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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를 가진 소록도에서 피어나는 새싹

릴레이수필 제2381번째

어렸을 때부터 소록도에서 살다시피 하여 그곳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던 저에게 소록도 병원에서의 자원봉사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봉사했던 ‘사랑 병동’은 한센병과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이 계신 병동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한센병과 정신 질환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데다가 환자분들도 낯선 저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경계하시는 탓에 도움을 드리는 것이 수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다해 턱받이를 매드리고, 양치질, 세면 등을 도와드리면서 그분들의 하루 중에 많은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점차 서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진심으로 교감하게 되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환자분들을 알아갈수록 그분들께 막연한 선입견을 가졌던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고, 섣부른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같이’의 중요성이었습니다. 환자분들 중에는 매일 같은 일이 일어나는 하루지만, 연명하시는 것에 의미를 두고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같은 일상 속에 저의 자그마한 도움이 더해진다면 어제와는 다른 특별한 오늘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서 펼쳐가는 세상에는 한계가 있지만 함께하는 이가 있다면 혼자일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소록도에서의 봉사활동은 ‘같이’의 가치를 늘 가슴속에 새기고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공고히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환자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기 치료를 받지 못해 겪으셨던 아픔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환자분들이 겪고 계신 아픔의 원인은 대부분 조기치료의 실패였습니다. 한센인에게 치료는커녕 격리와 감금을 일삼았던 소록도의 아픈 역사를 돌이키며 일제의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분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이유로든 치료를 받지 못해 소중한 생명을 잃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계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이유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그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는 의사가 되고자 합니다.

 

봉사활동을 하며 환자분들로부터 따뜻한 인류애를 실천하신 두 간호사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은 의료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일평생을 한센인의 치료를 위해 힘쓰셨습니다.


만리타국에서 건너와 언어의 장벽이 있었음에도, 돈도 한 푼도 받지 않으시고 오직 사랑으로 한센인들의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보듬으셨습니다. 소록도에 가까이 살았던 저로서 이런 일화를 너무 늦게 알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의 봉사 정신을 세계에 알려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소록도라는 작은 섬의 아픈 역사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해 두 분의 노벨 평화상 추진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봉사활동과 노벨 평화상 추진활동을 하면서 의료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덕목과 의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인술을 실천하신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분들을 보고 저 역시도 금전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몸과 마음 모두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있어 의료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들의 삶에 한 줄기의 희망을 전하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갖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