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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버로드(Opinion Overload)

시론

올 봄은 미디어가 COVID-19와 일련의 선거들에 관련하여 너무도 빠짐없이 전해준 사실일지 모를 사실들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와 여론을 듣고 읽느라 바빴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世事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았었나 싶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를 넘어 ‘내가 옳다! 너는 그릇되다!’를 서슴지 않고, 사실의 판단에 대한 기준도 애매모호하거나 심지어는 기준이 아예 없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말과 글들도 부지기수였다. 우리는 그 많은 말과 글들을 듣고 읽으며 떠올리고 머물렀다 사라진 생각들로 이 봄을 보내고 있다.

 

각자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떠나간 생각들은 다 사라져버린 듯해도 실은 그것으로 소멸된 것이 아니라, 그 흔적과 메아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또다시 다른 듯한 같은 말과 새로운 듯한 새롭지 않은 글을 열심히 만들고 이어가는 중이리라.


무릇 말이 생각이고, 또 그 생각의 주인들을 하나하나 존중해야 하겠지만, 너무나 많은 이들의 생각과 말들을 동시에 ‘무대’에 올리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이고 인간성이 존중되는 공동체의 목적지로 향해 가는 방법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1990년대 초 Information Overload 라는 신조어가 생겼다면 지금은 Opinion Overload라는 신조어의 시대가 아닌가 싶다. 올봄 우리 사회는 늘 그것이 문제였지만 너무 많은 의견들과 그 의견들마다 댓글성 막말들로 꼭 해야 할 소통을 그르쳤다는 느낌이다.


침묵은 대화와 반대 개념이 아니다. 따뜻하고 적절한 침묵이 대화와 소통의 물꼬를 틀 수도 있고, 배타적이고 부적절한 소통은 무거운 침묵과 긴 단절을 잉태하기도 한다. 대화와 소통을 과도히 강조하다 보면 너무 많은 말이 나온다. 말이 너무 많을 땐 전해야 할 생각이 불완전한 경우거나, 전해야 할 생각을 본의 아니게 전하게 될 우려를 해야 한다.


개성 다양한 로마의 황제들 중 현자의 반열에 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도 너무 많은 말을 경계하며 “무릇 사람은 머리가 깨어 있고 통찰하는 지혜를 갖추려 해야 하며, 끊임없이 재잘대거나 분주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누구에게나 합당한 말을 하고, 거짓 없이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할 것”을 이야기했다. 칼릴 지브란(1883~1931)도 “그대가 말하고 있을 때 생각은 반쯤 죽임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이란 공중을 나는 새와 같은데, 말(言)의 새장 속에서는 생각이 날개를 펼 수는 있어도 정작 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라며 많은 말이 제대로 된 생각과 그 소통에 방해가 된다고 믿은 듯하다. 실로 말은 인간의 힘이다. 생각이 아무리 깊고 지혜로워도 혼자서 하는 생각은 그저 외로운 생각에 머물지만, 그 생각들을 서로 나누고 다듬는 과정에서 문화와 역사로 일컫는 인간의 힘이 생겨났다.

 

그 생각들이 서식하며 진화하는 오묘한 생태계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말(言)이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요소인 말이 생태계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진실, 정의, 배려, 겸양, 헌신 등의 본질을 담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본질적 요소들이 위험할 정도로 결핍된 지금은 그 소중한 말이 오히려 사람들의 생각들을 어지럽히고 괴롭히며 문화와 역사의 힘을 쇠하게 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알랭 코르뱅은 그의 인기작 ‘침묵의 예술’에서 “현대에는 침묵보다 말이 더 위험하다는 확신을 갖는다”고 했다. 차가운 침묵처럼 두렵고 준엄한 것도 없으며 따뜻한 침묵처럼 부드럽고 깊은 위안도 없음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침묵의 힘이 필요한 때이다. 그가 전한 여러 선현들의 말들 중 ‘침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묵보다 더 가치 있는 말을 해야 한다.’는 이 소란스럽고 어지러운 시대를 기다리던 예언이었다.


다행히도 우리 치과계는 간단명료한 언어를 가진 순수과학을 배운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각의 혹자들은 각자의 일에 순수하게 매진하는 삶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치의들이 뻔한 일을 일평생 반복하는 naive하고 거시적 통찰력이 없는 집단일 거라는 편견을 가진 듯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가장 직관적이고 치우침 없는 과학적 시각과 사고를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치과계는 명확하게 옳은 방향을 제시하면 바로 인지하고 반응하는 공동체로서 엄청난 잠재력과 기동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집행부를 꾸린 우리들의 협회와 지부들의 좀 더 깊은 생각과 신중한 표현을 바탕으로 기품 있는 행보를 기대하며, 귀한 잠재력을 가진 구성원들의 구심점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