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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

Relay Essay 제2357번째

막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부활절이 옵니다. 저도 어떤 일로 죽었다가 다시 산 기분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한 해에 두서너 군데 문학상 심사를 하는 영광을 입습니다. 문예지, 문인단체, 그리고 일간신문 신춘문예 등 입니다. 최근에는 어느 일간지의 신춘문예 최종심 심사를 본 일이 있습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을 검토하였으나, 당선작을 뽑을 수 없었습니다. 심사위원 모두 의견이 같았습니다.

신춘문예는 아주 중요합니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수상자 작품을 체본으로 삼고 연습하는 유행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신문 신춘문예출신들의 권위를 위해서는 신인들도 높은 수준을 맞춰 주어야할 책임이 심사위원에게 있습니다. 신문의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은 문단에서 평생을 보장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당선작 없이 두 작품을 우수상(가작)으로 선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심사위원 두 분은 저보다 문단 선배이며, 대학에서 국문학 교수님으로 은퇴한 분이라서, 저는 몇 편을 고른 후 최종결정을 그 분에게 위임하였습니다. 그게 예의거든요. 그러나 보는 눈은 거의 비슷합니다.

이번에는 탈이 났습니다.  당선작 선정을 최종적으로 두 분에게 위임하였으나 선정한 작품을 보고 속으로 부아가 살짝 치밀었습니다. 왜냐면 우수작 선정에 속으로 점찍어 둔 제 의견과 조금 달랐거든요.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으나, 얼굴빛이나 표현하는 말투를 보고 제가 불만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겁니다. 이미 결정된 것을 저도 수긍하고, 식사를 대접 받고 왔습니다. (심사비는 회사 세금문제로 통상 통장번호를 알려주면 입금해줍니다.)

직장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어딘가 편하지 않았습니다.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폰 문자를 살펴보았습니다. 급히 보내준 심사위원장 글이었습니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작품으로 바꾸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정한 당선자와 달리 작품 10편이 모두 균일하다는 것입니다. 순간 제가 죽었다가 살아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작품은 이름이 감추어 있어 누군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응모자의 죽었다가 다시 산 얼굴이 상상되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답신을 하지 않았습니다. 규정상 심사위원회가 종결 된 후로 변경이 가능할 수 있는 지를 잘 모르거든요. 물론 당선시켰다가 다른 신문과 이중으로 당선되었거나 표절한 걸 뒤늦게 알면 취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지면으로 공식적으로 당선발표를 안했으니 변경을 해도 불법은 아닐 겁니다. 심사위원장의 권한이며, 또한 최종 결정을 위임하였으니까요.

저희 분야에서 교정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치아 이동을 통해서 얼굴 형태를 적극적으로 아름답게 해주는 분야지요.

아름다운 얼굴 기준은 무얼까요. 의사마다 서로 다른 이런 저런 기준이 있다면 치료 목표(소위 goal)는 어디일까요. 이때 통계를 만들어 결정합니다. 안모의 아름다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서로 수긍(compromise)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합니다. 이처럼 문학도 당대에 서로 수긍할 수 있는 미학적 기준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실험시를 쓰는 사람은 별도이지요.(이번 정월 아방가르드 작품을 쓰는 분들에게 주는 현대시 시인상을 받은 김인희 시인의 작품을 검색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문학상을 오래 전에 받은 일이 있기도 하고, 그 탓으로 심사위원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심사평을 해야 합니다. 일반인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난해한 시이지만 그것도 이론이 있기 마련입니다. 무조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다시 살아난 작품을 생각하니, 저는 심사위원일 뿐 응모자가 아닌데 제가 당선된 것 같아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400 면이 되는 평론집이 세 권이 있습니다. 드물게 모두 재판을 찍었습니다. 그 당선자가 제가 제시한 창작이론을 변증해준 것 같아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 당선자의 무궁한 문운을 기원해봅니다.
 

정재영 원장
정치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