, 원장님~ 허허허허.”

흉내를 낸 건지, 닮아버린 건지… 나와 비슷한 웃음소리로 웃으면서 머쓱해하는 직원을 바라보며 문자 그대로 할 말을 잃은 나는 어느새 브래들리 쿠퍼와 혼연일체가 되어 눈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네가 부순 게 얼마짜리인 줄 아니… 산 지 일 년 밖에 안 됐는데… 힘도 좋구나… 비닐로 플라스틱을 부러뜨린 걸 보니 참으로 신속했겠구나….’
 

화내지도 찡그리지도 않은 나의 눈빛은 치과위생사 이력서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이 시대, 이 나라 치과의사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으리라. 구강 카메라를 받아 들고 부서진 끄트머리를 만지작 거리다가 “여기를 꽉 잡고 한 번만 더 감으세요. 물 들어가면 안 되니까….” 간신히 입을 떼고 다음부터 조심하라는 말도 미처 못 한채, “허허허허~” 한 번 더 웃으며 돌아가는 직원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도 말 안하고 숨긴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비단 이 뿐이랴… 말로만 듣던 조선시대 며느리 벙어리 삼 년이 내 일이 될 줄이야. 그나마 사회생활, 직장생활 처음 하는 와중부터 지금까지 분란 일으키지 않았고 떠나가지 않았으니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말 때문에 위기를 맞은 게 몇 번이고, 말로 떠나 보낸 직원이 몇이었는지, 개원 10년은 어쩌면 이들과 말없이 눈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브래들리 쿠퍼처럼 눈으로 말한 기쁨도 잠시… 눈으로 말할 줄 알아도 원장 노릇하기가 조선시대 며느리 노릇하기보다 더 어렵다는 우리나라 치과계의 현실로 금세 돌아와야 했다. 근무제, 직원 월급의 변화만 보아도 마음만으로는 좋은 원장이 되기 힘든 상황이 된 것 같다. 요즘 어렵다는 평범한 자영업자들만큼 어려우랴 만은 치과의사들에게도 참으로 견디기 쉽지 않은 시절이 온 것 같다.
 

어려운 시절에 적응해 온 치과의사들의 노력을 직원들이 알아주고 화답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침 알로하(Aloha)의 뜻을 알아보니, 그 뜻이
 

A-Akahai (아카하이): 친절, 부드러움
L-Lokahi (로카히): 통합, 조화로움
O-Olu’olu (올루올루): 화합, 기쁨
H-Ha’aha’a (하아하아): 겸허, 겸손
A-Ahonui (아호누이): 참을성, 인내
 

라고 한다. 조건 없이 사랑하고 서로 화합하고 존중함이 요지다. 하루 여덟 시간 이상, 많게는 열 두 시간까지 함께 생활하는 우리 직원들… 직원과 직원 간, 직원과 원장 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각자의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길 아니겠는가.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 직원들을 바라볼 때 아쉬운 마음 그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어른인데 모범을 보여야하지 않겠는가. 억지로라도 방긋 웃어야하지 않겠는가. 할 말이 있어도 감정을 삭힌 채 눈으로 말하고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를 부릴 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조금 힘들어도 내 치과 분위기는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나직하게 읊조려보자. 알로~하.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곽재혁
좋은이웃치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