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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치과 사랑’ 내 건강 걱정, 진정성 느껴질 때

“우리가 뭘 아나? 친절하고 정직하면 그저 믿고 가는 거지”
한번 생긴 신뢰 어떤 진료 권해도 만족…이사 가도 찾게 돼

그동안 치과 홍보를 위해 마케팅 전문가, 경영 컨설턴트, 잘 나가는 동료 얘기에는 귀 기울이며 정작 환자들의 얘기를 듣는 데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동네치과. 그리고 그 치과를 다니는 주민, 환자들이 단골 치과를 좋아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또 일반인 대상 설문조사와 치과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진 환자들의 얘기를 좌담회를 통해 들어봤다.<편집자 주>.  

 

종로구에 살고 있는 애주가 (가명)박정기(68세, 이하 취재원 가명 처리) 씨는 맞춘 지 얼마 안 된 틀니를 술을 마시고 잃어버린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평소보다 막걸리를 많이 마시고 택시를 탔던 박 씨는 “아무래도 틀니를 차 안에서 빼 버렸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일단은 틀니를 해줬던 원장을 찾아갔다. 종로구에 거주하는 시장 상인인 박 씨는 가게 근처 치과를 10년 넘게 다녔다. 한지 얼마 안 된 틀니니 다시 하게 되면 가격을 좀 많이 깎아 달라고 할 마음이었다.  


평소 박 씨에게 ‘아버님’이라 부르며 은근 슬쩍 말을 놓곤 하는 40대 후반의 원장은 “그러게 내가 술 드시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잖아. 해주면 뭐해 술 먹고 또 잃어버리려고”라며 호통을 치곤 박 씨의 틀니를 다시 제작해 줬다. 박 씨는 “원장님이 비용을 하나도 받지 않고 틀니를 다시 만들어 줬다. 술 마실 때마다 원장님 생각에 더욱 주의한다”고 말했다.   


수서에 살고 있는 김정균(77세) 씨는 서너 달에 한번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분이 걸리는 성북구의 한 치과를 찾는다. 원래 이 동네에서 오랜 세월 문방구를 했던 김 씨는 몇 년 전 수서에 있는 아들의 집으로 들어갔다. 김 씨는 이 치과의 원장이 근처 대학병원 레지던트였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당시 치아가 안 좋아 여러 치과를 전전하다 대학병원을 갔는데 거기서 만난 레지던트의 살가운 태도와 꼼꼼한 진료가 마음에 들었다. 그 레지던트가 마침 근처에 개원을 하고 15년차 개원의가 될 때까지 김 씨는 이 치과를 단골로 다녔다. 


김정균 씨는 “친절하고, 또 한 번 진료한 데는 탈이 잘 안 나니까 다닌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 때문인지 계속해 문제가 생긴다. 집에서 치과가 멀어져서 다니기 힘든데, 수서 아들집 옆에도 치과가 많지만 그래도 계속 여기를 다닐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동네서 오랫동안 개원하며 주민들의 삶과 함께 해온 동네치과.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현란한 치과홍보와 각종 할인 이벤트, 판촉물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광고라고는 ‘간판’만이 전부인 동네치과를 다니는 이유를 근처의 주민, 거리의 환자들에게 물어봤다. 화려한 강남의 치과들보다 서민들의 생활에 밀접해 있는 치과 위주로 돌았다. 대구와 광주에도 내려가 지방 환자들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 상세한 설명 믿음 생겨
혜화동의 한 치과에서 만난 이정임(72세) 씨와 최진숙(80세) 씨는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집 근처의 치과를 다닌 이웃주민이다. 얼마 전 건강보험으로 임플란트를 시술한 최진숙 씨를 따라 이정임 씨도 마실 삼아 치과를 찾았다. 이 동네에 먼저 살던 이 씨가 최 씨에게 치과를 소개해 줬다. 이정임 씨는 “이 치과를 남편과 함께 20년이 넘게 다녔다. 자식들이 지금은 다른 곳에서 직장을 다녀 이곳에 못 다니지만 어렸을 땐 다 여기를 데리고 다녔다”며 “일반 주민들 입장에서는 가깝고 친절한 치과가 최고지 않나. 진료를 잘 하는 건 그냥 크게 문제없이 오래 쓰면 잘 한다 생각하는 거지 까다롭게 보는 건 없다. 오래 봐온 원장님이고, 아가씨들도 친절해 좋다. 원장님 기술이 중요하지 장비야 필요한 것만 갖췄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치과갈 고민을 하면 여기를 얘기해 준다”고 말했다.

 


중랑구의 한 치과를 3년 째 다니고 있는 주부 이명숙(48세) 씨는 남편을 따라 이 치과에 다니게 됐다. 이 씨는 “남편이 치아상태가 안 좋아 매우 고생을 했다. 임플란트를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 여기저기 큰 병원을 돌아다녔는데, 치과마다 얘기가 너무 달라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비용이 좀 괜찮은 곳에서 치료를 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처음과 얘기가 너무 달라졌다. 비용도 점점 늘어나고… 그래서 또 이 치과 저 치과를 전전하다 상황이 급하니 가까운 치과를 찾았는데 여기서 받은 진료에 남편이 너무 만족해했다. 그 이후 나도 다닌다. 진료 중간 중간 계속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좋고, 미리 얘기해준 치료결과 그대로인 것 같아 좋다. 나보다 내 치아에 더 신경을 써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와 함께 늙어가는 모습에 ‘감동’
임예빈(36세) 씨의 경우 부모님과 언니까지 네 가족이 동네의 한 치과를 20년 넘게 다닌 경우. 어린 시절 당시로서는 꽤 규모가 큰 치과가 집 근처에 새로 개원해서 어머니와 가 봤는데, 막상 치과를 가보니 시설보다 당시 젊고 잘생긴 원장님이 더 눈에 들어왔다고. 그 이후로 잘생긴 원장님한테 충치 치료를 받고, 사랑니를 뽑고, 또 어머니의 임플란트 치료도 맡겼다.


최근 또 치과를 방문한 예빈 씨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원장님 앞에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저녁 즈음 간단히 진료를 마친 원장님이 그날따라 시간이 많았는지 갑자기 예빈 씨의 중학교 때부터의 진료기록이 담긴 진료차트를 훑어 읽어주기 시작한 것. 몇 년도엔 충치 몇 개를 치료했고, 어디를 금니로 때웠고, 사랑니는 언제 뺐고… “그냥 있어서 읽어본 거예요, 참 오래도 다녔죠 치과를?”이라며 씩 웃어 보이는 원장님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주름도 생긴 원장님의 얼굴이 예빈 씨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원장님 얼굴 보려고 1시간 30분 걸려 치과 찾아요”
11살난 아들이 지금은 33살 서울서 단골치과 찾아 대구로
“치과를 접는 순간 동네 주민들에게 작은성의라도 보일 터”

 

임예빈 씨는 “평소 말도 별로 없으시고 진료하며 ‘나 너 안다’ 정도만 내색하시던 분인데 그날따라 환자가 없었는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랑 치과를 같이 왔던 기억, 시험기간에 치아가 아파서 급히 치과를 찾았던 기억, 사랑니를 빼고 아파서 울었던 기억 등이 떠오르며 원장님이 이런 내 성장과정을 다 지켜봤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가능한 이 원장님이 오래 치과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타향에서 고향 치과를 찾는 사람들
내가 다닌 동네치과에 대한 환자들의 자랑은 지방도 만만치 않다.  
격렬했던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중 서로 낯을 가리지 않고 주먹밥을 나누곤 했던 광주 시민들은 치과진료를 받는데 있어서도 ‘솔직하고 직설적이지만 정을 중시한다’는 평.


광주 동구에 거주하는 김정혜(54세) 씨는 최근 임플란트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의료진의 부주의로 시술 도중 힐링 어버트먼트를 삼켰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의료진에게 김 씨는 “치과의사도 사람인데 진료를 하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다. 필요한 조치만 잘 취해 달라”하고 넘어갔다. 김 씨는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원장님이 그 동안 성심성의껏 돌봐줬는데 한 번의 실수를 따지는 것은 야박하다고 생각한다. 삼킨 것은 제거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앞으로도 계속 얼굴 볼 사이인데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될 필요는 없다. 괜찮다”고 말했다.


광주 대남동 소재의 A치과의원 원장은 “광주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개 환자들이 직설적이고 덴탈아이큐도 높은 편”이라며 “치과를 선택할 때도 인터넷이나 SNS를 찾기보다 지인들의 추천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광주시가 외지인의 유입 비율이 낮고 지역 토박이 문화가 잘 정착돼 있어 신뢰를 기반으로 한 동네치과 방문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의 한 도로변에 위치한 B치과. 오후 늦은 시간 새까맣게 얼굴이 그을린 이영석(53세)씨가 빵을 한 아름 안고 치과를 찾았다. 1998년 B치과가 개원한 이래 이곳만 다녀 ‘단골’로 불린다는 이 씨는 경북 상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이영석 씨는 “원장님 얼굴 하나 보려고 한 시간 반 거리를 아직도 오고 있다. 옛날에 이곳에서 스케일링을 처음 받았는데 한 시간을 하며 설명도 아주 자세히 해 준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아들과 함께 꾸준히 다녔다”며 “그 당시 11살이던 아들이 지금은 33살이다. 지금은 서울에 사는 아들이 치과진료를 받을 때는 아직도 대구로 내려온다. 그만큼 원장님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진료를 받고 원장과 한참 동안이나 올해 농사이야기를 하다 돌아갔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강산이 두세 번 변할 시간 동안 동네치과를 다닌 환자들의 이야기다. 환자들이 얘기하는 내가 동네치과를 다니는 이유를 한 줄로 요약하면 ‘원장의 진정성에서 느껴지는 신뢰, 이 신뢰가 곧 원장의 실력과 진료결과에 대한 만족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번 취재와 더불어 진행한 관련 설문에서는 환자들이 동네치과를 선호하는 이유로 ‘가까운 거리’, ‘친절한 의료진’을 꼽았다. 또 동네치과에 갈 때 주 목적으로 생각하는 진료로는 역시 ‘충치, 잇몸치료’ 등 기본이 되는 진료들을 꼽았다. 임플란트나 교정, 심미 등을 받기 위해 간다는 답변은 생각보다 저조했다. 오히려 이 같은 진료보다 예방차원의 관리를 더 선호한다는 답변이 눈길을 끈다.


이와 관련 취재 중 만난 한 환자는 “큰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집에서 가장 가까운 치과를 찾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또 환자는 결국 치과의사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이 치과를 내가 오래 다닐 치과로 결정하는 요소는 치과의사를 신뢰할 수 있느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신뢰를 느끼게 되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비용보다는 친절, 얼마만큼 환자 입장에서 생각을 해 주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치료를 많이 해야 한다는 치과의사보다 이런 치료는 굳이 할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치과의사에게 신뢰가 간다. 이렇게 신뢰가 생기는 치과의사를 만난다면 그 치과가 멀리 이사 가도 찾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들 중에는 동네치과를 불신하고 끊임없이 믿을 만한 치과를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언론이나 유튜버 등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마포구 소재의 한 치과. 이 치과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고 대기표를 받는 환자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김철중(53) 씨는 오전 7시30분부터 이 치과 앞을 지켰다. 얼마 전 동네치과 몇 곳에서 진단을 받은 김 씨는 천차만별의 진단내용과 치료비가 믿을 수 없어 이 곳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김 씨는 “처음 간 치과에선 뭐 이거저거 해서 200만 원이 넘는 진료비가 나왔다. 그래서 다른 치과를 갔더니 충치 몇 개만 먼저 치료하면 된다고 했다. 서로 얘기가 너무 달라 한번 확인해 보자는 생각에 이 곳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인근 회사 직장인 박성완(30) 씨는 동료 직원 두명과 함께 해당 치과를 찾았다. 박 씨는 “충치 치료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중 이 치과에서 컨설팅을 받아보자는 호기심으로 찾아오게 됐다. 동료들도 한번 필요한 진료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다고 해 같이 왔다”고 밝혔다.


앞선 환자들과 달리 치과에 불신과 의심의 마음을 품게 된 이들의 모습이다.

 


# 원장도 동네환자를 좋아한다
종로구에서 25년 째 개원하고 C 원장은 기자와 간단히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환자들에게 덴탈마스크 한 박스씩을 챙겨줬다. 도움을 받았으면 보답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C 원장은 “고향이 아닌 이곳에 처음 개원을 하며 다짐했던 것은 내가 치료한 치아를 환자들이 최대한 오래 쓰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 자존심이었고, 예상보다 일찍 치료한 치아를 못 쓰게 된 환자가 오면 내가 마음속으로 정한 AS 기간을 꼭 채워 무료로 추가 치료를 해주곤 했다”며 “이렇게 하니 접근성이 좋지 않은 치과였는데도 불구하고 환자가 많았다. 치아는 32개, 환자는 평생 치과를 다닐 수밖에 없다. 세월이 변해 개원환경이 많이 변했지만 상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 원장은 “한 곳에서 오랜 세월 개원해 오며 식사를 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사거나, 간판을 바꾸거나 할 때 등 가능한 동네 가게들을 애용했다. 그게 내 나름의 보답이었다”며 “이 동네에 대한 애정이 크다. 이곳에서 정착해 결혼을 하고, 자식도 키우며 먹고 살았다. 가끔 이 곳에서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치과를 접는 순간이 오면 그동안 알고 지낸 동네주민들에게 작은 성의를 담은 봉투라도 하나씩 돌리려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