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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 마케팅

스펙트럼

몇 년 전에 치과계 무가지 지면에서 본 세미나의 제목이 ‘불친절 마케팅’이었습니다. 불친절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답게 연자들의 표정이 무표정 내지는 뚱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친절해도 모자랄 판에 불친절하라니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세미나를 한 번 들어볼 것을 그랬습니다. 개원 13년차에 접어든 지금, 과연 마냥 친절한 것이 답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치과에서 불친절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나름의 이유를 한 번 정리해 봅니다. 우선, 치과의사는 치료를 끌고 나가야 하는 입장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친절한 태도로 일관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될 케이스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선생님 된 마음으로 환자에게 다소 강한 어조로 말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충치가 많은 소아 환자가 오면 일단 엄마를 혼내고 시작한다는 어떤 선생님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환자가 뇌피셜을 무한 반복한 나머지, 없던 불편감, 통증을 만들어서 오면 학자이자 임상가인 입장에서 확실한 태도로 일갈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컴퓨터만 켜면 인터넷에, 찌라시부터 학술지까지 무한대의 치의학 정보가 널려있는 지금이야말로 학식과 경험을 두루 갖춘 치과의사의 강단 있는 한 마디가 빛을 발하는 때입니다. 무조건 친절해서 될 일이면 이 거친 세상도 친절하게 살면 살아져야 맞지 않은지요...


치과치료의 불확실성도 환자를 마냥 친절하게 대할 수만은 없게 하는 요소입니다. 치과 치료는 합병증을 동반합니다. 웃음을 팔듯이 하여 임플란트를 심고도 5년 성공률, 10년 성공률 때문에 내심 불안해 합니다. 임플란트 보철을 올리고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책임이라는 부담을 겨우 벗습니다. 적어도 무표정한 표정으로,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임플란트라는 물건의 불확실성과 오묘하기 짝이 없는 인체의 불확실성을 어딘가로 떠밀어야 나를 믿고 임플란트를 심고서 영구성, 항구성을 찾는 환자를 볼 낯이 있지 않을까요...


그 밖에도 상담부터 치료 종료에 이르기까지 환자를 고객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환자로서 대해야 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더 쓰지 않아도 이 글을 읽고 계신 많은 원장님들께서 치과에서 웃음을 잃게 만들던, 청운의 꿈이 꺾여버리던 순간들을 되뇌이고 계실 것 같습니다.


겉모습은 그다지 친절해 보이지 않지만 마음 속에 환자를 위한 애정이 남아있는 의료인이 되는 것이 어떨지요. 부적절한 친절은 환자에게 헛된 기대치를 심습니다. 동시에 내가 가진 감정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도 이제 개원 13년차... 나를 보호하고 치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의료인다운 강직함은 이 나라 의료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불친절 마케팅의 필요성은 이미 ‘츤데레’라는 어휘로서 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뚱한 척 하면서 속으로 친절한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가 츤데레입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냥 남인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의 뒷모습에서 속 깊은 관심과 애정이 어둠 속의 빛처럼 흘러나왔을 때, 기대이상의 감동과 기쁨이 잔잔한 물결처럼 흐르게 됩니다. 불친절 마케팅을 선구자적으로 주장했던 그 분들은 시대를 거슬러 츤데레의 감동을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아니었을지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