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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Relay Essay 제2358번째


필자는 2019년 4월 30일부터 5월 11일까지 11박12일 일정으로 ‘성 야고보의 길’이라 불리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다녀왔다. 보고, 느낀 것을 간단히 적어본다.

흔히 그리스도교의 3대 성지라고 하면 로마, 예루살렘, 스페인 북서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분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다.

스페인을 포함해 유럽 각 나라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약 1000년 전부터 산티아고 대성당을 찾아오게 되어 산티아고 순례길이 생기게 되었고, 특히 1993년 유네스코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종교를 떠나 많은 세계인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매년 30만명 이상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한국인도 5000명 이상 이곳을 찾아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지난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삶 보다는 삶을 모색하고 설계한다.


티아고 순례길은 공식적으로 8개의 코스가 있는데 이중에 가장 길고 가장 아름다운 길은 프랑스 국경마을 생장 피에드 포트(Saint Jean Pied Port)에서 출발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가는 800km의 길과 스페인 사리아(Sarria)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가는 100km의 가장 짧은 길이 있다. 시간이 없거나 걷기 힘든 순례자들에게 사리아(Sarria)는 가장 인기 있는 출발지이다.

이번에 다녀온 길은 100km의 가장 짧은 길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나 여행자는 크레덴시알(Credencial)이라는 순례증서를 가지고 길 도중에 있는 성당이나 여행자 숙소(Albergue), 레스토랑, 카페 등에서 확인 도장을 받으며 걸어가는데 조금 번거롭지만 재미도 있다.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매우 흥미롭다. 생김도 가지가지, 차림도 가지가지, 나이도 가지가지, 사연도 가지가지이다. 모두가 가지가지이다.

걷고 싶으면 걷고, 쉬고 싶으면 쉬고, 화장실이 따로 없으니 남녀노소 길가 어느 곳이나 해우소가 된다.
이곳에서는 1등도 없고, 꼴찌도 없다. 경쟁이 없으니 여유롭고 매우 친절하고 행복하다. 서로 도와주고, 서로 걱정해주고, 서로 나누고, 서로 미소 지으며 ‘부엔 까미노’하며 인사한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는 좋은 여행되시라는 축복의 인사이다.
노란 조개껍질과 노란 화살표시가 그려진 표지석을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보면 한번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어 쉽게 친구가 된다.
 


걷는 길도 다양해서 들길, 산길, 숲길, 오솔길, 마을길, 아스팔트길, 올라가는 길, 내려가는 길 마치 인생살이와 같다. 뜨거운 태양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녹색의 벌판, 언덕 너머 파도치는 밀밭, 푸른 하늘 흰 구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떼들, 길가의 야생화, 달빛에 젖고, 햇빛에 바랜 중세의 건축물과 성당들 오랜 역사와 신화를 간직한 마을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걷다 보면 길가에는 Worry less, Smile more(걷는 길 힘들어도 웃으면서 걷자)라는 격문도 있고, Memento mori(죽음을 생각하라)라는 엄숙한 경구도 있다. 나무 십자가, 돌 십자가도 길가에 세워져있는데 이 길을 걷다 생을 마감함 사람을 기리는 십자가이다. 우물쭈물 하다가 너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이런저런 생각과 사연들을 만나면서 노란 가리비 표지석을 따라 걷다 보면 두 개의 표지석이 나란히 서 있는 곳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선택이 쉽지 않다. 삶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The road not taken)이 생각난다. 노란 숲속에 / 길이 두 갈래로 낳았습니다. /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 오랫동안 서서 / 한 길이 굽어 내려간데 까지 / 바라다 볼 수 있는데 까지 /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서울을 떠나기 전 가족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겠다고 말했더니, 당신 나이가 몇인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반대가 많았다. 그러나 걸을 수 있는 지금 가지 않으면 점점 어려울 것 같고, 살아온 삶도 총체적으로 뒤돌아보는 성찰의 시간도 갖고 싶었다.

이곳에 와서 길을 걸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하루 50리 씩 걷다보니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고통도 여행의 일부였고, 충분히 인내할 가치가 있는 의미 있는 여행길이었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쓴 책이 ‘순례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이 죽을 때 절대로 가져가서는 안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후회”라고 하였다.
돌아보면 지난 세월 후회도 많았고, 허물도 많았지만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분명 생각하며, 감사하며, 행복하게 걸었던 길이었다.  
 

김기혁
김기혁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