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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워렐 메이요

스펙트럼

미국 로체스터에는 메이요 클리닉이라는 종합병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메이요 클리닉’은 의료계 외에는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클리닉이라는 이름 때문에 미국 어디에 있는 동네 의원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그러나, 메이요 클리닉은 삼성의료원, 백병원과 같은 유명한 국내 대형 병원들이 설립될 때 모델이 된 병원일 정도로 보통 병원이 아니다.


의사만 수천 명, 직원 수만 명의 이 거대한 병원에는 미국의 대통령이나 유럽 왕족, 연예계 및 스포츠계 톱스타 같은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모여들어 치료를 받는다. 중동의 부호들이 검진이나 치료를 받기 위해 자가용 비행기로 와서 예약 순서를 기다리는 병원이다.

 

이미 오래 전에 이 병원을 위하여 공항이 지어지고 도로가 놓였다. 그 주변에는 호텔과 부대시설들이 모여들었다. 주 전체가 이 병원으로 인하여 일어나고 번성하였다. 실로 대단한 병원이 아닐 수 없다.


메이요 클리닉의 시작은 윌리엄 워렐 메이요의 작은 진료소였다. 윌리엄 메이요는 작은 체구로 마차를 몰며 시골 구석까지 왕진을 다녔다. 사실 워렐 메이요 시대의 메이요 클리닉은 그저 작은 의원에 지나지 않았다. 윌리엄 메이요가 지금처럼 성숙한 메이요 클리닉에 기여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그저 아들 둘을 잘 키운 것밖에 없어 보인다. 윌리엄 메이요의 두 아들이 당대 최고의 의사로 성장하면서 메이요 클리닉의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되었다.


사실 윌리엄 메이요 시대의 의술이란 아프면 사혈을 하고 토하는 약, 설사하는 약을 주는 식이어서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 특별할 것이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의 의술은 죽어가던 사람도 살리고 내 팔이 잘려 나간 자리에 남의 팔도 이식하는 수준이지만 기초적인 수준의 의과학이 태동하여 의술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기 시작한 것은 사실, 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정성을 쏟아 진료하고도 받는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제야 막 터를 잡아 가난했고, 개중에는 땅과 가축을 사느라 큰 빚을 진 사람도 더러 있었다. 사람들이 수고비로 1달러를 건네면 윌리엄 메이요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감사히 받았다.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베이컨 한 덩이를 내주면 그 또한 군말 없이 받았다.’


메이요 삼부자에 대한 기술이 담긴, 메이요 평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지금처럼 번영한 메이요 클리닉의 시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소박한 모습이다. 메이요 클리닉이 비영리병원이고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 기부가 끊이지 않는 병원임을 생각할 때 윌리엄 메이요의 가치관은 지금도 메이요 클리닉 전체를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 받는 의료기관’이 메이요 클리닉의 별칭이다. 내가 이끌고 있는 치과… 우리 동네에서 가장 사랑 받는 치과가 되면 좋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