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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가 되지 않을 테다

Relay Essay 제2400번째

뒤늦은 나이에 결혼해 이제 3년 남짓,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이제 곧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그 동안 두 딸의 엄마에서 두 딸과 세 아이의, 이제 곧 네 아이의 할머니가 되는 우리 엄마도 내가 아내와 엄마, 며느리가 되는 동안 ‘엄마’에서 ‘친정엄마’로 신분이 하향 조정되었다.


친정엄마는 월급날이 되면 어김없이 전화를 한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족들 건강상태를 나누다 보면 그 다음은 항상 “고맙다”로 끝이 난다. “용돈을 보내줘서 고맙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


‘키워줘서 감사하다, 내 엄마가 되어줘서 고맙다’ 나는 지금껏 제대로 얘기해본 적이 없는데 엄마는 늘 조금은 쑥스럽게, 그리고 조금은 촉촉하게 그렇게 얘기한다. 어버이날이 되고 본인 생일이 되어 용돈이라도 조금 챙겨드리는 때면, 이번에는 사위에게 전화해 “뭘 이렇게 많이 주었냐, 고맙다, 잘 쓰겠다” 감사를 전하신다.


“당당히 받아라, 고맙다는 말 하지 마라, 당연히 엄마가 누려야 하는 거다, 내 돈 벌어 내가 주는 용돈이니 누구에게도 고맙다, 미안하다 하지 마라” 그렇게 누누이 당부해도 그때는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으마’ 약속하고서도 다음이 되면 또 똑같이 “고맙다, 미안하다”고 얘기한다.


속 깊은 남편이 친정에 매달 드리는 용돈이 적다며 더 드리자고 해서, 넌지시 친정엄마에게 얘기하면 한사코 더는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뻔한 살림에 넉넉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도 본인은 항상 넉넉하다고 얘기한다. 치약, 칫솔 파는 딸내미가 치약이라도 몇 개 가져가는 때는 기어코 몇만 원 쥐여주고 치약값을 지불해야 속 편해하는 양반이다.


시집 간 딸이 친정에 돈 보내고 친정에 너무 신경 쓰면 시댁에서 예쁘게 보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니 멀리 사는 딸아이, 이제 걷기 시작한 손녀딸이 보고 싶고 궁금하면서도 친정에 너무 자주 오지 말라고 당부하고, 혹시나 책잡힐까 본인이 먼저 전화하는 일도 거의 없다. 세상 이런 고리타분한 논리가 어디 있는지.


시집 보내기 전에는 고집 센 천방지축 딸 때문에 맘을 졸이고, 시집을 보내고 나서는 과년해 시집간 딸에게 혹시나 누가 되지는 않을까 또 전전긍긍이니 그 속이 편할 리 있을까. 허리, 무릎, 어깨가 슬슬 고장 나기 시작하더니, 고혈압에 당뇨에… 못내 말하지 못했던 속앓이가 지병이 된 듯하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아프면 병원 가고 약 먹고 본인이 챙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더 가관인 것이, 아파서 자식들에게 폐 끼치면 안 되니 스스로 더 잘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병상에 누워 돌아가신 아빠와 할머니를 보며 느낀 본인 생각이라니 뭐라 얘기할 수는 없지만, 자식이 어릴 때는 어린 자식 보살피기 위해 강해져야 하고, 자식이 다 커서는 다 큰 자식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니 어째서 그녀 인생에서 본인은 빠져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나는 딸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배 속의 아이를 두고 그렇게 얘기했었다. “내 의무상, 도리상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내 너를 돌봐주겠지만 그 이후에는 너의 인생이니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라” 하고 말이다. 이제는 종종 그렇게 얘기한다. 나는 네 엄마이기는 하나, 네 친정엄마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걱정해주고, 자식 앞에서, 사위 앞에서, 시댁 앞에서 늘 약자이기만 한 친정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나 사실은 내 딸아, 엄마가 이렇게 객기를 부려도 네가 이해해줘야 한단다. 실은 엄마는 친정엄마가 될 자신이 없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로 곁에 함께 있지 못하는 딸의 부채감을 덜어주고, ‘병원에 갔다, 좋아졌다’는 말로 딸의 걱정을 지워주고, ‘충분하다, 넉넉하다’는 말로 딸의 지갑 사정까지 헤아려주는… 네 할머니 같은 친정엄마는 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