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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대생 마이너스 통장의 유혹

전국 치대·치전원생 200명 설문
본과 3·4학년 70% 통장 개설 사용
여행, 식비, 취미, 쇼핑, 투자 등 용처 다양
무분별 활용 땐 출발부터 ‘빚 더미’ 우려
무분별한 판촉, 쉬운 개설 절차 문제 지적

전문직이 보장된 치과대학생의 경우 한도대출 상품인 마이너스 통장 개설이 어렵지 않다. 마이너스 통장은 잘만 쓰면 유용하지만, 여느 대출이 그렇듯 헤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본지는 전국 치과대학·치의학전문대학원생(이하 치대·치전원생)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통해 마이너스 통장 사용 실태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 치대생 ‘마통’ 진입 장벽 없어
치과대학 본과 3학년인 김민수(가명) 학생은 본과 2학년의 막바지에 이른 지난해 말, 은행에서 한도대출 상품인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현재 변변찮은 수입과 저축액도 없는 그였지만, 통장 개설에는 특별히 어려움이 없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신분증과 재학 증명서뿐이었다.


이처럼 치대생의 경우 마이너스 통장을 위한 진입 장벽은 사실상 없다. 이와 같은 실태는 본지가 전국 치대·치전원생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설문에 참여한 치대·치전원생 중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 비율은 31%(62명)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시중 대부분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 개설 자격으로 정하고 있는 본과 3·4학년 학생(65명)의 경우는 통장 개설 비율이 67%(44명)에 달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지 않은 나머지 69%(138명) 중에서도 “아직 자격이 되지 않아서 개설하지 못했다”, “학년이 낮아 대출한도 금액이 적어서”,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등의 이유를 들며 향후 개설 의사를 밝힌 학생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다수의 치대·치전원생이 마이너스 통장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이유는 여타 대출 상품과 비교해 낮은 금리와 더 높은 대출 한도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득이 없는 일반 대학생이 제1금융권에서 한도대출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2금융권으로 눈을 돌려도 금리가 15%를 넘나들지만, 치대생의 경우 상당한 금리 우대를 보장받는 게 현실이다. 제1금융권의 ‘의대생 전용 한도 대출’상품을 살펴보면 금리가 적게는 3% 미만에서 많게는 4%대에 형성돼 있고, 대출 한도는 3000~4000만 원 정도다.


본지 설문에서도 대출 금리로 ‘3~4%’ 상품을 사용하는 학생이 59.7%(37명)로 가장 많았고, ‘4~5%’ 27.4%(17명), ‘3% 미만’ 8.1%(5명), ‘5~6%’ 4.8%(3명) 순이었다. 최대 대출 한도를 들여다보면 ‘2000~3000만 원’이 62.9%(39명)로 가장 많았으며, ‘3000~4000만 원’ 27.4%(17명), ‘1000~2000만 원’ 6.5%(4명), ‘1000만 원 미만’ 1.6%(1명), ‘4000~5000만 원’ 1.6%(1명) 순이었다.


# 유흥비 탕진, 주식 투자 등 사례도
실제 통장 사용 용도는 다양했다. 설문결과(중복 선택 허용) ‘여행’이 69.4%(43명)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식비(66.1%, 41명), 취미생활(58.1%, 36명), 쇼핑(54.8%, 34명), 유흥(40.3%, 25명), 학비(30.6%, 19명), 재테크(16.1%, 10명), 주거비(12.9%, 8명) 순이었다. 사용 금액으로는‘1000만원 미만’이 50%(31명)로 가장 많았으며, ‘2000~3000만 원’이 32.3%(20명), ‘1000~2000만 원’이 17.7%(11명)였다.


본과 4학년인 A학생은 “여행, 취미 등 부가적인 소비를 위해 사용했다”며 “여행 경비 걱정에서 자유로웠고, 발레와 필라테스 등 다소 비용이 드는 취미에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설명했다.


본과 3학년인 B학생은 “3학년이 되면서 실습과 국시 준비로 과외나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감당하기 벅찼고, 부모님께 마냥 손을 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마이너스 통장 덕에 그나마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유흥비 등 무분별한 지출로 한도를 모두 소진해 힘겨워 하거나, 주식과 비트코인 등 재테크에 발을 들였다가 손해를 본 경우도 있다.


본과 4학년인 C학생은 “친구가 마이너스 통장 4000만 원 한도를 모두 소진해 원금을 갚고도 몇 배 수익을 냈다는 소문을 듣고 투자했다가 500만 원 정도 손해를 본 경험이 있다”며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대출 관련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공격적 마케팅, 쉬운 개설 절차 ‘유혹’
문제는 시작은 달콤하지만 결국 쓰디쓴 ‘족쇄’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마이너스 통장 개설자 중 대출금 상환으로 걱정하고 있는 학생은 46.8%였으며, 이 중 40.3%(25명)는 ‘약간 걱정된다’, 6.5%(4명)는 ‘매우 걱정된다’고 답했다.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27.4%(17명),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25.8%(16명)였다.
게다가 시중 은행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마이너스 통장 개설을 부추기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통장을 개설했다는 본과 3학년 D학생은 “대개 신학기가 되면 은행에서 학교 강의실을 찾거나 학생 대표를 통해 공지하는 등 집중적으로 판촉에 나선다”며 “또 수업 시간 등 아무 때나 판촉 전화를 걸어 와 당황스런 경우도 적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마이너스 통장 개설 절차의 허술함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개 보호자 동의가 없으면 대출 승인이 나지 않는다는 기존 인식과 달리, 시중 1금융권 은행 중 통장 개설에 보호자 동행을 요구한 곳은 1곳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동의서 제출만 요구하는 등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거나 아예 동의서를 요구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본지 설문에서도 마이너스 통장 개설자 중 80.6%(50명)가 통장 개설 과정이 ‘쉬웠다’고 응답했다. ‘보통이다’는 16.1%(10명), ‘어렵다’는 3.2%(2명)에 불과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난 2009년 일부 의대생 학부모들이 금융감독원에 집단 민원을 낸 이후로 마이너스 통장 개설 시 보호자 동행하에 서류를 작성하도록 하는 등 무분별한 통장 개설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해 뒀다”며 “하지만 성인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므로 보호자 동의를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통장이 결국 ‘역복리’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표면적인 금리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하루나 이틀 정도 짧은 기간은 연체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신용등급도 떨질 뿐 아니라 원금에 이자가 쌓이기에 절대 연체 해서는 안 된다”며 “또 최대한 빌릴 수 있는 금액이 아닌 현실적으로 갚을 수 있는 금액을 한도로 지정해야 하며, 소득에 맞는 상환 계획도 꼭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