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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운동과 잘못된 소문

시론

 며칠 전 보았던 TV 프로그램에서 실명 장애 개그맨의 해외여행에 함께 한 딸의 행동이 잔잔한 미소와 함께 따스한 마음으로 와 닿았습니다. 앞을 못 보는 아빠를 위해 비행기 기내식의 위치를 일일이 알려주고 여행 중에는 바다와 하늘의 색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 짠하고 울컥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아빠의 소망은 한 번도 못 보았던 딸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것과 딸이 결혼할 때 신부 아빠로서 꼭 함께 손잡고 신부 입장을 하도록 한 시간만이라도 눈이 보였으면 한다는 이야기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책맞은 눈물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이 개그맨 장애인이 오래 전 망막 색소 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 한 남성으로부터 안구 기증 제안을 받았는데 개그맨 장애인은 기증 받기를 거부하여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유는 기증자가 근육병을 앓고 있는 남성이어서 “나는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 분은 오직 남아 있는 하나마저 주려고 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것이 거부 이유였습니다. ‘얼마나 기증 받고 싶은 망막이었고 얼마나 다시 찾고 싶은 시력이었는데 기증 받기를 거부하는 마음이 가능하였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 하였습니다. ‘이런 마음의 아빠이기에 착한 딸이 있구나’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주 업무인 치과 진료 외의 별도 업무 중 하나인 기증 시신에 대한 적합성 판정이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십 년이 넘게 의료관리자(Medical director)라는 직책으로 국내·외 사후 기증 시신에 대한 생존 시 질환, 복용 약물, 수술 여부, 암과 세균검사 등을 살펴보고 가공 조직으로 사용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판정에는 사인과 사망 시간, 사망 시 연령 및 사망 후 뼈, 피부, 인대 등 조직에 대한 적출 시간 등도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됩니다. 아쉽다면 치과에서 많은 동종골과 동종 피부 조직이 사용되고 있지만 의료관리자로서 기증조직에 대한 가공처리 적합성 판정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치과의사는 현재 저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는 점과 후임으로 준비된 치과의사조차 전무하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의료관리자로 정형외과, 성형외과나 일반외과 의사 등 medical 영역에서는 제법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이 활동 중인데 의료관리자라는 조직은행 업무는 치과의사의 영역으로 확장 가능하고 기대되는 부분이기에 더욱 안타깝게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가끔 동료 선·후배 치과의사들이 치과에서 사용되는 동종 조직에 대해 잘못된 지식으로 하는 말을 듣고 언짢아질 때가 있습니다.

 

즉 기증시신은 질환도 많고 조직 상태도 좋지 않은 것을 가공하여 제품을 만들어 동종 조직이식 결과가 나쁘다는 등의 잘못된 소문입니다.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많은 동종 조직은 장기와 달리 동종 조직 하나를 기증 받을 여러 수혜자에게 더 많이 나눌 수 있다는 점이 하나의 장기를 한 분의 수혜자에게 나누는 장기 기증과 다른 장점입니다. 그러기에 의료관리자로서 기증 동종조직 하나로 인해 여러 명의 수혜자에게 기증 동종 조직의 문제 가능성이 예상되면 전량 폐기를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증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국내 기증 조직은 흔하지 않은 상태입니다만 사실 장애인 개그맨의 기증 받기 거부를 보면서 기증의 숭고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장기 나 조직 기증 받기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증신청서에 서명을 하여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