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Daily Romance

Relay Essay 제2435번째

국시가 끝나고 보름이나 지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인턴 접수부터 짐 정리나 인수인계까지, 시험을 마치면 마냥 편하게 쉴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무료하지 않은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 일정도 줄줄이 취소되어 울적해하던 찰나, 시기적절하게 헬스장이 재개장한 덕분에 잔여 회원권을 소진하는 처지가 된 것이 그나마 소소한 재미랄까. 오늘도 어김없이 무료한 오후를 보내다 오랜만에 영화를 볼까 싶어 가까운 영화관을 찾았다.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을 골랐는데도 텅 빈 상영관을 보며, 코로나 덕분에 전세 낸 듯 편하게 관람하는구나 싶어 씁쓸한 웃음이 핀다.


오늘 선택한 영화 ‘소울’은 음악 선생님인 ‘조 가드너’가 겪게 된 다이나믹한 하루 속에서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과 세상의 소중함을 그린,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 재밌는 작품이었다. 재즈 음악이 나오니 ‘라라랜드’를 닮으면서도 교훈은 ‘어바웃 타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추억을 떠올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작중 조는 본인의 삶을 따분하다고 여겼으며 꿈꾸던 무대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도 기대만큼 행복이 느껴지지 않아 좌절하였는데, 나 역시 치과의사라는 목표를 향한 여정을 마쳤음에도 비슷한 감정이 들어, 주인공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되는 계기를 찾을 수 있을지 어렵게만 다가왔다. 어느덧 불이 켜진 상영관에 남아 감상에 잠겨있다가 문뜩 어제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께서는 별안간 옆자리에서 말을 거시며 휴대전화 화면을 들이미셨는데, 놀라 이어폰을 빼고 되물으니 본인이 영단어를 맞게 해석했는지 확인을 부탁하시던 것이다. 그제야 화면을 보니 ‘Always’라는 필기체 단어와 초승달 삽화가 멋스럽게 어우러진 이미지가 눈에 띄었다. 매일 본인이 감명 깊게 읽은 글귀나 격언을 한글로 풀이하여 감상을 기록하고,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일기로 남겨 함께 SNS에 업로드 하신다며 사진 몇 장을 더 보여주셨다. 길게는 예닐곱 단어로 구성된 문장을 번역하며 3시간 넘게 공부하신 적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이렇게 매일 공부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을 자랑스레 소개하시는 표정. 아주머니의 미소는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학년이 올라가고 졸업을 앞둘수록 책임이 늘어서일까. 언젠가부터 배움의 열의보다는 내일에 대한 고뇌, 느낌표보다 물음표 가득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종종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빛은 어둠에서 피어난다고, 밤이 없으면 낮도 돌아오지 않는다며 기운을 북돋기도 하였지만, 밝은 하늘보다 드리운 그림자가 먼저 시선에 밟혔다. 저녁을 먹으러 하굣길에 나서면 꼭 야경을 사진에 담는 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배고프니 얼른 가자며 보채곤 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걸어갔지만 나는 왜 바닥만 보며 앞으로만 향했는지. 조금만 고개를 돌렸다면 아름다운 노을로 마음을 채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가득하다.


글솜씨는 모자라고 미적 감각도 뛰어나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아주머니처럼 행복을 기억하는 특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지는 않으려 한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나의 시간은 추억과 웃음으로 가득할 것이기에, 다만 때론 천천히 걸으며 만끽하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우여곡절 많았던 캠퍼스에서의 땀과 눈물이 소중한 경험과 감정으로 남았듯, 앞으로는 마음 한쪽에 알찬 챕터들로 가득찬 데일리 로맨스를 써보려 한다.
오늘도 회기동의 노을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