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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영웅(CORONA HERO) -부제: 운수좋은 날

Relay Essay 제2439번째

모처럼 얻은, 3월 1일이 포함된 연휴를 마치고 화요일 출근을 하였다. 이틀을 쉬어서였을까? 아침 일찍부터 틀니가 부러졌다고 오신 분부터, 넘어져서 앞니가 깨졌다고 오신 분, 쉬는 날이라 스케일링 받으러 오셨다는 분 등등 모처럼 하루 종일 환자가 많은 날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이틀 연휴 효과가 큰 건가 싶었다. 일본에 사는 교포인데, 한국에서 치과치료를 받고 싶어 오셨다는 분도 계셨는데, 현금을 내고 영수증도 필요 없다고 하신다. 모처럼 운수 좋은 날이었다.      


수요일 아침에 아내와 함께 출근을 하는데, 휴대전화에 안전 안내문자가 마구 날아왔다. “인천 서구청 몇 번째 확진환자 몇 명 발생.” 몇 천 번, 몇 만 번 받아봤을 문자를 가볍게 지우고, 출근하였다.


어제의 모습은 사라지고, 평소의 치과모습을 되찾아 평온하던 오후,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오전에 치과에 확진자가 다녀갔으니, 잠시 후 검사관들이 치과에 갈 예정입니다.” 아! 갑자기 하늘이 노랗다. 어제 그 환자를 진료한 사람은 아내였고, 나는 아니었다.


아내와 직원이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고,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갑자기 어디로 자가격리를 들어가지? 어제 네 딸아이들 개학을 했는데, 아이들 등교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내는 다른 곳에 가서 지낸다고 하면, 아침마다 밥하고, 깨우고, 밥 먹이고, 학교에 태워다주고, 혼자 출근해야할 것 같았다.


퇴근 후에는 저녁도 준비해서 함께 먹고, 학원에서 늦게 오는 아이들 픽업도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았다. 이 일들을 갑자기 나 혼자서 다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만약 아내마저 확진 판정을 받는다면, 나와 다른 직원들, 우리 가족들 모두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머릿속에는 오히려 이 상황이 내가 감당하기 더 편할 것 같은 불온한 생각마저 들었다.


불확실하고 어두운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때, 검사관들이 왔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CCTV를 보았다. 환자가 들어오고 나간 40분 이상을 다 돌려보았고, 마침내, 검사관들이 입을 열었다.


“이 치과에서는 모든 스텝들이 페이스 쉴드를 모두 다 잘 착용하고 있었고, 접수의 직원들 마저도 글러브를 잘 끼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가본 기관 중에서 방역 수칙을 제일 잘 지키는 곳이었습니다. 진료를 했던 사람들도 검사를 안 받아도 될 정도입니다. 그냥 하던 진료 계속 하세요.” 하고 그냥 가셨다.


벌벌 떨었던 긴장감에 못 미치는 허무한 결과여서였을까? 모두들 이게 진정으로 끝인가 의아해했고, 얼떨떨했다. 그냥 스스로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냥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우리가 방역 지침을 잘 따랐으니, 이런 좋을 결과가 생긴 것이라 믿기로 했다.

 


사실 바로 옆의 내과가 일주일 전에 코로나 확진환자의 방문으로 2주간 문 닫는 것을 보고서, 우리도 1주일 전부터 방역지침에 제대로 따르기 시작했었다. 그동안에는 하기도 하고, 말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귀찮고 잘 안보이면 안 쓰기도 하고 했었는데, 내과가 문 닫은 이후로는 모두들 열심히 쓰고 닦았다. 특히 접수까지도 글러브를 끼게 한 것이 이번 검사에서 주효했던 것 같다. 바로 옆 내과에서 들려온 알람, 즉 경고음을 허투로 듣지 않고 시스템을 잘 바꿔서 덕을 본 것 같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있다. 양치기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말 하지 말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로 읽힌다. 시선을 바꿔서 마을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교훈이 바뀌는 것 같다. 양들은 마을 사람들의 것이었고, 양치기는 그들이 고용한 것 같다. 양치기의 역할은 늑대가 나타났을 때 늑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의 출현을 알리는, 일종의 ‘알람’역할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알람이 자꾸 잘못된 알람을 울린다.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를 혼내고 그냥 돌아가서는 안 되었다. 양치기를 바꾸던지, 아니면 다른 알람을 더 설치하던지 했어야 했다. 문제 있는 시스템을 손보지 않고 욕하기만 하고 그냥 두었더니, 결국 전체의 손해로 되돌아 왔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의 최대 피해자는 물론 죽고 먹힌 양들이겠지만, 마을 사람들도 최대 피해자다.


잘못된 시스템이라는 신호가 발견되면, 한 두 사람에게 미루지 말고 모두 같이 즉시 고쳐야 좋은 것 같다. 우리나라 코로나 방역의 최고 영웅은 우리 국민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치과에서 오늘 코로나 방역의 영웅은 지침을 잘 따라준 우리 직원들이었다.


트렌드 코리아 2021 책에서 선정한 트렌드 키워드가 COWBOY HERO였다. 날뛰는 야생의 소를 능숙하게 길들여내는 카우보이들처럼, 광우처럼 날뛰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아내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다고 했다. 내가 볼 때 그런 코로나 영웅은, 결코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할 때 각자 무기를 들고 산으로 뛰어올라가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양치기가 잘못했을 때, 양치기를 바꾸어서 좋은 알람기능을 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할 줄 아는 마을 사람들, 그들이 바로 영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