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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

시론

아침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밤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가을이 가까운 것을 느끼게 된다. 지난해 2018년 여름은 서울지역의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하였고 전국 거의 모든 도시에서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찜통더위를 느꼈다.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보다 더 덥다고 서프리카니, 대프리카니하는 말들을 하였는데 1994년 여름 폭염이래로 최악으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11년 만에 최고 폭염이었다고 한다. 올해 여름에는  2~3 일정도 힘든 날이 있었지만 수월하게 지내게 되어 다행이었다. 사실 나는 1994년 여름의 매운 맛을 못 보았는데 왜냐면 1994년 7월 미국 UCSF로 해외 연수를 떠나 있었기 때문인데 벌써 25년 전 얘기니 세월이 빠르긴 하다.

내가 연수 갔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고 사랑하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스콧 매켄지의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라는 감미로운 노래에서 처럼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고 아름다운 사랑이나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 도시를 많은 관광객이 찾는 이유는 종을 울리며 시내를 질주하는 케이블카, 안개 낀 금문교, 가파른 경사와 언덕 위에 있는 파스텔 색채의 고풍 어린 주택과 첨단 빌딩과의 조화, 따가운 캘리포니아의 햇살 속에 느끼는 초가을의 쌀쌀한 바람, 밤에 걸어 다녀도 안전한 도시, 아름다운 해안, 다양한 쇼핑거리, 풍부한 해산물을 이용한 먹거리와 편리한 교통수단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매혹적인 샌프란시스코는 1906년 4월 18일 새벽에 발생한 7.8 강도의 지진과 연관된 4일간의 화재로 도시의 80%가 파괴되었고 40만 인구 중 3000여 명이 사망하고 3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집을 잃는 끔찍한 경험이 있다. 큰 좌절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지진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대책을 근간으로 재건되었고 현재처럼 발전하였다.

 미국에서 지낼 때 인상 깊게 느낀 것은 사람들의 안전과 대책을 최우선으로 하며,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크며, 정해진 질서를 잘 지키고 불평 없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빨리 빨리가 습관이 된 우리에게는 답답하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 같지만,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은 일 하나하나 여러 조치를 하고 있었다.

내가 연수받고 있던 1994년과 1995년에는 우리나라에서 큰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하여 출근하거나 등교하던 학생들 49명이 한강으로 추락하여 32명이 사망하였고 10월 24일에는 충주호 유람선 화재로 3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1995년 4월 28일에는 대구 지하철 공사 중 도시가스 폭발로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1995년 6월 29일에는 삼풍백화점 사고로 502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친절한 미국사람들은 한국에서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일부러 나에게 찾아와 한국의 지인들은 무사한지, 사고가 난 다리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등을 물어보곤 했다. 완공된 지 60여 년이 된 금문교는 몇 번의 지진에도 잘 견뎌냈지만, 우리나라의 성수대교는 15년 만에 붕괴한 것에 창피하였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미국사람들에게 이해가 안 되는 모든 사고가 안전불감증으로 작은 일을 대충대충 처리한 인재로 발생한 것이기에 할 말이 없었다.

 지난달 대한치과의사협회의 고충처리위원회에서 개원가에서 주의해야 할 대표적인 고충처리 사례 4가지를 보면 어린이 환자, 교정환자에서의 오발치, 마취에 의한 감각 이상 등 마취후유증, 환자의 막무가내식 난동, 임플란트 선 결제 후 반품 금액 누락이다. 오발치 사례는 어린이 환자의 영구치를 유치로 오인해 발치한 사례, 20대 남자 환자의 멀쩡한 치아를 사랑니로 오인해 발치한 사례, 20대 여자 교정환자의 #25번 발치를 오인해 #24번 발치를 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유치 발치는 치과의사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의심할 정도인데 그래서 방사선 사진도 찍지 않고 유치를 발치하다 보면 영구치가 없는 걸 모르고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영구치를 발치하는 잘못도 발생하게 된다. 오발치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사고 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의료사고이다. 원시적인 의료사고라는 의미는 작은 일이지만 치과의사라면 당연히 신경 써야 하고 기본 원칙을 지킨다면 일어날 수 없다는 뜻으로 모두 치과의사 부주의로 발생하게 된다. 환자의 안전한 치료뿐 아니라 진료하는 의사들의 안전 또한 중요한데 환자의 막무가내식 폭언, 난동, 폭행, 협박 등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환자와 원활한 소통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라포(rapport)가 중요하며 진료실 내에 환자들에게 의료인 폭행 방지법이 시행되고 있음을 알릴 필요가 있고 병원 내의 CCTV 촬영과 안내판이 도움이 될 것이다.

휴렛패커드의 창업자인 데이비드 패커드가 얘기한 것 같이 “작은 일이 큰 일을 이루게 하고 디테일(detail)이 완벽을 가능케 한다”고 했다. 우리의 치료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거창한 치료목표나 치료술식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사소하게 여겨 간과했던 작은 일에 디테일한 문제를 찾아 해결한다면 좋은 치료와 치료환경이 될 것이다.

 9월엔 병원에 좋은 환자가 넘쳐나고 온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희망찬 꿈으로 가슴 뛰는 하루하루가 되길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높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길 바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충주 교수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교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