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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시론

우리는 종종 화를 낸다. 얽혀 살다 보면 어찌 기분 좋은 일만 있겠는가 하며, 화를 가라앉혀보려 노력하거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려보거나, 그도 쉽지 않으면 화가 난 일 자체를 잊어버리려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화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반응은 분명 화가 난다는 것이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절대 이로울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화가 날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라는 옛 말씀도 살아볼수록 참으로 귀중한 교훈인지라 필자도 화가 날 땐 이 말씀을 꼭 기억하려 늘 노력하는데 정작 화가 날 땐 도통 기억이 안 난다.

 

베트남의 승려인 평화주의자 틱낫한은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평화로운 마음가짐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화를 내는 것이니 당연히 그의 저술들에는  ‘화’에 대해 여러 면에서 깊이 생각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가 쓴 책들 중에는 아예 ‘화’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그 책에서 화를 자주 내는 것이 왜 좋지 않은 지를 ‘집 지하실에 사는 사나운 괴물’의 예를 들어 흥미롭게 충고한다.

 

요컨대 화가 나고, 화를 낸다는 건 마치 우리의 마음이라는 집 지하실에서 ‘화’라는 괴물이 문을 열고 올라 나와서 마구 날뛰는 것과 같은 상황이며, 자주 그 문이 열릴수록 또는 열어줄수록 그 괴물은 점점 더 쉽게 문을 열고 나오게 되고, 심지어는 ‘지하실 문’이 늘 열려있게 되어 매사에 늘 괴물이 날뛰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고 알기 쉽게 빗대어 설명한다.

 

틱낫한 외에도 많은 이들이 화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철학자이며 프린스턴대학 최초의 여성 전임교수였던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우리가 무력하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한다’고 ‘화’에 대해 직설적으로 언급했고, 빈 배(虛舟)와 부딪힌 배의 주인은 빈 배에 대고 화를 내지 않는다는 장자(莊子)의 가르침은 화의 생성요건에 대해 설명한다.

 

인도의 성자로 추앙받는 독특한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도 인간의 ‘화’는 인간의 마음속을 제외하고는 다른 생명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의 고통이라며, 유한하고 무기력한 존재인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지는 감정이 화라고 설명한다. 많은 이들의 생각과 그 결론에서 인간이 숙명적으로 가지는 생명, 그 유한함, 그에 따른 무력함, 나아가 그런 것들에 대한 초월의지의 표현이 화라고 정리된다. 근원적으로 화가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음을 전제로 하니 죽기 전엔 뗄 수 없는 숙명이라면 적당히 조절하는 쪽을 권하는 입장들이다. 

 

정신건강의학에서 얘기하는 바를 학습한 적이 없더라도 고통과 상처받음이 지속되면, 우울하고 슬퍼지며 그것이 더 심화되면 분노(화)로 변화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수년 전부터 등장하여 심심찮게 보이는 ‘힐링’이라는 단어의 광고카피로서의 유행은 결코 우연이 아닌 상처받은 이 시대 우리들의 화난 자화상에 대한 인정이다. 우리는 언제 그렇게 많은 상처와 고통을 받아 분노의 표정으로 사는 종이 되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우울과 슬픔을 한가득 안긴 걸까. 이미 깨달은 누군가가 마치 예언처럼 미리 답을 적어두었다. ‘화는 남의 잘못을 빌어 자신을 벌하는 일이다’라고 뚝 잘라 설명했다. 다름 아닌 우리들 각자 스스로가 자신에게 상처와 분노를 건네어 벌주고 있어왔음을…

 

힘든 시대를 함께하며 인간공동체는 몸과 마음의 몸살을 앓는다. 누구나 본의 아니게 크고 작은 잘못을 서로에게 저지르며 살아간다. 말로 행동으로 마음으로… 이러한 잘못들과의 부딪힘에 지친 많은 이들의 지하실 문고리가 허술해져 종종 스르르 열리거나, 어떤 경우에는 아예 열려있는 채로 ‘화’에 휩쓸려 지내는 듯하다. 그 소란스러움에 문을 잘 닫고 살던 이들의 지하실 문들도 덩달아 들썩거리는 듯도 하지만, 그래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지하실 문단속을 잘하며 남의 잘못을 빌어 스스로를 벌하지 않는 밝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밝은 길을 걷는 이들의 마음은 행복하고, 행복한 이들이 가지는 마음이 희망이기에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그 희망으로 수많은 오늘이 내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