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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교 이야기

시론

며칠 전 읽은 인도 우화집 ‘신이 숨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라는 ‘류시화’님의 글 중에 ‘목발 없이 걷기’라는 단편을 읽고 요즘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여 씁쓸한 웃음이 나오기에 소개하려 합니다.

 

〔옛날 인도의 이야기입니다. 숲으로 사냥을 나간 왕이 말에서 떨어지는 낙상 사고로 한쪽 다리를 못 쓰는 큰 부상을 당하여 왕명으로 자신의 불구를 인정할 수 없어 시민들에게 ‘모든 국민은 목발을 짚고 다니고 이를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곳에서 왕명에 대한 불만으로 목발을 거부하였으나 경찰과 군부대의 강권으로 차츰 모든 국민이 목발을 당연히 받아드리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다리를 다친 왕이 죽은 후에도 모든 국민은 목발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재미있게도 어려서부터 목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두 다리로 걸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죽음과 함께 강제 법령이 자연히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목발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망상으로 비난 받았습니다. 한편 왕명에 의한 목발의 부당성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숲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현인이 있었는데 그는 가난하고 위험한 생활이었지만 목발에 의존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왕이 죽은 후 허약한 하체를 가진 젊은이들 몇 명이 때 묻은 목발에 의지한 채 숲속에 살고 있는 현인을 찾아와 목발 없이 걷기를 배우겠다고 청하였습니다. 두 발로 걷던 현인은 ‘나는 특별한 진리나 비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목발을 집어 던지고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대들도 나처럼 목발을 내려놓으면 된다. 나에게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쉽고 간단한 일이다.’라고 하였고, 몇 달 동안 젊은이들은 그에게서 걷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차츰 더 많은 사람이 그의 제자가 되었고 계율과 교리를 만드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현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렇게 수많은 추종자들이 ‘목발에서 해방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추종자 중에서 초기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목발을 내던지고 자유롭게 걷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매주 기도회를 열고 현자의 말을 경전이라 하며 암송하고 목발교 창시자를 찬양했지만 여전히 모두 목발을 짚은 상태였습니다. 오히려 이 무리에 합류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 자유로워진 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들은 목발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목발을 집어 던진 사람들입니다. 목발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물건은 황금 유리관에 소장된 현자가 불 속에 던져 버렸다는 타다 남은 목발의 잔해였습니다. 〕

 

최근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모든 언론 매체가 감염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들 알리면서 사회가 공포의 도가니가 되고 있습니다. 내 주변의 확진자 동선을 살피면서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확진자와 어디서라도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합니다.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진료용 마스크가 부족하여 또 다른 고민도 합니다. 감염 확진자나 슈퍼 감염원과 관련 특정 종교인 ‘신천지’가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오늘은 어느 순간 우리는 너, 나 없이 심각한 목발교 교인이 되어 있지 않나 생각하며 또 다시 울리는 핸드폰의 안전 안내 문자를 들여다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