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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

대한치과의사협회 기원 ‘갑론을박’ 특별 기고

‘코코’ 라는 디즈니 픽사의 만화영화가 있다<그림1>.


원래 제목은 ‘망자(죽은자)의 날(Día de los Muertos)’로 하려 하였다가 멕시코 사람들의 반발로 바뀌었다고 한다. ‘망자의 날’은 멕시코의 독특한 사후세계관에서 유래하며 아즈텍 문화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국민들 모두가 카톨릭을 믿지만 망자의 날의 전통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그림2>.


추석이나 설에 차례를 지내는 우리나라처럼,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의 영혼이 다녀가고, 기억하지 않는 존재는 저승에서 소멸되고 만다는 독특하고 밝은 사후세계관을 재미있게 묘사한 영화다.


이 영화는 만화영화로서는 어린이들에게 그저 그런 영화였고, 오히려 어른들 중에는 눈물을 훔치면서 영화관을 나서는 모습들이 보였다고 한다. 이승과 저승이 이런 식으로 연결된다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에겐 종교나 문화를 떠나서 따뜻한 위안이 되는 것이다.

 


망자의 날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제사가 그에 해당될 것이고 국경일이나 기념일도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3월 1일에는 당시 독립애국지사들을 생각하고, 6월 6일에는 순국선열들을 떠올린다.
최근, 2021년 10월에 대한치과의사협회에서 준비한다는 그 100주년 행사도 당연히 ‘망자의 날’에 해당된다. 1981년 대의원총회 결의안을 절대 지킨다면서 준비 중이라는 큰 행사로 알려지고 있다.


예정된 그 ‘망자의 날’이 돌아온다.
함석태 선생님께서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으로 들어오신다.
회관 현관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놓인 자신의 흉상을 보시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협회장실을 향해 걸어가신다<그림3>.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시는데...
거기엔 이미 나라자키 도오요오(楢崎東陽)와 조선치과의사회의 역대 일본인 회장들과 임원들이 떡 하니 버티고 거드름을 피우며 앉아있다.

 

“여긴 왜 왔나? 자네가 올 곳이 아닌데...”

 

함석태 선생님과 뒤에 따라 오시던 안종서 선생님은 초라하게 돌아서서 나가실 수밖에 없다.
끔찍한 악몽이다.
함석태 선생님은 쓸쓸하게 돌아서서 회관을 나서신다.
1925년의 3월처럼...


우리는 3월이 되면 1919년의 3월 1일을 떠올리지만, 1925년 3월에 일본인 소학교에 구강검진을 가셨다가 ‘조센징 치과의사’라며 거부를 당해 쓸쓸히 돌아오시는 함석태 선생님의 손을 잡아드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잊고 있었다.

 

“치협 100주년 행사는
작고 선배 기리는 ‘망자의 날’
1925년 한국인 단체 만든 함석태 영혼
일본인 기리는 후배들 보면 어떤 생각일지...”

 

잊지만 않았더라면, 만약 할 수만 있다면, 그 시간 속으로 달려 들어가 “우리는 20년만 지나면 나라를 되찾고, 먼 훗날 선생님의 후예들은 선진국의 치과의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씀드리는 그 상상을...


그 서럽던 1925년에 함석태 선생님은 여섯 분의 선생님들과 함께 이 땅에 최초의 한국인만의 치과의사 단체인 ‘한성치과의사회’를 만드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배들을 단순히 잊은 것이 아니라 온갖 핑계를 대면서 잊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이 땅에서 ‘한국인만의 단체’가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알면서도, 1942년 10월의 ‘조선어학회 사건’의 참혹함을 목도했으면서도, 그 10월 1일에 한성치과의사회가 일제의 총동원령으로 강제 해산되면서 ‘육하 원칙에 따른 기록’이나 ‘변변한 회의록’ 하나 남긴 게 없다며, ‘저녁 먹던 친목모임’으로 폄훼하면서, 심지어는 ‘회무가 정지된 3년’을 운운하며 가혹하고 잔인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지워버리려 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일제의 시각으로는 ‘불온한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의 대화’ 같은 덤불 같은 기록이 조금 남아서 1942년에 ‘한성치과의사회 사건’ 같은 게 일어나서 몇 분이 순국하셨다 해도 그리 가혹할 수 있었을까?


그 가혹한 잣대를 왜 이 땅을 강점하여 들어와 잠시 머물다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사람들에겐 적용하지 않았을까? 있지 말아야 할 자리에 그들을 올려놓고서 마치 우리의 선배들인 것처럼 치장해 놓고서, 떠난 지 76년이 지난 일본의 망령들을 다시 초대할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단 말인가? 그래서 100년을 맞는다는 내년의 ‘그 망자의 날’에는 우리의 선배들은 초대받지 못할 것이다.


기억되지 않으면 소멸되기에 당시의 선배들은 지난 40년 동안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기억하라.”

 

“우리를 꼭 기억하라.”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되살려내야 한다.
이제 1921년 10월 2일의 망자의 날을 ‘망각의 석션’으로 걷어내고, 1925년을 기억하자.
그래서, 이렇게........


함석태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뚜벅뚜벅 걸어서 회관으로 들어오시고 선생님의 흉상 앞에서 웃으신다.
그리고 협회장실로 향하고 협회장실의 문을 활짝 여신다.
방 안에는 나라사끼 도오요오와 조선치과의사회의 일본인 회장들과 임원들이 안절부절 당혹한 표정으로 서 있다.
함석태 선생님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이제 그만 방을 비워주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