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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Relay Essay 제2402번째

동심은 어린아이의 마음, 순진한 마음을 뜻한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나쁜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순진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이라는 부정적인 뜻이 있다.

 

그렇다면, 세상 물정에 관심이 없는 아이의 마음이 동심인가? 이런 관념의 틀 안에서는 세상을 빨리 알아가는 요즘 세대의 아이들은 동심이 조기에 없어진다고 봐야 할까?

 

2016년 3월에 태어난 첫째 딸은 이제 제법 대화가 통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피아제의 인지발달론의 단계로 보자면, 직관적·상징적 사고가 가능한 전조작기(preoperational stage)에 해당되어 언어를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이해하며 논리적 추론이 가능한 단계가 되었다. 행복, 무서움, 사랑, 죽음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말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고,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군의관 시절의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느 초보 아빠처럼 다소 수동적으로 놀고 동화책 읽어 주기만 하다가, 아이와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의외의 것이었다. 신데렐라 놀이를 하다가 문득 “아빠 죽는 게 뭐야?”는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헤어져서 다시 볼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거야”라고 했더니 아이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했다.

 

부모님을 잃었다는 동화를 보더니 죽음에 대한 무서움이 생겼나?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은 의외였다. “나는 아빠를 사랑하는데 왜 아침마다 헤어져?” 출근길에, 가지 말라는 애처로운 눈동자와 현관문을 닫으면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가 다시금 생생하게 와 닿았다. 다시 잘 설명해주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동화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론으로 종결되지만, 부모님을 여의시거나 독사과로 죽이려고 하는 등 동심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서론으로 시작한다. 죽음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보니, 샤를로트 문드리크의 ‘무릎딱지’라는 그림책에 이르렀다.

 

요약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어떤 감정일까, 아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이렇게 설명해줄 준비를 마쳤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죽음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대신, 나의 현실적인 고민은 동심의 세계에서 어떻게 해석될지 궁금해졌고, 적극적인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픈 사람이 너무 많고, 힘든 수술을 해서 힘들었어, 내일은 병원에 안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동심의 눈으로는 우리 직장인의 비애를 이렇게 바라봤다. “아빠는 아픈 사람을 치료해줘야 하는 사람이니까, 내일도 병원에 가서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힘들면 집에 와서 쉬면 돼. 나는 스스로 밥 먹고 씻을 수 있으니까 아빠는 이제 쉬어.” 급여의 개념이 아직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기특한 말이겠지만, 동시에 아이가 보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봤다.

 

앞서 아이와 놀아준다고 표현은 했지만, 실제로 아이는 눈뜨고 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 놀거리를 찾아내고 지쳐 잠들 때까지 논다. 동심의 세계에서는 체력이 다하기 전까지는 지치는 일이 없다. 어린이는 노는 것이 일이고, 우리는 진료하는 것이 일이다. 동심의 세계에서 의사가 진료하다가 지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논어 옹야편의 명언이 떠오른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동심은 열정 가득한 즐거운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측면에서는, 부담스러운 진료를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세미나에 참석하고, 진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나간 파노라마 사진을 보면서 한참을 고민하는 우리 의료진은 누구보다도 동심과 가까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전대미문의 역병 사태에 가장 무거운 역할을 하는 우리 의료진 모두,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채워진 동심을 품고 소중한 하루를 즐겁고 충실히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