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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치 ‘여성인권센터’ 발족식을 앞두고

특별기고

얼마 전 기사에서 읽은 내용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오빠가 나오기 전에 밥을 먼저 먹었더니 할머니가 여동생을 나무랐고, 그것에 항의하여 할머니에게 화를 낸 여동생은 부모님께 혼났고, 손찌검을 한 아버지를 중학교 여학생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의 출동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버릇을 고쳐야 한다며 아이를 방치했고, 스트레스로 학교를 결석했다는 이야기였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벌새’가 떠오르는 사건인데, 영화의 배경이 성수대교가 붕괴한 1994년의 일이니 4반세기 전이나 현재나 가족 간의 성평등과 관련한 인식이 그렇게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한 방증일 수도 있겠다.


그 기사를 읽고 어렸을 적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외할머니 댁에 가면 남자들이 밥을 먹은 다음 여자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배도 고픈데 먼저 먹을 수 있고, 맛있는 반찬은 남자들만 먹는 게 단순하게 부러웠다. 예전에는 그랬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 만화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이야기 아니냐고 하면서 엄청 웃는다. 내가 92학번이니 실제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지금도 많은 할머니, 엄마와 여성들이 그 시대를 살고 있다. 남성들만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도 남녀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문제가 있다고 배우지도 못했다.


젠더(Gender), 성인지 감수성, 엘리베이터 시선(사람을 위아래로 쭉 훑어보는 시선) 등의 단어를 접했을 때, 처음에는 생소했다. “남친 있어요?” “결혼했어요? 왜 아직 안 했어요?” “좀 꾸미고 다녀요” “동안이네요” “집안일은 내가 도와줄게” 이런 말들이 여성을 차별하거나 불평등한 성인식에서 나온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러한 일상적인 성차별에서 더 나아간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차별적이고 위계적인 성별 권력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이며, 신체적인 문제와 더불어 정신적, 언어적인 폭력 등을 포함하므로 심리적, 사회적 고통까지 야기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 억압을 강요받고 있는 젠더로서의 여성이라는 문제와 억압을 유형·무형적으로 강요하는 문화와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보아야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인권센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 변화에 발맞춰 가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재의 성차별 문화에는 세대 간 갈등도 상당히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계적인 성별 권력관계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교수, 임원, 선배들은 연령대가 높고 성평등과 관련해서 교육을 받거나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에서 성장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자라나는 젊은 세대는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부터 성교육을 받고, 성평등이 당연한 문화와 교육환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평등에 대한 인지의 수준이 달라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학교나 병원에서 많은 학생들이 교수님이나 진료과장 등 상급자의 성인지 수준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조사보고도 있다.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했고, 스스로 배워보려고 해본 적도 없었던 선배들이 먼저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모범을 보여야 바람직한 성평등 문화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지속적인 관심과 현장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의 실행이 없으면 변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아젠다를 표방하는 기관이 현재 치과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0년 7월 16일 대한여자치과의사회 여성인권센터가 발족한다.


여성인권센터는 치과계 내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에 대해 대응하며, 성평등의 치과계를 만들어 나아가는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폭력 예방과 피해자의 지원을 통해 여성인권의 중추기관으로서 모든 여성치의의 인권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여성인권센터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할 것이다.


첫째, 구체적인 인권침해 사안을 해결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으로 고충 상담 창구로서의 역할과 피해자 지원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전문상담원의 실무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다.


둘째. 여성인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치과계에 존재할 수도 있는 불평등한 제도나 관행 등을 조사하고, 성폭력이나 언어폭력, 불평등한 문화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관계기관에 의견을 보내고 개선을 권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성평등에 대한 교육이 다양한 기회에 많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할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성폭력 예방 교육과 성평등, 인권 교육 등을 실시하도록 하여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킬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와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대외협력에도 노력할 예정이다.
여성인권센터에서 하고자 하는 일은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고 들어 서로에 대한 비난이나 혐오를 주장하는 과거지향적인 것이 아니며, 자라나는 치과계의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펼쳐나가는 데 부족함이 없는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필요한 성평등 문화를 지향하는 미래지향적인 활동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여성인권센터는 성평등을 기반으로 모든 치과의사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올바른 변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