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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에도 치과 과열경쟁 심했다”

1985년 조선일보 보도 ‘눈길’ 개업의 절반 서울 몰려
당시 치협, 회원에 의료질서 당부 협조문 보내기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이미 개업 치과의가 설 땅이 없고, 농촌지역 역시 면 단위까지 치과의원이 늘어나고 있어 적절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과열경쟁으로 인한 의료질서의 문란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5년 4월 2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다방처럼 흔한 치과의원’이란 제하의 보도내용 중 당시 치협 부회장이었던 변석두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이 치과계 상황을 우려하며 언급한 멘트다.


이 보도에 따르면, 35년 전에 이미 치과 개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치과 포화상태라 할 수 있는 현재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1985년 3월 당시 전국의 치과의사 면허소지자는 5404명으로 이 중 2742명이 개업 중이며, 그 중 절반이 넘는 1406명이 수요가 많은 서울 지역에 몰려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그즈음 서울시내 다방 수가 6500여 개 정도 되니 치과의원 수가 다방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셈이라며 비교를 곁들여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다.


당시 서대문구 신촌로터리 주위의 경우 12개의 치과가 난립한 것을 비롯해 창천동 18번지에 3개의 치과가, 같은 동 30번지에는 2개의 치과가 개원해 있는 등 한 번지에 2~3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경우가 흔했다고 전했다. 또 강남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앞 경남쇼핑센터에는 5개의 치과가 나란히 들어서 ‘치과타운’을 이룰 정도였고, 또 다른 17개의 치과는 인근 반포아파트단지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경쟁하기도 했다는 것.


#2km 대로변에 46개 치과 형성 ‘과밀’

이 밖에도 종로 1가에서 6가까지 2km 가량의 대로변에는 46개의 치과의원이 늘어서 있고, 영등포구 여의도동에는 26개가, 변두리 지역인 은평구 응암동에도 17개, 구로구 독산동에는 12개가 분포돼 있는 등 서울시내 전체가 치과의원 과밀지대로 형성돼 있다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짚었다.


이렇다보니 과잉경쟁에 따른 부작용도 초래했다. 대부분의 치과들이 규정 수가보다 20~30%씩 낮춰 받는 등 덤핑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 중구 K치과의 경우 치료비를 20% 할인하고, 보험환자에게는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고 무료로 치료해준다는 선전유인물을 돌리다 이웃 치과의 고발로 치협 정화위원회에 넘겨지기도 했다.


또 치과를 포함한 병의원은 의료법 상 주소 및 전화번호 등을 알리는 것 이외의 광고행위를 일체 못하게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치과의원들의 유인물을 통한 홍보는 아파트단지 등에서는 거의 일반화 되다시피 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유인물에는 소아치과전문의, 보철전문의 등 국내 치과에 있지도 않은 전문의를 적거나 ‘미국에서 OOO을 전공했다’는 등의 경력을 선전하는 과대광고도 등장했다. 심지어 대기업 등을 돌며 10% 할인 바겐세일 계약을 맺는 치과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당시 치협, 치대정원 감소 정부에 촉구해
이처럼 의료질서 문란이 심해지자 치협도 과대광고와 덤핑 등을 자제해줄 것을 호소하는 협조문을 전국 회원에 보내는 등 의료질서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치협은 치과의원 과밀 현상이 치대 졸업정원의 증가와 함께 갈수록 심해질 것을 우려하며 문교부(현 교육부) 등 관계 당국에 건의문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건의문에서는 ‘치과대학의 급격한 정원 증가로 교육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고급인력의 효율적 관리라는 측면에서도 치과대학의 정원을 대폭 줄여줄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1985년 즈음에 서울에서 치과를 개원했던 원장들도 당시 힘들었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1983년 개원한 이태호 원장(미드치과의원)은 “종로, 반포 등의 지역에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때에도 치과가 너무 많은 데다 임대료도 비싸서 개원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37년 전에 구로에서 개원한 것도 그나마 경쟁이 덜한 곳을 찾다보니 그랬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또 40년 넘게 서울에서 치과를 운영해온 A 원장도 “그 당시 환자가 많아 봐야 지금의 5분의 1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가격 경쟁이 심해지고 환자 유치 경쟁도 심해진 시점이 아마 이 때부터가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80년대 치과가 과열된 배경에 대해 ‘한국 근현대 치과의료의 형성과 발전(혜안, 2006)’을 저술한 이주연 원장(세브란스치과의원)은 “60년대까지 몇 없던 치과대학이 70~80년대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설립됐고, 여기에 더해 사회보장보험으로 직장인의료보험제도가 생기고 경제가 호황기를 맞으면서 치과도 함께 가파른 증가추세를 나타나게 된다”고 진단했다.


이준규 서울지부 감사는 “일본의 도쿄 역시 서울처럼 치과 포화상태를 오래전에 겪었다. 그래서 현재 일본의 경우 페이닥터로 근무하다가 시간이 지나 원장이 은퇴하면 치과를 자연스레 물려받는 형식으로 치과를 경영하는 등 조금씩 해결책을 찾아 나가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 치과계도 이를 포함해 치과 포화상태를 해소할 다양한 고민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견해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