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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ense to kill?

릴레이수필 제2383번째

작년 여름, 오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2016년 어느 날, 검진을 위해 집 근처 치과를 처음 방문했다가 방문 당일 한꺼번에 여러 치아의 보철 인상을 뜨고 진료비 기백만 원을 전액 지불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친구는 평소에 타 치과에서 정기 검진을 꾸준히 받았던 터였기에 집에 돌아가서 생각하니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음날 해당 치과를 다시 방문하여 본인의 초진 상태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영업방해로 경찰에 신고 되는 봉변을 당하였고, 결국은 진료비를 포기한 채 원래의 주치의에게 가서 삭제된 치아에 대한 보철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사실 친구가 처음 찾았던 치과의 원장(K 원장이라 하겠다)은 5년의 기간 중 차례로 두 곳의 치과에 개원하고 있는 동안 환자들의 불편 사례가 쌓였으며 ‘작년 8월 과잉진료로 피해를 입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결과 피해를 입은 환자가 450명에 달하고’, 현재 ‘치과 과잉진료 의혹으로 소송 중’이면서 ‘치협 윤리위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1월 3일자 치의신보) 사람과 동일 인물이었다.

 

필자의 친구는 K 원장에게 직접 피해를 받았던 당시에는 그 원인을 본인의 불운 탓으로 돌렸지만, 주변의 피해 사례가 쌓이고 K 원장에 대한 대응책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게 된 작년의 시점에는 대의적 심정으로 여러 방송사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증언을 하였고, 만일 소송 건에 대해 승소를 한다고 해도 해당 치과에서 치료를 종결하지 않은 본인은 법적인 보상을 받을 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 큰 피해를 본 고소인들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위로하고 도와주고 있다.


K 원장의 사건은 치과의사라면 익히 알고 있는 건이기에 피해사례를 나열해서 설명하지는 않겠다. 이미 여러 치과의사들이 피해 환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도와주고 있으며, 동시에 절대다수의 치과의사들은 선량하고 양심적이라는 말로 환자들을 안심시키려 노력하고 있음에 치과의사의 한사람으로서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히 여긴다. 앞에서 말했듯 K 원장 사건은 현재 치협 윤리위의 조사를 받고 있는 건이기에, 이와 관련해서 치의신보 지면을 통해 언급하는 것이 과연 적절할지 우려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친구로부터 처음 해당 사건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 워낙 컸기에 그 때로 돌아가서 느끼고 생각했던 바를 정리해 보겠다.

 

그 때 문득 떠오른 문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License to kill”이었다. 우리에게 영화 시리즈로 익숙한 영국 정보요원 제임스 본드는 007이라는 코드명을 받음과 동시에 코드명 앞의 숫자 00이 의미하는 살인면허를 부여받는다. 즉 007은 임무 수행 중, 살인 혹은 살인미수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게 영국 정보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치과의사면허는 어떠한가. 면허란 모름지기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행위를 특정한 경우에 허가하거나, 특정한 권리를 설정하는 행정행위>이며, <주로 국가에서 관리하고 해당 영역에 있어서 과점적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특정한 경우에 허가’된 의료행위의 기준을 보면 우리나라는 <의료법을 통하여 정부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 관리>하며, <금전적인 부분의 세부적인 심사는 심사평가원을 통해 국가가 직접 관리>한다. 살인면허의 면허와 치과의사면허의 면허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외람되지만, K 원장은 치과의사 면허를 ‘살인(여기서의 살인은 007의 정의로운 살인이 아닌, 범죄로서의 살인을 뜻한다)면허’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과연 <치과의사의 윤리선언문>에 나오는 ‘영리적 동기보다 환자의 복리를 먼저 생각’하는 절대다수의 치과의사들을 동료로 여기기나 하였을까.

 

나는 그녀의 나쁜 행위를 통해서 “License to kill”이라는 문구를 떠올렸고, 아이러니하게도 나 또한 치과의사면허와 동시에 선의의 “License to kill”을 부여받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서 나의 지난 진료 행위를 되짚어보았다. 근관치료(치수조직의 희생)나 발치(치아의 희생), 그것은 007이 부여받은 면허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성스럽고 정의롭게, 즉 환자의 구강건강 회복과 향상을 위해 쓰여져야 할 것이다(물론 이 때에도 치과의사는 설명과 동의의무를 지키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나의 경우는 가역적 치료와 비가역적 치료의 경계선에 있는 경우를 만나면 거의 항상 가역적 치료방법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종종 재치료를 해아 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환자분들과 사전에 충분히 대화를 한 이후에 진행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 없이 원만히 넘어가지만, 이런 일을 겪을 때면 나의 소신이 환자분들의 시간을 빼앗고, 불필요한 수고를 하게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곤 한다.

 

나의 과도한 표현(‘살인면허’)에 불편을 느낀 독자가 계시다면 이제라도 사과를 드린다. 다만 <치과 의료 행위를 행할 수 있는 허가>가 주어진 면허증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치과의사 윤리선언문>에 기록되어 있듯, <인류의 구강보건 향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자 하고, <끊임없이 학술을 연마하며 최선의 진료 수준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있는 정말로 훌륭한 절대다수의 동료치과의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