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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여보!/단편소설

  • 허택
  • 등록 2019.10.10 09:48:12

                                                                여보! 여보!

들숨이 배꼽까지 내려오지 못한다. 가슴에서 멈춘다. 힘껏 아래뱃살에 힘을 주지만, 들숨이 평소처럼 아랫배로 내려오지 못한다. 날숨을 가쁘게 내뿜는다. 가슴이 답답하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화장실 거울 속에 창백한 얼굴만 비친다. 찬물로 얼굴을 씻는다. 한 번 더 들숨을 쉬어본다. 들숨이 따뜻하게 가슴에서 퍼지지 않는다. 아래뱃살에 힘을 줄 수 없다. 세면대에 기댄 손들이 후들거린다. 어지러울 뿐이다.

 

담당의사 말들이 거울에 띄엄띄엄 쓰인다. 판결문처럼 들렸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 두 사람 모두 정상 수치입니다. 원인불명의 난임인 듯합니다. 그 동안 면담했던 그 의사가 맞나 싶을 만큼 얼굴에 웃음이 없다. 의사는 며칠 전까지 웃는 얼굴로 소곤거렸다. 남편은 매우 건강한 남자입니다. 아내분도 혈중 호르몬 검사, 난관조영술 초음파 검사 등 모두 정상입니다. 정신과 치료와 병행해서 앞으로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하면서 난임원인을 찾아야겠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해야한다는 듯 말을 했다.

 

우리 앞에 진료기록부와 검사지를 마치 판결문처럼 내밀면서. 남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남편은 눈가에 핏줄을 세우며 겨우 눈물을 참았다. 남편이 그런 표정일 때 내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숨이 막혀 넋 나간 듯 멍하게 앉아 있을 것이다. 남편이 내손을 꼭 잡았다. 여보! 여보! 목이 멘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의사는 방관자로 앉아있다. 남편이 나를 힘껏 껴안았을 때 나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혼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내가 남편 가슴을 밀어 낼만큼 정신 차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혼자 일어나서 화장실에 올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화장실 거울에 아직 숨을 고르지 못한 여자가 보였다. 들숨날숨이 힘들다. 난임이라? 내가 난임이라? 몇 번 되새겨본다. 짐작했지만 원인불명이라는 병명이 나를 더욱 숨 가쁘게 만든다. 난임검사 결과 몸은 정상이라고 한다.

 

마음 때문에 난임이란 말인가. 다시 한 번 얼굴을 닦고 들숨날숨을 깊게 쉬어본다. 아랫배에 힘껏 힘을 주고 숨을 들이켜 본다. 겨우 들숨이 배꼽까지 다다른다. 거울 속 얼굴이 평온해진 듯하다. 화장실을 나오자 남편이 문 앞에 초조하게 서 있다. 눈가에는 눈물 흔적이 보인다. 이번에는 내가 남편 손을 꼭 잡았다. 집에 갈까? 아니면 국제시장에 가서 저녁이나 먹고 갈래? 물기 어린 남편 안경에 웃고 있는 내 얼굴이 비친다. 남편 손이 너무 차다. 우리, 병원 진료 없이 아이를 가져 볼까? 뜻밖의 내 말에 남편이 놀란다.
 

  결혼 2년째다. 할머니가 황령산 벚꽃동산에서 벚꽃잎과 함께 흩날릴 때 나는 남편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다. 그는 내 손에서 흩뿌려지는 할머니를 지켜보며 엉엉 울기만 했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았다. 벚꽃잎과 함께 바람에 흩날리는 할머니가 아름답게 보였다. 하늘은 봄바람 따라 파랗게 넘실거렸다. 할머니는 분홍 꽃잎과 어울리며 푸른 하늘 높이 퍼져나갔다. 그는 마냥 울기만 하더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편안하게 잘 가이소. 파란 하늘에 할머니 웃음이 너울거리며 퍼졌다. 할머니는 지긋이 웃으면서 그와 나를 대견한 듯 바라봤다. 그때 나는 그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다. 그는 숨을 멈춘 듯 깜짝 놀랐다. 그는 잠시 울음을 멈추더니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다시 가슴 깊숙이에서 울음을 토해냈다. 기쁜 마음을 토해내는 울음이었다. 그의 손을 잡아 할머니를 한웅큼 쥐어줬다. 함께 뿌리제이. 벚꽃잎과 함께 푸른 하늘 높이 날아가게.

 

봄바람은 향기로웠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벚꽃잎과 할머니는 아름다웠다. 할머니가 원하는 대로 우리 결혼하자. 벚꽃잎과 함께 흩날리는 할머니도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했다.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 투성이었다. 고마워. 정말 사랑해. 울음에 묻혀 그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대신 더듬거리며 겨우 말을 잇던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두 사람 결혼 하렴.

  그는 거의 매일 할머니가 있는 요양병원을 찾아왔다. 퇴근하고 요양병원을 가면 그는 먼저 와서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처음 그는 요양병원에 찾아왔을 때 매우 귀찮았다. 왜 왔어요? 돌아가세요. 당신은 여기 올 이유가 없어요. 단호하고 쌀쌀 맞게 말했다. 그는 병원 입구 정원 앞에서 우산을 쓰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늦여름 소낙비는 뜨거웠던 오후를 시원하게 식혀줬다. 아무 말 없이 멀뚱멀뚱 서 있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처럼 냉담하게 병원 입원실로 발길을 돌렸다. 이 남자가 왜 이러지? 이런 의문은 그 후 할머니 입원실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생겼다. 매우 불쾌한 의문이었다. 그를 볼 때마다 귀찮고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간병인처럼 매일 병원에 출근했다. 신경질도 부리고, 화도 내보고, 병원 직원에게 출입금지 시켜달라는 부탁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교회 안에서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를 만나면 될 뿐이었다. 교회 안에서 함께 예배 하는 성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교회 밖에서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는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채 지내고 싶었다. 그에 대한 내 기도는 형벌이며 고통이었다. 예수의 십자가 순교를 가슴에 되새기며 기도했다. 순교하는 마음으로 그를 만나야 했다.

  장 전도사가 처음 그를 나에게 소개했을 때 의아했다. 이번 주부터 우리 교회에 등록한 새 신자야. 네가 새 신자 교육을 맡아주렴. 새 신자 교육은 장 전도사 몫이었다. 나는 가끔 보조역할만 했다. 그리고 도시 변두리에 있는 개척교회에 새 신자가 스스로 찾아오다니? 회색 양복을 입은 모습이 반듯했다.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야.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에 반가움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낯설지 않은 인상이었다. 예. 장 전도사의 단호한 부탁에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매 주일마다 그는 하루 종일 내 곁을 맴돌았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얼굴 가득 웃음 지으며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새 신자 교육시간에는 유달리 들떠있는 듯했다. 말수는 적었지만 몸짓은 매우 활발했다. 함께 하는 주일이 늘어날수록 그가 부담스러워졌다. 그의 눈동자에 언제나 물기가 어려 있었다. 나를 보는 시선은 뜨거웠고 애절했다. 마치 그의 눈초리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주일이 거듭될수록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일에는 벗어날 수 없었다. 40여 평 교회 안에서 그의 눈초리는 언제 어디서나 나를 향하고 있었다. 새 신자 교육기간이 끝나갈 즈음, 그는 더욱 내 곁에 바싹 붙어 다녔다. 나에게 말을 건네는 시간도 늘어났다.

 

간혹 그가 말을 할 때 유별스런 냄새를 풍겼다. 그 냄새는 후각신경을 매우 자극했다. 언젠가 맡았던 냄새인 듯했다. 가물가물, 냄새는 나를 괴롭혔다. 언젠가 맡았어. 코를 찌를 듯이 화한 은단냄새였다. 가까이에서 신경 써서 맡아봤다. 그의 입 안에서 은단냄새가 확 풍겼다.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봉인된 기억을 건드리는 냄새였다. 한 번 코를 찌른 냄새는 또 다시 불면의 밤을 만들었다. 몇 번째 놈이었지?

  은단냄새는 언제나 마지막 차례였다. 역겨운 놈들의 체취에 몸서리치며 겨우 들숨날숨을 쉬었다. 아랫도리가 난도질당하는 통증은 날이 갈수록 무뎌갔지만 놈들이 풍기는 악취는 날이 갈수록 온몸이 부서질 듯 더욱 더 괴롭혔다. 쌕쌕거리며 내뿜는 날숨은 아무리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도 코를 콕콕 찔렀다. 숨을 멈추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놈들의 악취는 나에게 독약이었다. 치아 썩은 냄새, 시큼한 땀 냄새, 쿰쿰한 머리 냄새, 똥 냄새, 정액 냄새 등등. 다행히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구토 때문에 놈들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몇 놈 째인지 몰랐다.

 

온갖 악취로 실신상태에 빠질 즈음, 은단냄새가 코를 확 트이게 했다. 잠시 머릿속이 맑아졌다. 누군가가 머뭇거렸다. 뭐하노? 빨리 해치아라! 안 하려면 우리 간데이. 인마! 나중에 후회하지 마. 다그치는 고함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몇몇은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누군가 머뭇거리며 내 위를 덮쳤을 때,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은단냄새가 풍겼다. 흐느끼며 나를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다. 은단 냄새에 온몸이 나른하게 풀어졌다. 곧 조용해졌고 은단 냄새는 사라졌다. 나는 꼼짝 없이 어둠으로 채워진 창고 구석에 드러누워 있었다.

 

시궁창 냄새가 창고 안으로 밀려왔다. 놈들의 악취보다는 괴롭지 않았다. 아랫도리는 나무토막처럼 전혀 감각이 없었다. 밤은 무섭게 덮쳤다. 시간을 느낄 수 없었다. 꼼짝할 수 없었다. 실신한 듯했다. 잠시 후 아랫도리가 뜨겁게 느껴졌다. 할머니가 흐느끼면서 내 아랫도리를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아랫도리가 쓰리고 아팠다. 통증으로 골반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할머니의 흐느낌은 밤새 내 귓가를 맴돌았다. 나쁜 놈들. 나쁜 놈들. 할머니 손길은 허벅지와 사타구니, 아랫도리 구석구석 부드럽게 움직였다. 할머니 손길에 눈물이 묻어 있었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뿌렸다. 불쌍한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이후 흐느낌과 함께 간혹 은단냄새를 맡았다. 언제나 마지막 차례였다. 그나마 마지막이 은단냄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을 잠 못 이루다가 새벽기도를 해야 했다. 설마? 혹시? 봉인된 상처뿐인 기억들을 건드렸다. 새벽기도를 신실하게 할 수 없었다. 장 전도사에게 몇 번이나 묻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그가 새벽기도 예배까지 참석했을 때 교회에 머물 수 없었다. 그에 대해 장 전도사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장 전도사는 언제나 평온한 표정이었다. 처음으로 장 전도사에게 언짢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누구예요? 전도사님은 알고 있나요? 그는 나를 알고 있는 듯해요. 도저히 잠이 안 오고, 신실하게 기도할 수 없어요. 나대신 권 집사가 새 신자교육을 담당하면 안 될까요? 언젠가 만났던 사람 같아서 매우 기분 나빠요. 장 전도사는 또 다시 쉽게 웃으며 부탁했다. 네가 계속 교육을 맡으면서 끝내렴. 더욱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주님께 기도하면서.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새벽기도 예배는 참석할 수 없었다. 은단냄새는 내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틀림없어. 봉인된 기억 속의 역겨운 놈들 중에 한 명이야. 약간 착했을 뿐이야. 장 전도사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아무도 너에게 돌 던질 사람은 없어. 더욱 더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으로 네 마음을 진정시켜. 새벽기도 예배 참석하고, 새 신자 피하지 말고, 네가 주님의 말씀을 교육시켜. 장 전도사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섞여있었다. 처음 느끼는 장 전도사의 마음이었다. 교회 안에서 그를 안 선생이라고 편하게 부르는데 1여 년이 걸렸다. 교회 안에서 항상 내 곁에 머물렀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깊게 들숨날숨을 쉬면서 마음 속 기도를 했다. 그는 언제나 착하게 웃으며 행동했다. 하지만 웃으면서 그를 마주할 수 없었다. 장 전도사는 나와 그를 간절하게 쳐다봤다.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충고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도와 성경말씀만으로 편할 수가 없었다. 구역질나는 기억은 쉽게 지울 수 없었다.

  그가 교회를 다니며 두 번째 부활절을 맞이한 오후예배 후, 그가 나와 장 전도사에게 커피 마실 자리를 마련했다. 교회 옆에 있는 카페였다. 그의 착한 입에서 결혼하자는 핵폭탄 같은 말을 내뱉었다. 장 전도사는 짐작했다는 느긋한 얼굴이었다. 나는 봉인된 기억이 터져서 다시 아픔으로 숨이 막혔다.

 

그는 평소답지 않게 용감했다.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하는 의미로 결혼하자고 나를 질식시키는 프로포즈를 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노? 얼이 빠져 멍하게 앉아있었다. 장 전도사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거들었다. 안 선생과 결혼하렴.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을까? 그보다 장 전도사가 더욱 이상했다. 오랫동안 이모처럼 생각하며 내가 기대왔던 사람이다. 절망의 늪에서 성경말씀으로 나를 구해준 은인이다.

 

그는 창백하고 멍한 나를 보더니 땀을 흘리며 초조하게 변했다. 어찌할 줄 몰라 장 전도사에게 구원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다. 나를 애처롭게 쳐다보며 눈동자에 물기가 서렸다. 더 이상 함께 자리할 수 없었다. 장 전도사가 일어서려는 나를 꽉 잡았다. 기도하듯 앉으렴. 내 얘기를 들어봐. 거역할 수 없었다.
 

  나도 그가 3여 년 전 내 앞에 나타났을 때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다. 그저 새 신자구나 여겼다. 그가 자신에 대해 소개했을 때 10여 년 만에 이렇게 어엿하게 자랐나 놀라움이 더했다. 폭풍우 치던 여름밤 교회 문단속을 하고 있는데, 한 남학생이 헐떡거리며 뛰어왔다. 삐쩍 마르고 새까만 까까머리 남학생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폭우 속에서 가쁜 숨을 쉬면서 나를 불렀다.

 

전도사님, 도와주이소. 사람 좀 구해주이소. 저 위 구멍가게 옆 도랑가 판잣집 창고에 사람이 죽어갑니더. 제발 도와주이소. 나와 남학생은 폭우 속을 달려갔다. 도랑물 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두 평 남짓한 창고 안에서 세찬 도랑물 소리보다 더 애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소녀를 껴안은 채 통곡하고 있었다. 불쌍한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할머니가 있네.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걱정하는 남학생에게 얘기하자 남학생은 긴 숨을 내쉬었다. 그때 은단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학생은 혹시 모르니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소녀와 할머니를 찾아봤으면 하고 발길을 돌리며 부탁했다. 남학생은 눈을 반짝이며 은은히 은단냄새를 풍겼다. 판자촌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남학생에게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그저 착한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기도 예배 후 남학생의 걱정스런 말투가 생각 나 다시 할머니 판잣집을 찾았다. 비가 그친 후 콸콸 뻘건 도랑물 소리는 더욱 세차게 들렸다. 하지만 판잣집 안은 조용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본 쪽방엔 할머니와 소녀가 늘어져 있었다. 심상찮은 광경에 급히 119에 신고했다. 창백한 전경이었다. 소녀는 반나체 상태로 끙끙 앓는 소리를 냈고, 할머니는 가는 숨소리를 겨우 이어가는 반 실신상태였다. 그때부터 소녀와 할머니는 판자촌 쪽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당뇨병 저혈당 쇼크였으며, 소녀는 심신이 너절하게 찢어진 정신병 환자였다.

 

소녀는 기독교 재단의 복지원 생활을 하며 나와 인연을 맺게 됐다. 가끔 남학생이 찾아와 물었다. 그 애는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낸다고 답했고 남학생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은단냄새를 풍겼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말을 전한 뒤로 남학생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몰골이 흉측했던 소년이 의젓한 청년으로 변신해 다시 나타났을 때 깜짝 놀랐다. 청년은 나를 만나자마자 소녀의 소식을 물었다. 나는 모른다는 대답만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청년은 거의 매일 찾아와 애원했다.

 

가슴에 응어리가 뭉쳐 있어 언제나 악몽 꾸듯 살아왔다고.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해내고 싶다고. 소녀를 만나야 토해낼 것 같아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열심히 대학에서 공부하며 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했다고. 애원하는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은단냄새가 풍겼다. 그의 마음이 바위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삶 자체가 그 소녀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나는 그가 소녀를 만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기도를 하면 주님의 응답이 들리더구나. 너희는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어떻노? 예배드리면서 마음을 가다듬지 않았나? 함께 가보제이. 주일예배를 마치자 남편은 내 어깨를 껴안으며 진지하게 말한다. 어깨를 껴안은 남편의 손이 매우 뜨겁고 힘이 있다. 눈동자에 간절함이 있다. 몇 달째인지 모르겠다. 남편은 간절하게 부탁한다. 예배 중 열심히 기도하며 들숨날숨을 깊게 내쉬어도 마음 속 봉해진 기억을 편하게 꺼낼 수 없다.

 

두렵다. 기억을 꺼내자마자 나는 또 다시 허물어지며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할 것이다. 오늘은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데이. 예배 후 함께 가보제이. 몇 달 전 일요일, 교회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편이 평소답지 않게 단단하게 말했다. 어디 가는데? 그냥 내 따라 온나. 내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주일예배 후 남편이 차를 몰고 범일동 산복도로에 진입하자 알게 됐다. 안 돼! 거긴 가기 싫어. 나는 앙칼지게 외쳤다.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야. 초여름 가로수들은 산복도로를 싱그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슴이 굳어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됐다. 아직 가기 싫어. 흐느꼈다. 남편은 깜짝 놀라 길가에 차를 세우고서 나를 껴안았다. 이제는 편하게 찾아가자. 봉해진 기억들을 꺼내 연기처럼 날리뿌자. 그래야 우린 아이를 가질 수 있어. 10여 년 동안 잊고 싶었던 옛 동네다. 1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은 내가 옛 동네를 잊기에는 부족했다. 나를 감싸 안은 남편의 사랑을 깊게 느껴도 아직은 봉해진 기억들을 쉽게 열어 연기처럼 날릴 수 없었다. 구역질이 나며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나는 당신만 받아들이면 되는 줄 알았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여겼어. 그런데 내 몸과 마음이 아직……. 가자. 오늘은 동네 입구까지만 갔다 오자. 남편의 손이 너무 뜨겁다. 남편의 눈 속에 사랑이 깊게 패어있다.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는 말 속에 힘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았다. 손길에 힘은 없었지만 기도하는 손길이었다. 할머니는 눈도, 귀도, 말조차도 점점 희미하고 약해졌다. 결혼하렴. 매우 착실한 청년이구나. 겨우 말을 이었다. 매일 기도한단다. 두 사람 결혼하게 해달라고. 세상 떠나기 전 거의 매일 말할 수 있을 때마다 애절하게 부탁했다. 그를 교회 안에서만 만나고 싶었다. 은단냄새도 맡고 싶지 않았다. 교회를 가지 않자 그와 장 전도사가 찾아왔다. 결혼 프러포즈는 없었던 것으로 하고 교회 안에서만 함께 예배 드리자고 그가 간절하게 애원했다.

 

장 전도사의 기도는 내 마음 속으로 거룩하게 스며들었다. 할머니는 기력이 점점 떨어지며 혼미해졌다. 하지만 할머니는 혼잣말로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그 남자와 결혼하렴. 입술만 움직였지만 간절하게 들렸다. 어느날 교회 가기 전에 아랫배까지 들숨날숨을 쉬며 밤새 기도했다. 새벽녘 할머니 귓가에 따뜻하게 속삭였다. 네, 결혼 할게요. 며칠간 말없이 편하게 눈가에 웃음이 번지더니 눈을 감았다.

  결혼 첫날밤이었다. 남편은 기도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은단냄새를 풍기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은 밤새 들숨날숨을 깊게 쉬면서 내 옛날모습을 얘기했다.
 

  어릴 적 우리 동네는 난장판이었다. 하루라도 싸움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부부끼리, 가족끼리, 이웃끼리 온 동네가 무너질 듯 싸움소리는 밤새 곳곳에서 떠들썩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이 동네가 싫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매일 판잣집에서 뒹굴었고, 엄마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산진역 근처 식당에서 일하며 힘겹게 살았다. 도시 속 산골 판자촌에서 탈출하는 것이 내 유일한 꿈이었다. 판자촌 입구부터 풍기는 온갖 오물냄새가 매일 역겨웠지만 간절하게 기도하며 참아야했다.

 

하지만 오물냄새는 사라질 날이 없었다. 우리는 너를 알고 있었다. 너무 예쁜 아이가 다리병신 할머니와 함께 판자촌 산길 끝자락 쪽방에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가끔 구멍가게 대머리 할아버지가 쪽방에서 바지를 주섬주섬 입고 나오면서 할머니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을. 할머니는 돈을 받자마자 흐느끼면서 쪽방으로 들어갔다. 소문은 온 동네에 퍼져있었다. 할머니가 몸이 아파 아랫동네에서 파지를 수집하지 못하면 예쁜 손녀를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고. 할머니의 흐느끼는 소리는 자주 들렸다. 예쁜 너는 학교 가는 날보다 안가는 날이 더 많았다. 말이 없었다. 웃음도 없었다. 여드름투성이 우리들은 너를 보기 위해 쪽방 근처를 자주 배회했다. 나도 네가 보고 싶어 거의 매일 너의 판잣집 근처를 지나가곤 했다.

 

훈이가 위험스런 제안을 했다. 할머니가 파지 수집하러 가 늦게 오는 저녁에 쪽방을 덮치자고. 그 둘은 좋다는 대답이 쉽게 나왔다. 그들은 내 눈치를 봤다. 망설이는 나를 언짢게 본 친구들이 돌아서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좋다고 대답했다. 11월 보름달은 유난히 밝았다. 하지만 도도하고 쌀쌀맞아 보였다. 훈이가 들개처럼 으르렁거리며 우리를 몰아붙였다. 조금 전 만화방으로 오면서 봤대이. 과일 가게 털보아저씨가 절뚝발이 할머니 집에서 나왔어. 할머니는 없더라고. 이른 밤이지만 판자촌 언저리는 어둠이 깊었다.

 

우리는 먹이사냥 하듯 입맛을 다셨다. 곧바로 미친개처럼 너의 집으로 달려갔다. 너는 반 실신상태로 내복만 입은 채 누워있었다. 차가운 달빛은 너의 쪽방 구석구석을 비췄다. 너는 우리의 인기척을 듣지 못한 듯했다. 훈이는 미친개처럼 성큼 너를 창고 쪽으로 끌고 가서 바로 덮쳤다. 사냥은 순식간이었다. 너는 먹이가 된 채 그들에게 야금야금 씹어 먹혔다. 너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 셋은 씩씩거리며 먹잇감을 갖고 놀았다. 그들 숨소리는 매우 뜨겁고 거칠었다. 그들의 마지막 신음소리는 들개 울음소리 같았다.

 

내 가슴 속에서 울컥 뜨거움이 솟구쳤다. 달빛에 싸인 네가 애처로웠다. 사냥을 마친 그들 숨소리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역겨운 냄새를 맡아야하는 네가 가련했다. 나는 은단을 입 안에 급하게 집어넣었다. 도도한 달빛에 싸인 너는 아름다운 미라처럼 보였다. 눈물이 날 듯해 도저히 너를 덮칠 수 없었다. 나를 다그치는 친구들의 목소리에 얼떨결에 네 위에 누웠다. 하지만 너를 사냥할 수 없었다.

 

달빛 속에 너의 얼굴은 너무 아름다웠다. 너는 미동도 없이 가냘프게 숨을 내뿜었다. 너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입 안에는 울음이 가득 차 있었다.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 않아 입술에 힘껏 힘을 주고 있었다. 너를 내 품안에서만 품고 싶었다.

  그날 이후 훈이가 가끔 우리를 불러냈다. 세 번째로 사냥했을 때 너를 꼭 내 품에 품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입 안의 울음을 터뜨려주고 싶었다. 나는 거의 매일 네 주변을 맴돌았다. 간혹 할머니가 절뚝거리며 동네 아저씨들에게서 돈을 몰래 받는 것을 봤다.

 

그리곤 그들은 너의 쪽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할머니는 그들이 다시 나올 때까지 도랑가 풀밭에서 소리 없이 통곡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음을 삼켰다. 나도 함께 울었다. 울분이 솟구쳤다. 도랑물 소리에 할머니 울음이 실려 갔다. 낮에 거리에서 본 너는 무표정하지만 예쁜 인형처럼 걸어 다녔다. 우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 밤, 너의 집 근처를 배회하는데 할머니와 털보아저씨의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술 취한 털보아저씨 목소리는 폭력적이었다. 털보아저씨가 할머니를 도랑가에 내팽개치고 쪽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너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잠잠했다.

 

나는 길가에 있는 돌을 가만히 집어 들었지만 어찌 할 수 없었다. 돌을 내 던지고 급하게 교회로 달려갔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네가 판자촌을 떠났어도 판자촌 생활은 언제나처럼 변함없었다. 오물냄새로 가득한 판자촌에는 여전히 싸움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이후 너를 만날 수 없었다. 너에 대한 그리움이 나에게 쌓여갔다. 네가 판자촌을 떠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점점 너의 울음 속으로 깊게 빠져버렸다.
 

  남편은 가끔 할머니가 너무 불쌍했다고 한숨 섞인 말을 한다. 남편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남편을 껴안으며 속삭인다. 할머니는 불쌍하지 않았어. 네가 옆에 있었잖아. 지금 내 곁에 남편이 있다. 나는 불쌍하지 않다. 내가 불쌍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을 받아들일 수 있다. 편안하고 따뜻하게 남편만을 받아들일 수 있다. 네 말대로 그때 할머니는 불쌍하지 않았어. 남편이 다시 고쳐 말하며 내 속으로 들어온다. 할머니를 불쌍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입을 꼭 다물며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산골판자촌 마을 입구에서. 여름 오후 뙤약볕의 산골 오르막 흙길은 나와 할머니에게 생지옥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번듯하고 넓은 4차원 아스팔트길로 변했다. 게다가 동네 입구엔 관광안내 입간판이 서있다. 그때 나는 가방과 옷 보따리를 양손에 든 채 지금 입간판이 서 있는 곳까지 올라오며 엉엉 울었다. 당시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인 나에게는 공포스런 길이었다. 할머니는 쩔뚝거리며 온몸에 땀범벅이 된 채 짐을 등에 지고 나를 이끌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오르막길 중간 버드나무 밑에서 쉬면서 할머니에게 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속으로 할머니를 돌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흐느꼈다. 못된 연놈들. 어린 너를 팽개치고……. 할머니는 차마 말끝을 맺지 못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2년도 안 돼 엄마까지 우리 곁을 떠났다. 어쩔 수 없이 산골 판자촌이 나의 어릴 적 동네가 됐다.

  남편이 입간판 옆에 차를 세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기억을 날려 보낼까? 할머니가 불쌍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오늘은 동네로 들어가 보자. 뜻밖의 내 대답에 남편이 놀란다. 괜찮겠어? 어젯밤 남편을 깊게 받아들이며 할머니를 따뜻하게 그리워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주일예배 후 어릴 적 판자촌 동네를 찾아가기로. 들숨날숨을 깊게 쉬면서 다짐했다. 나는 이제 불쌍하지 않으니 옛 동네를 찾아가도 된다고. 남편은 다시 동네 안쪽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방문객을 위한 큰 주차장이 보인다.

 

교회 옆 공터가 있던 곳에 현대식 화장실과 관광안내소가 들어서 있다. 관광객을 환영한다는 큰 간판도 동네 어귀에 세워져있다. 할머니와 10여 년 생활했던 그 동네는 이미 사라졌다. 오물냄새와 싸움소리로 가득했던 판자촌이 관광객을 위한 오리고기전문 음식점 관광거리로 변했다. 담벼락에는 ‘산골 판자촌 마을에 오신 여러 분을 환영합니다.’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이곳은 어느새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동네가 됐다.

 

살기 좋은 동네라 자랑하고 있다. 10여 년 세월이 만든 엄청난 신천지다. 구멍가게도, 과일가게도, 만화방도 없어졌다. 구불구불 골목길은 예쁘게 벽화로 단장됐다. 울퉁불퉁 흙길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깨끗하게 포장됐다. 할머니와 함께 걸었던 도랑가 좁은 계단은 적색 벽돌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없어졌다. 사람들이 오기 싫어하고 살기 싫어하던 옛 동네는 없어졌다. 내가 살았던 판잣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방문객 쉼터가 들어서 있다.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고, 방문객의 휴식을 위한 벤치가 놓여 있다. 옆에 있던 구멍가게는 예쁜 카페로 변신했다.

 

요술을 부린 듯한 동화 속 풍경 같다. 아팠던 내 기억을 더 이상 재생시킬 수 없다.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저 예쁜 카페는 내 고등학교 동기가 운영하고 있데이. 남편이 반갑다는 투로 설명한다. 간혹 옛 건물이 보이지만 외관은 수리해서 깨끗하게 단장됐다. 동네를 방문객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남편은 내 손을 꼭 잡고 다닌다. 봉해진 기억을 조심스레 열어보지만 도저히 옛 동네를 기억해낼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도시개발정책의 일환으로 이 동네는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돼 관광지역이 됐지. 남편은 이미 옛 동네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두려움이 사라지며 신기하게 변한 동네를 두리번거린다. 오히려 낯선 동네풍경에 마음이 저민다. 오리 백숙이나 먹고 갈까? 남편은 내 식욕을 자극한다. 걷는 동안 할머니의 모습이 골목마다 아른거린다. 마음속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배꼽 아래까지 깊숙이 들숨날숨이 쉬어진다. 숨길 따라 정신이 맑아진다.
 

  오늘 마침 복지원 업무가 일찍 마쳤고, 내일은 할머니 생신이다. 혼자 산골 판자촌 마을에 갔었어. 퇴근 하고 집에 온 남편에게 보고하듯 말했다. 혼자? 남편이 놀라면서 환하게 웃는다. 낯설어. 어떻게 그리 변할 수가 있지? 온 동네를 돌아다녀 봐도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흔적은 거의 사라졌어. 산복도로를 따라 다니는 미니 관광버스를 타고 동네에 들렀지. 동네를 돌아다니다 고교동기가 운영한다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할머니를 그리워했어. 다 찌그러져 허름하던 구멍가게가 예쁘고 분위기 있는 카페로 요술 부리듯 바뀌었더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야.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고? 남편이 또 한 번 놀란다. 어릴 적 구멍가게.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던 시절. 처음 아랫도리를 난도질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엄청난 통증이었다. 며칠 간 혼이 나간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겨우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할머니가 몸이 아파 파지를 수집하러 가지 못하는 날이 며칠 계속되면 당장 끼니부터 걱정해야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라면 몇 봉지와 식은 밥이 쪽방에 놓여있었다. 옆집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갖다 줬다며, 참 고마운 사람이라고 할머니가 몇 번이나 얘기했다. 우리에게 고마운 이웃이었지만, 나를 보는 눈은 점점 음흉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런 눈길을 피할 수 없었다.

 

간혹 나를 불러 아이스크림이나 빵을 주곤 했다. 거절할 수 없었다. 오히려 덥석덥석 잘 받았다. 어느 봄날 잠결에 당한 겁탈은 마치 생지옥으로 떨어지는 절망이었다. 저항할 수 없었다. 멍하게 누워서 할머니의 우는 소리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끼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소름 돋는 할아버지의 손길은 바퀴벌레처럼 내 몸을 기어 다녔다. 내가 달거리 끝나고 며칠 후가 되면 할머니는 아침마다 약을 먹였다. 피임약이었다. 할머니의 한숨과 울음은 그칠 날이 없었다.

 

밤마다 엄마를 원망하는 잠꼬대가 들렸다. 내 몸은 점점 여러 사람 손길이 스쳐갔다. 나는 악몽을 꿔야 살 수 있구나 주문을 외웠다. 눈만 감고 숨만 죽이면 나와 할머니는 끼니 걱정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 쪽방도, 구멍가게도 사라졌다. 가끔 속이 메스꺼워 토악질하던 도랑만 남아있다. 그때는 악취 나는 개울물에 더 심하게 악취 나는 아픔을 흘려보냈다. 지금은 졸졸거리며 운치 있게 흐른다. 커피 향이 코끝에서 살랑거린다. 들숨날숨을 차분하게 쉬어본다. 커피 향이 가슴에 잔잔하게 퍼진다.

 

남편의 고교동창이라는 카페 주인은 남편처럼 말갛게 생겼다. 웃음이 순진하게 크다. 편하게 느껴진다. 이 카페는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카페 주인에게 허물없이 물어본다. 한 3년 전 쯤에요. 카페 주인이 시원하게 대답해준다.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그 아들을 통해 집을 구입해서 시작했다고. 할아버지는 세월 속에 파묻혔다. 커피를 단숨에 마신다. 가슴이 파르르 떨린다. 내가 봉인해야할 기억들이 없어졌다. 왠지 허전하다.

 

오늘 6월 초여름 오후를 야릇하게 보냈다고 남편에게 미역국을 건네며 말한다. 내 얘기를 듣는 남편 얼굴에 계속 웃음이 번진다. 참, 친구 와이프도 봤어. 두 살배기 딸아이는 너무 깜찍하던데? 매우 단란한 가족 같았어. 친구 와이프 인상도 좋고 시원시원하던데. 나도 그런 예쁜 딸아이를 낳고 싶다. 그럼 우리 다음 주에 그 카페에 찾아가볼까? 남편이 웃음 끝에 넌지시 물어본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지만 푸르른 벚꽃나무들에 둘러싸인 카페의 밤은 시원하다. 토요일 밤, 남편 손길에 끌려 카페로 왔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쉼터 벤치에 웅성웅성 모여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사람의 발길이 뜸했다. 밤이면 가끔 구멍가게에 물건 사러 오는 사람만 한둘 있었다.

 

그동안 몇 번씩이나 와서 벤치에 앉아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내가 웅크려 흐느꼈던 쪽방이나 창고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카페 주인의 아내가 명랑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그동안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고. 서글서글한 성격이 우리를 편하게 한다. 카페 주인은 특별히 만들었다는 루왁 핸드드립 커피를 우리에게 대접한다. 모처럼 만난 남자들 수다도 더위를 무색케 한다.

 

그녀와 쉽게 친해졌다. 가끔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개그우먼 흉내까지 내며 속내를 시원하게 드러낸다. 카페 주인은 그의 아내보다 말수가 적고 얌전한 듯하다. 여기가 언젠가 온몸을 역겨운 땀내로 범벅된 채 누워있었던 장소였나? 봉인된 기억 속 그때 열대야는 생지옥이었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나와 남편, 카페 주인과 그의 아내는 마냥 웃고 있다.

 

무더위로 익어가는 어둠 속으로 봉인된 기억들이 날아가고 있다. 허물 없이 이어지는 대화 중에 그녀가 갑자기 까르르 웃으며 말을 꺼낸다. 카페를 여기 차린 이유가 있어요. 생뚱맞게 얘기를 꺼낸다. 카페 주인이 말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그녀는 신나게 수다를 떤다. 애 아빠가 고등학생 때 짝사랑하던 첫사랑 예쁜 여학생이 저 쉼터에 살았대요. 그녀가 생각나서 이곳에 카페를 차렸다네요. 순간 남편이 긴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들숨날숨을 아랫배까지 쉬면서 천천히 커피 맛을 음미한다. 커피가 여름밤 더위를 조용히 식힌다. 남편이 웃음을 잃은 채 계속 나만 응시한다. 내가 남편을 향해 웃음을 보낸다.

 

그 여학생이 너무 예뻐서 이 동네 남학생들이 거의 짝사랑했다더군요. 당신처럼 예뻤던 모양이에요. 무더운 밤하늘로 그녀는 마냥 카페 주인의 옛사랑을 털어놓는다. 카페 주인은 무안한 듯 얼굴이 빨개지며 그만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녀는 고자질하는 것이 신이라도 난 듯하다.

 

요즘도 간혹 담배 피우며 저 쉼터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해요. 얼마나 얄미운지 몰라요. 남편의 눈길이 더욱 날카로워진다. 지금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잖아요.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대답하고 남편에게도 웃음을 던졌다. 왠지 웃음만 터져 나온다. 쉼터에 사람들이 도랑물 소리로 더위를 식힌다. 그 때도 판잣집에 사람들이 몰래 들락거렸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라졌다. 할머니부터 사라졌다. 지금은 쉼터와 카페, 그리고 벚나무들만 있다. 여름밤 엉엉 울었던 기억이 더위에 허물어지며 웃음으로 되새겨진다. 도랑물 소리가 맑게 들린다. 남편이 편하게 웃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왠지 남편을 ‘여보’라 부르고 싶다. 남편이 먼저 걱정스레 여보라 부르며 괜찮냐고 물어본다. 남편 얼굴에 아직 긴장이 남아있다. 여보, 난 괜찮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여보, 방금 그 친구가 몇 번째 남자였어? 개그우먼 흉내를 내며 남편에게 되물어본다. 남편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한다. 첫 번째 훈이……. 참 어처구니없다. 그렇게 미친 들개 같았던 첫 번째 놈이 카페주인이라니! 맞춰지지 않는 기억들이 싱겁게 웃으며 넘겨진다. 여보, 정말이야? 기억들을 되새겨보며 다시 물어본다. 여보란 말이 편하게 입에서 나온다. 싱겁다. 웃음만 터져 나온다. 여보, 그 친구는 너를 전혀 알아보지 못해. 나를 여보라 부르며 스쳐가듯 말을 한다. 싱겁게 웃고 있는 나를 더욱 싱겁게 만든다. 다음에 또 그 부부 만날까? 응! 나는 편하고 빠르게 대답했다. 남편도 싱겁게 웃다가, 반갑게 웃기도 하면서 눈물까지 흘린다. 왜 울지? 오히려 우는 남편을 이상하게 쳐다본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 달리는 창밖 더운 어둠은 바람 한 점 없이 깊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따라 스쳐가는 풍경은 편하게 보인다. 여보, 병원은 언제 가? 남편이 걱정스럽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나는 계속 싱겁게 웃으며 대답한다. 지난달부터 정신과 치료는 받지 않고 있어. 이제 안 가도 될 거 같아. 마음이 홀가분해졌어. 들숨날숨을 배꼽 아래까지 깊게 쉬어본다. 아랫도리로 뜨거움이 퍼진다. 남편 손을 꼭 잡으며 싱겁게 말한다. 아기집이 아직도 텅 비어있어. 뜨겁게 채우고 싶어. 남편은 오늘 밤을 어떻게 생각할까?   
                                                               

소설가 허택

- 약력

2008년 문학사상 신인상 “리브 앤 다이“로 등단

작품집 '리브 앤 다이'(2011), '몸의 소리들'(2014), '대사증후군'(2017)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