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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일 치협 탄생으로 봐야”

치과의사면허 1호 함석태 선생 등 조선인 참여
1981년 경주총회 만장일치 의결, 치과계는 따라야

 

<변영남 전 치협 협회사편찬위원장 인터뷰>

 

“1921년 10월 2일,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일을 치협 창립의 뿌리로 보는 것은 당시 시대상을 잘 이해하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조선치과의사회에 치과의사면허 1호 함석태 선생님 등 우리 선배들이 활동했고, 무엇보다 이러한 역사는 치협 대의원총회 의결을 통해 결정한 것입니다.”


치협이 내년 10월 2일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관련 행사를 준비하는 것을 두고 치과계 일각에서 치협 창립일의 정통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억울하고 가슴 아파도, 일제 치하에서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라고 얘기하는 변영남 전 치협 협회사편찬위원장(성신치과의원)으로부터 관련 논쟁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변영남 전 위원장은 “현재의 치협 창립일은 수십 년 전 경주에서 열린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된 것이다. 치협과 치과계는 이를 따라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이견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조선 출신 치과의사들이 실제 활동을 했고, 또 이들이 늘어나고 발전해 온 역사는 1921년부터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치협의 창립일과 관련 쟁점이 되는 부분은 ▲현재 택하고 있는 1921년 10월 2일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일 ▲1925년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서울치대 전신) 1회 졸업생들이 배출된 후, 이들이 같은 해 창립한 한성치과의사회 창립일 ▲1945년 해방 후 12월 9일 설립된 조선치과의사회 중 어느 단체가 가장 정통성을 가지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1981년 4월 25일 경주보문단지에서 열린 제30차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는 서울지부와 군진지부가 상정한 ‘일반의안 제16호, 치협 창립기념일 제정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1921년을 치협이 탄생한 해로 의결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창립일은 집행부에 위임, 최종 1921년 10월 2일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일을 치협 창립일로 결정한다.


당시 협회장이었던 지헌택 고문은 관련 회의 기록에서 “날짜 정하는데 여러 의견이 있어 고충이 많았다. 어떤 기관이나 단체든 긴 역사를 갖는 것이 좋다. 대외적으로도 역사가 긴 것이 좋고 회원들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총회 발의안대로 조선치과의사회 창립기념일로 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1921년 창립된 조선치과의사회의 정통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측은 당시 단체의 구성원이 일본인들이었고, 조선 출신 치과의사는 일부라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함석태 선생을 필두로 김창규, 한동찬, 이희창 선생 등이 조선치과의사회에서 활동했고, 이후 활동 조선인들이 계속해 늘었다는 것이 변영남 전 위원장의 얘기다.


변 전 위원장은 “당시 조선 출신 치과의사들은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조선총독부로부터 치과의사 면허를 받았던 인물들로, 조선에 와서 활동하는 일본인 치과의사들과는 다 동기동창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활동하며 어울려야 당시 귀하던 치과기자재나 재료 등을 공급받고 활동도 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며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이 처음 활동을 한 시기를 치협의 뿌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 창립을 치협의 시작으로 하자는 주장에 대해 변 전 위원장은 “일본인 나기라 다스미 박사가 1922년 서울치대의 전신인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여기 1회 졸업생들이 1925년 졸업 후 친목단체로 출발한 것이 한성치과의사회다. 한성치과의사회는 정확한 창립일에 대한 기록도 없다. 1921년을 부정하는 논리대로라면 일본인이 설립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치과의사가 된 사람들이 만든 단체를 인정하는 것은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변영남 전 위원장은 “그런 식으로라면 1945년 해방 이전 역사는 다 인정하지 말고 그 이후 배출된 치과의사만 인정하자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해 누가 옳고 틀리냐는 논쟁을 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앞선 대의원총회의 의결내용과 선배들이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 땅에 생긴 것이 조선치과의사회다. 여기서는 조선인이 1936년 부회장도 하며 열심히 활동했다. 이것을 문제 삼으면 우리 역사는 없다. 근본을 흔들어선 안 된다”며 “내년 치협 창립 100주년을 잘 기념하길 바란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 비전을 만들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여기서 다시 이 문제로 논쟁하기 시작한다면 분열만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