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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로서의 삶/수필

요즈음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다. 예술사조로서의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생활양식으로서의 ‘미니멀리즘’ 말이다. 이는 복잡하고 정신없는 현대인의 삶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소유를 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삶과 관심사에 집중하고자 하는 삶의 양식이다.

 

번역을 하자면, ‘최소생활주의’, ‘최소주의 삶’ 정도가 되겠다. 일본의 어느 미니멀리스트는 똑같은 옷만 세 벌 구입하여 매일 똑같은 코디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는 아침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라는 고민에서 해방되어 행복하다고 했다. 몇 벌 안 되는 옷이기에 오히려 더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개성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무의미한 삶의 선택지를 과감히 버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몇 가지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물론 그와 같은 극단적인(?)형태의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적어도- 내가 모르는 물건은 없다. 물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내 자신을 ‘초보 미니멀리스트’ 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필요로 할 때 적절히 꺼내 쓸 수가 없다면, 그 것이 ‘물건’이든 ‘지식’이든 없는 게 낫다’-는 사실을 몇 년 전에 문득 깨닫게 되었다. ‘분명히 있었는데 어디에 뒀더라? 돈 아깝게 새로 살 수는 없고...’, ‘아 그게 뭐였지? 분명히 알았는데, 또 찾아봐야 하나.’ 어차피, ‘없는 것’, ‘모르는 것’과 동일한 결과인데 그저 번뇌와 고민만 생기게 할 뿐 이었다. 물건을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히 꺼내 쓰려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많은 물건들의 위치를 다 외울 수는 없으니 결국 물건의 수를 줄이게 되었다. 예전에는 서랍을 열면, 몇 개의 작은 상자가 들어 있고, 또 그 상자를 열면 작은 케이스 안에 볼펜이나 가위 같은 물건들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쉬카처럼, 서랍 속에 상자, 상자 안에 조그만 상자........ 이해가 안 되어도 무조건 외우기부터 했던 학창 시절의 나처럼, 그저 눈 앞의 혼란을 타계하기 위해 수납의 기술을 익히느라 바빴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조건 외우기만 한 지식이 그다지 실생활에서 쓸모 있지 않았던 것처럼- 일단 수납함으로 들어간 물건은 좀처럼 제 기능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분류’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물건의 수를 줄였다. 지금은 서랍을 열면, 가위 한 자루와 볼펜 몇 자루가 덩그라니 놓여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더 이상 물건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불편할 때도 있다. 감자도 그냥 부엌칼로 조심해서 깎아야 하고, 계란 거품을 내기 위해서는 숟가락으로 아주 열심히 휘저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은 잠깐이다. 거품기 사이에 끼어 있는 찌꺼기를 깨끗이 세척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지금의 내게는 더 불편하다.

 내가 무슨 물건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면서,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겉치레와 형식을 벗어나 좀 더 본질적인 면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또한 나에게 절실하지 않은 것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자의로 내려놓게 된 것이다. 그냥 어쩌다보니 주변에 두게 된 물건들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 보다는, 적은 물건들의 완벽하고 능동적인 주인이 되어 보는 삶도 괜찮은 것 같다.  특히나 그렇잖아도 고민거리가 많은 치과 원장들에게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삶을 추천하고 싶다.

 

나는 여기서 조금 더 비워내서- 넘쳐나는 정보들, 사람들과의 관계, 쏟아지는 일거리들.... 골칫거리로부터 벗어나, 비움으로써 영혼을 채울 수 있다던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나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느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