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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애 도시를 헤매다

Relay Essay 제2405번째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도시 한복판, 빽빽한 빌딩 사이에서 한숨을 쉬어본다. 두툼한 마스크 때문인지 무거운 마음 때문인지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5년 전 영등포에 개설되어 중증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치과진료를 하고 있는 스마일재단의 장애인치과센터 ‘더스마일치과’가 이전을 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한 장애인단체에서 무상으로 임대를 하였던 공간이었는데 슬프게도 갑작스럽게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개원을 준비하는 보통의 치과의사들이라면 지역 인구와 유동성, 홍보 효과 등을 우선적으로 확인하겠지만 나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장애인치과를 개설하기 위해 많은 고려사항이 있지만 그중 가장 난감한 것은 장애인 편의시설이다.


먼저 계단 혹은 턱을 지나야 진입이 되는 건물은 제외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전동휠체어가 진입하지 못하는 소형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건물도 탈락이다. 주차가 공간이 없고, 진입로가 좁아 휠체어가 지나가기 어려운 곳들도 곤란하다. 장애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지하철역에서 조금 멀더라도 도보가 가능해야 한다. 휠체어 장애인이 진입할 수 있는 구조와 규모를 가진 화장실을 가지고 있는 건물도 매우 드물다.


간혹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있는 건물도 현장에서 직접 보면 대부분 고장나 있거나,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진 건물의 임대료는 비영리로 운영되는 장애인치과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구강건강이 심각하게 좋지 못한 중증의 장애인이 있다고 가정한다. 미리미리 치과에 가지 않았고, 바로바로 이를 잘 닦지 않은 사람, 개인의 탓이다. 그러나 장애로 인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수입이 적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가 진료실까지 닿지 못하고, 그래서 이를 잘 닦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방법을 배울 수 없었고, 제때 치료를 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까지 모두 개인의 탓으로만 생각해야 할까?

 

「무장애도시  ː  노인, 장애인, 어린이, 임신부 등 사회적 약자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고 개별시설물이나 구역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생활환경이 구축된 도시」

 

그렇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단순히 장애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나 또한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나가는 순간 맛집이 아니라 유모차가 갈 수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했고, 기저귀를 갈 공간이 없어 여기저기 헤매다 잽싸게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낭패를 겪은 적이 있다. 예약해 놓은 병원에 가니 엘리베이터가 없어 한 손에 아기, 한 손에 유모차를 들고 식은땀을 흘리며 아슬아슬 계단을 오른 경험도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 BF(Barrier Free) 인증제도’ 등 요즘 시대에 발에 채듯이 듣는 용어들이다. 장애인 등 편의증진 보장법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현실은 저 멀리 있다. 신규 개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의사들에게도 큰 골칫거리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선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내 미래, 내 가족 그리고 내 이웃들의 문제이다.
접근권의 기본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이다.


스마일재단의 활동가로 일을 한 지 만 15년이 되었다.
무언가 거대하고 숭고하며 거창한 계획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다.
나를 위한 일이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면 그래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차이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순진한 마음으로...


나는 오늘, 유장애 도시에서 무장애 공간을 찾아 헤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