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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의 주인공

Relay Essay 제2366번째

이를테면 전철역 화장실이나 공중전화 부스 같은 곳에서 가방을 발견한다. 가방 안에는 고액권이 꽉 차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망설임은 있었겠으나 신고를 하고, 그 가방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드디어 미담의 주인공이 되어 매스컴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게 된다.


이런 행운을 얻으려면 그 사람의 품성도 품성이지만 우선 물건의 발견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데 그런 기회란 좀처럼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확률과의 싸움이다. 유독 이런 행운과는 거리가 멀어 500원짜리 복권 1번 당첨이 되지 못한 나이지만 2번 분실물을 발견하는 기회가 있었다.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이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았을 때이니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아들과 함께 사우나에 갔었다. 나는 위쪽 옷장을, 키가 작은 아들은 아래 쪽 옷장을 차지하고 막 옷을 벗으려는 데 아들이 소리쳤다.


“아빠 이게 뭐예요?”


아들의 옷장 구석에 지갑과 금빛 시계가 있었다. 두툼한 고급 가죽 지갑과 소위 말하는 로렉스 금딱지 시계였다. 은근히 욕심이 나기는 했지만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 욕심을 채우는 것은 너무 비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우나의 종업원을 불렀다. 종업원 2명이 달려왔다. 나는 습득한 물건들을 그들에게 맡기고 아들과 함께 목욕실로 들어갔다.


약 1주일 후 다시 그 사우나에 간 나는 그 물건들이 주인에게 잘 전해졌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종업원들의 태도가 수상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요?”


이렇게 시치미를 떼는 종업원의 태도는 그런대로 참을만했다. 다른 1명은 눈 까지 부릅뜨고 나를 윽박질렀다. 내가 그들에게 물건을 전해 줄 때,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한두 명 있기는 했지만 찾을 수 없는 증인이었다. 나는 그 양심 불량의 종업원들에게 따져 봤자 별 소득이 없이 싸움만 일어 날 것 같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억울했다. 차라리 경찰서에 신고를 할 걸 그랬다는 생각과 함께 온갖 숫자들이 나를 괴롭혔다.


지갑의 두툼함으로 보아 약 30만 원 정도의 현금, 중고 로랙스 금딱지 시계의 값 그리고 2명의 종업원이니 이것이 반으로 나누어졌을 것이고, 아니 그들의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으로 보아 7대3 아니면 6대4일지도….
하여간 이런 숫자들이 아직도 가끔 나를 괴롭히며 그때마다 그 종업원들의 밉살스러운 얼굴의 표정도 함께 떠올랐다.


이번에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의 일이다. 골목길에서 까만 지갑을 발견했다.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할머니께 들켰다.
“너, 이거 무슨 지갑이니?”
“응, 주웠어.”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그 지갑을 빼앗아가셨다가 약 1주일이 지나서 말씀하셨다.
“ 내가 혹시 우리 동네에 이 지갑을 잃어버리고 근심하는 사람이 있나 알아보았는데 그런 사람은 없더구나. 그러니 네가 쓰도록 해라. 그런데 할머니가 그 돈의 반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쓸 거야. 그러니 너는 반만 쓸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너한테 한꺼번에 다 주면 낭비 할 수 있으니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달라고 해라. 알았지?”
“응.”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 그 후에 필요할 때마다 할머니께 돈을 받아서 썼다.

 

그리고 특별히 부모님께는 돈을 받은 기억이 없이 거의 1년 동안을 그 돈으로만 썼으니 꽤 많은 돈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왜 할머니께서 그 지갑을 경찰서에 신고를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생기지만 그 당시의 경찰서라는 게 그렇게 할머니께는 신뢰할 곳이 못 된다는 생각과 내가 할머니께 돈을 받을 때마다 할머니께서 돈을 잃어버린 사람의 아픈 마음을 생각해서 낭비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잊지 않은 것, 또 습득한 돈의 반을 가난한 사람을 돕는데 쓰신 사실로 볼 때 우리 할머니는 꽤 바르신 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즉 할머니는 내 마음 속에 미담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억들이 나에게 추억이기는 하나 완전한 추억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내가 주은 돈의 양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에 대해서 알고 싶고 내 추억을 좀 더 확실히 하고 싶었을 때는 이미 할머니께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셨다. 그래서 더 이상 내 추억을 확실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사우나에 가서 물건을 주었던 우리 아들의 추억은 어떠할까? 외형적으로는 내 추억과 같은 추억이겠지만 돈의 양을 확실히 모르는 한 완전한 추억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나처럼 그 돈의 양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질지도 모른다.


생각이 난 김에 지금이라도 아들에게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약 30만원의 돈, 그리고 로랙스 금딱지 시계의 값에 대해서. 물론 5대5, 6대4, 7대3 등의 쓸데없는 말은 빼고 말이다. 이런 쓸데없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안 하고는 전적으로 아들의 몫이다.


나는 내가 보았던 사실만 이야기만 해 주면 그만이지만 은근히 걱정이 된다.
‘역시 우리 아버지야’ 하고 아들이 흐뭇해하며 나를 미담의 주인공쯤으로 여겨준다면 다행이지만 ‘흥,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는 정직했군.’ 하며 콧방귀나 뀌지는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