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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온 치과의사 하비바입니다

Relay Essay 제2410번째

저는 파라오랜드 이집트에서 온 치과의사 하비바입니다. 2017년을 끝으로 치과대학 6년을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시아에 관심이 많은 집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언니는 중국에 관심이 많았고 오빠는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아시아에 속한 나라들에 대해 자주 접했지만 저는 중국과 일본보다는 한국어에 더 끌렸습니다.


한국어를 처음 듣는 순간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한국어는 왠지 모르게 저에게 친숙했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에 한국어의 매력을 더 느끼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시점부터 제 가족들, 현지 친구들,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왜 굳이 한국어를 배우느냐, 왜 한국에 관심이 많느냐”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한국에서도 거의 매일 듣는 질문입니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저에게 많은 관심과 호기심에 질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흔쾌히 대답해줍니다.


제 가족은 저를 지지를 해주었지만, 제 친구와 동료들은 제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엉뚱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떤 혜택을 받을지가 아닌, 제가 좋아하는 것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카이로의 세종어학당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 한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었습니다. 또한 이집트에 살고 있는 한국인 가족 중 한 명과 친해졌고, 그들은 저를 따뜻하게 딸처럼 대해줬습니다. 이집트에 아랍어나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한국인들이 많고, 의사소통이 어려워 병이 있어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그리고 그때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하는지 말해줬습니다. 통역사를 고용할 수 있다고 해도,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게 해준 동기가 되었고, 원어민 수준에 도달 할뿐만 아니라 의학적 용어에 친숙해지는 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세종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후, 전 세계에서 2명에게만 주어지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상명대학교에서 6개월 동안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제일 처음 충격을 받았던 것은 매우 정교한 지하철 노선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집트에는 3개의 간단한 노선만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자연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한국의 자연은 이집트와 완전히 다른데, 우리나라는 땅의 90%가 사막이라서 나무가 많지 않습니다. 사실 두 나라는 모두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탐험하고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6개월 동안 한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었고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다 보니 실제로 집에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국이 제 두 번째 집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외국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싶어 하는 친구들과 동료들 대부분 유럽, 미국 그리고 호주에 갑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대세를 따르려는 선택들입니다. 한국과 같이 다른 나라들도 충분히 좋은 치과 과정을 제공하고 있고, 저는 모두가 선택하는 길을 따라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한국은 이미 문화와 카리스마로 저를 사로잡았고,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교육률을 가지고 있고, 미국과 비교해보면 20% 이상 높습니다. 이러한 높은 교육 수준과 한국의 특성은 지난 70년 동안의 경제 성장 원동력 중 하나였습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였는데, 오늘날은 세계 12위의 경제 선진국이며, 모두 이 교육 시스템과 무엇이든 배우려는 한국인들의 열정과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빨리 빨리’ 문화를 세계에 소개했습니다.
사실 이 경험을 이집트로 가지고 가고 싶었습니다. 이집트는 현재 혁명 이후 가장 중요한 발전 단계에 있으며, 한국의 한강과 비슷한 나일강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코로나19가 악화되면서, 상황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효율적이고 신속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두려웠지만, 저는 스스로가 무책임한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집트로 돌아가게 되면 또 다른 확산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 남았고 정부의 통제에 협조했습니다.


대유행 질병이 존재하는 경우, 우리 모두는 확산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규칙을 따르고 어느 곳으로도 이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엄격한 위생과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과 친구들을 안심시키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당황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가 코로나로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서로 더욱 도와주고 힘을 합쳐야합니다. 한국인의 '정'으로 코로나를 함께 극복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