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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할 것인가?

시론

나는 1964년 9월 끝자락에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에서 태어났다. 아버님은 법원에 근무하시는 공무원이셨고 어머님은 여장부인 가정 주부셨다. 위로는 누나가 3명이 있고 내가 태어난 이후 2년 터울로 남동생 둘이 태어났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바로 위 누나와는 중 3때까지 항상 으르렁 거렸다. 나보다 2살 위 누나와 동생들에게 한 없이 미안하다.

1974년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나는 장흥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보냈다. 장흥초등학교 1학년 겨울 아버님은 광주로 발령이 나셨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에 광주를 처음 보았다. 광주는 도시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광주 효동초등학교로 옮겼다. 어머님의 지극한 정성과 담임선생님의 관심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님 직장인 법원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며 또 학교를 옮겼다. 초등학교 3학년은 조금 철이 들던 시기여서 새로운 친구들과 다시 사귄다는 것이 부담되었다. 1974년 초등학교 4학년 동산초등학교에서 1년을 보내고 4학년 때 반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반장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동산초등학교 1년 생활뿐인 내가 반장이 되는 것을 반 아이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극히 조심하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 되었다. 경쟁에서 진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1984년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고 입학하자 바로 사진반에 가입하였다. 198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근교 공대에 원서를 내려는 나를 담임선생님께서는 극구 만류하고 성적과 전혀 상관없는 서울의 한 치과대학 원서를 써주셨다. 유일한 합격의 행운은 모집정원 미달이었지만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경쟁률은 모집정원을 넘었다. 1년간의 서울에서의 재수생활은 무념무상 그냥 공부만 했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내가 가장 놀랐다.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 6년 동안 본부대학 사진 동아리 ‘한나래’에서 활동을 하였다.

1994년 개업 2년차 7년 선 만에 결혼을 했다. 1990년 대학을 졸업하고 1993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에 대덕치과를 개업하였다. 아버님 환갑이 1990년이기에 당신 환갑 전(국시 마치고 바로)에 장남이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시며 본 3학년(1988년)부터 선이라는 것을 보기 시작하였다. 대학 2년, 공보의 3년, 그리고 개업 2년, 도합 7년 선을 보았다. 지금도 국가고시와 선보는 꿈을 꾼다. 7년의 선을 마무리하고 1994년 11월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을 하였다. 1994년 9월에 치주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 때 익힌 사진 찍는 기술을 이용하여 임상 사진을 찍었다. 1997년 “환자와 함께하는 치과이야기”를 나래출판사를 통해 출판하였다.

2004년 11년 만에 치주과 박사가 되었다. 1994년 치주과 석사에 입학 이후 드디어 11년 만에 박사학위를 마쳤다. 치주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석사시기에는 매주 목요일 오전에 임상 옵서베이션을 하였다. 치주과 대학원을 통해 치주에 대한 개념을 잡고 공부하였던 것이 1990대 초반 초창기 임플란트 시술 멤버가 되는데 큰 힘이 된 것 같다.

2014년! 독서모임에서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았고 나만의 독서 습관을 만들었다. 2000년대 초 지역 네트워크 치과를 만들기 위해 선배님과 후배들과 같이 모임을 하였다.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2006년 생각지 않은 사고가 터져 삶에 대한 모든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네트워크 치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치과의사가 아닌 다른 부류 사람들을 만나며 술로 4~5년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절을 하며 오늘도 무사하게 진료를 마치게 해주기를 빌었다. 7년의 방황이 끝나갈 즘 지인의 소개로 2013년 2월 16일 토행독(매주 토요일 오전 7시30분부터 9시까지 독서토론)에 가입하였다. 2014년 딸 아이가 고3이라 여름휴가 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보았다. 읽고 줄친 부분을 노트 오른쪽에 정리하고 왼쪽 빈 공간에는 정리한 내용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2014년 독서 습관이 완성되었다. 지금은 테마 별로 노트를 정리한다. 재능, 독서, 글쓰기, 역사, 플랫폼, 가족, 미디어, 마케팅, 심리학, 4차 산업혁명 등 테마 중에는 내가 선택한 것도 있지만 군에 있는 아들이 관심 갖는 테마도 있다.

2024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할 것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가슴에 와 닿는다. 인문학 타운을 만들어 상식이 통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 치과운영만으로 그 자금을 댈 수 없다. 그래서 사업이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이 부족하다. 나에게 부족한 모든 것이 책에 있다. 책에서 지혜를 빌려온다. 3% 사람만이 꿈을 갖고 타인에게 당당히 꿈에 대해 말한다고 한다. 원장실 책상 앞에는 나의 꿈을 그려 넣은 보물지도가 걸려있다. 보물지도를 수정하며 보물을 찾는 여행을 하고 있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싶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병기
대덕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