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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과 만남의 길목에서

릴레이수필 제2393번째

봄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아침 새소리에 잠을 깼다. 그리고 눈부신 햇살...


봄이 오긴 했지만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활동이 제약받고, 학생 없는 교실에서 혼자 이야기해야 하는 온라인수업으로 삶 자체가 무엇인가에 억눌리고 자유롭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침의 햇살과 새소리 그리고 바람에 실려 오는 따뜻한 기운이 무거운 사슬을 끊고 밖으로 나가라는 봄 빛깔의 유혹을 한다.  


15년을 사용하던 카메라의 무게를 늙은 손목이 감당하지 못해 가벼운 기종으로 바꾸고도 서랍에 잠만 자던 카메라를 꺼내 한강으로 향했다. 집에서 한강으로 이어진 아파트 사이로 길게 이어진 공원에서 봄꽃 구경이라도 할 겸...

 

기대와 들뜬 마음으로 가벼운 걸음을 걷던 중 걸려온 전화 한 통... 그리고 전화기 건너 흐느끼는 큰언니의 울음소리


“숙아 빨리 와라...”


그리고 연상된 단어


아버지...


쿵... 모든 게 사라진다. 봄기운도 풍광도... 회색의 공간에 오로지 혼자 남겨진다. 

 

평소 다급하거나 위중한 일에 무척 냉정한 편이라 주변인에게 오해를 사는 사람이지만 지금은  100M를 완주한 사람의 가슴처럼 벌떡거림을 진정하며 “제발...”이라는 단어만 되뇐다.

 

아버지...


22살에  오랜 시간 병상에서 고생하시던 어머님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어머님이 떠나시는 날 곁을 지키시며 “이제 눈을 감고 편안하게 떠나라.”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어린 가슴에 못으로 박혀 오랫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너무 어려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 그리고 인연에 대한 약속을 몰랐기에 고통 받는 아내에게 남편이 할 수 있는 말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보내려 하시는지... 그땐 아버지도 참 젊은 나이였는데... 난 그저 내 감정에 서러웠다. 그렇게 아버지를 외면했던 시간을 보냈었다.

 

병원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지난 시간들이 스쳐 간다.


고3 시절 앉은뱅이책상을 놓고 아버님께 “용비어천가”를 배우며 저런 선생님이 있으면 수업이 참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첫 아이를 낳고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친정에 머무르는 동안 산모의 부기를 빼기 위해 아침마다 백화점에서 호박죽을 사 오시던 모습... 엄마의 정을 모르는 동생을 무척이나 안쓰러워하셨던 아버지는 동생에게 자주 메모를 남겼고 편지를 하셨다. 몇 해 전 그 편지와 메모들이 책으로 출간되었고, 편지 곳곳에 나에 대한 아버지의 걱정이 얼마나 크셨는가를 간접으로 경험하고 혼자 참 많이 후회하며 울었다.
차창으로 봄과 함께 기억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그렇게 병원에 도착했다.

 

최근 몇 달 사이 아버지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며칠 전 폐에 물이 차서 다시 입원을 하셨고 그것이 악화되어 여러 증상과 처치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중환자실로 이동하셔야 한다는 주치의의 설명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하여 중환자실은 면회를 할 수 없으니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인사를 해야 한다는 언니의 설명... 그리고 수많은 동의서... 우린 그렇게 아버지를 편안히 보내는 것에 동의를 했다.

 

아버지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부르니 눈을 동그랗게 뜨신다. 한참을 차가운 손을 잡고 까칠해진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윽고 중환자실 문은 닫히고 더이상 면회도, 만남도 허용되지 않는 중환자실 복도에 우리 모두는 그렇게 앉아 추억과 현실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여니 아기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며칠 있으면 엄마가 되는 딸아이가 준비한 출산 준비물이다.


침대를 한참 멍하니 쳐다본다.
그리고 아버지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첫아이 출산 후 친정에 머무는 동안 산모에게 좋다고 가물칫국을 끓여 주셨다. 비위가 무척 약해 가리는 것이 많았지만 모유 수유와 회복에 좋다길래 억지로 먹으며 딸에게 “국물이 엄청 비린데 엄마가 효정이를 위해 이걸 먹어.” 했더니, 아버지는 웃으시며 “난 내 딸 먹으라고 가물치를 준비했더니 넌 너의 딸을 위해 먹는구나.” 하셨다.

 

오늘이 그날 같다.
아버지와 이별을 하고 딸아이의 출산 준비물이 가득 찬 방에 앉아 있다.
그리고 속으로 아버지를 미워하게 했던 말을 60살의 딸이 중얼거리고 있다.

‘아버지 너무 아프지 않으셨으면 해요. 고통의 시간이 길지 않으셨으면 해요. 평안히...’

 

‘그런데 아버지, 떠나시기에는 봄볕이 너무 좋아요.’

 

아버지의 평안함을 바라는 마음과 다시 한번 더 봄볕 아래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은 간절한 두 마음이 얽혀 있다. 


인생은 헤어지고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연속선상에 있고 그 중간 길목에 서 있음을 알면서도 헤어짐은 쉽지가 않다.

 

봄볕이, 봄바람이 참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