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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진’ - 내게 다가온 치유의 길

Relay Essay 제2404번째

많은 사진가들이 자신이 기록하고 싶은 피조물들을 현실 생활로 부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최대한 많이 담으려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그것을 왜 담았는지 그 의미조차 잊어버리고 구경거리들만 남기곤 한다. 이차원 공간에 담아 놓은 구경거리들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들은 나에게 과거의 나로부터 미래의 참나를 향한 통로가 될 수 있다.


‘도대체 나는 왜 사진 작업을 하는가?’ 이것은 수없이 많이 생각해 보았으나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던 화두였다. 나는 치의학 분야의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로서, 지난 수십 년간 국내외 다양한 학술모임에서 결손된 조직들의 치유 반응 기전, 수복재료 및 치료방법들을 발표하며 임상에 임해 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촬영한 사진 작품들을 통해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도 치유해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참가해 보았던 사진치유 워크숍들은 거의 모두 촬영의 결과물보다는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로 치료를 하고 있어 원래 내 기대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던 중 최근에 갑자기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해온 사진 작업들에 의해서 남들이 치유되기 이전에, 사진 작업을 하면서 나 자신이 치유되었구나 하는 것이다.


어려웠던 청소년기, 치과의사가 된 이후 무의식 속에 나를 억누르던 직업상의 압박감, 여러 가지 합병증들과 질병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환자와 보호자들을 겪으며 받았던 수십 년 간의 스트레스, 몇 가지 고난을 겪으며 얻었던 울화병과 우울증, 사회 부조리에 대한 무력감, 바쁜 생활 속에서도 혼자 느끼던 소외감과 외로움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렌즈 속에서 미를 추구하고, 나아가 미를 추구하는 여러 가지 사진 작업 속에서 선한 진리를 느낄 때가 있는 것이다.


사진을 다시 시작한 이후 담아 왔던 작품들을 바라보니 과거의 나로부터 미래의 나를 향한 길이 보였다.


우리 모두는 살아오면서 공허감, 집착, 분노, 자기 연민, 주체할 수 없는 욕망, 실패 등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겪어왔다. 그런 와중에서 더 많은 인정과 성공, 정서적 친밀감 등이 채워지지 않으면 고독감에 힘들어하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데, 결국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 속은 ‘상처 밭’에 빠져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어떤 이들은 풍요와 쾌락 속에서도 불만족과 함께 그 뒤에 숨어있는 외로움이 심해져서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깨어지고 흔들리는 삶에서 헤매곤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일들이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의 낭패감이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린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불안감과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많은 이들이 자연 속의 피조물을 보며 안정을 찾곤 한다. 감성의 눈을 통해 자연 속의 피조물들을 관조하면 우리네 삶 속의 상처들이 치유될 수 있다. 렌즈 속에서 대상들을 살피고, 면 위에 그것들을 옮겨 담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절망과 좌절, 슬픔, 분노 등의 격한 감정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진, 선, 미의 세계로 들어가며, 상처받았던 마음의 거친 표면들이 깨끗하게 펴진다.


세찬 바람과 엄동설한 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꿈틀대다가 봄기운과 함께 생동하는 나무들과 꽃 그리고 풀, 여기에 화답하듯 날갯짓하며 기지개 켜는 새들… 초봄의 거친 바람을 견디어 낸 후 햇빛과 미풍 속에서 부활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거룩하기까지 하다.


이상하게 새만 보면 담고 싶었다. 그러나 치과 종사자들의 직업병인 허리와 목의 디스크로 인해 일상 진료가 힘든 적도 있어서 고개 들어 새를 촬영하는 것은 언감생심 불가능했었다. 대학병원, 안마, 지압, 효소 요법 등 좋다고 하는 치료에 엄청난 비용을 소비하고도 효과는 그 순간뿐 별 차도가 없던 중 몸 펴기 운동 등의 스트레칭을 하면서 조금씩 몸이 회복되었고, 위로 15도 밖에 고개를 못 들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고개를 완전히 젖힐 수가 있게 되었다. 매화, 벚꽃을 촬영하던 중 새들이 함께 보였다. 그들을 담다 보니 마치 초상 사진을 찍는 것 같았고, 여러 가지 표정들과 그들의 생각들이 읽히곤 했다.


그러고 보니 사진을 다시 시작한 이후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면서 내가 살아온 삶이 떠오르고, 결과물들이 어떤 길을 따라 순서대로 담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학 재직 시절 어려움에 빠졌을 때 격려하고 충고하며 이끌어준 동료 교수들과 지인들, 개원 후 예기치 못한 변고로 칠흑 속에서 헤맬 때 어둠 속 한 줄기 빛으로 마음 속을 밝혀주신 신부님들의 가르침을 통해 보게 된 나의 모습들, 회개, 평신도 성소, 그리고 잠심과 영적 식별에 대한 가르침들…


이상에 언급한대로 카메라를 들고 렌즈 속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비치는 피조물들이 나의 감성을 하나 하나 자극하였고, 감성이 발현되다 보니 양파 껍질 속에 감추어져 있던 내 안의 참모습이 양파 껍질이 한 꺼풀씩 벗겨지듯 드러나는 것 같다.

 

이번에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개교 백 주년 기념 사진전을 진행하며 또 다른 깨달음이 있었다.  계속해서 ‘치유와 영원한 미학의 길’을 추구하려면 좀 더 배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