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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장막(A sanctuary for the night) <3>

소설

그때는 세상에나 어찌나 안심되든지 말이야.
“춘식아~ 아까 혼이 어딨느냐고 아부지한테 물었냐?”


“어딨어라? 아부지?”
“사람 몸띵이에 혼이 어디 쪼매 들어 있는 게 아니여.”
“……”


“글씨, 몸띵이 빼고는 다 혼 이제.”
“심장에 숨어 있는 게 아니어라?”


“아니제. 춘식아, 엄마 보고 싶제? 동무들이랑 놀던 생각도 나고?”
“두말하면 입 아프니더.”


“엄마 보고 싶은 맴, 놀던 동무들 생각 그리고 아부지랑 이렇게 달밤에 걸은 기억까지 춘식이가 하늘나라로 갈 때 다 갖고 가는 겨.”
“참말이어라?”


“그럼 참말 이제!”
동리에 가까워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집집마다 개들이 연달아 청승맞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아부지? 아직 멀었어라?”


“……아즉도 나가 느그 아버지로 보이냐?”
“무섭게 와 그런데요 아부지~”


“하하, 어디 보자, 저그 불 켜진 집이 큰집이여. 이제 다 왔나 보다.”

고 씨가 얘기를 마치자, 성만은 연기 때문에 눈이 맵다며 뒤돌아 눈물을 훔쳐냈다.


노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돌았다.
“어째들 내 얘기가 들을 만하든가?”


어느새 드럼통 주변에 예닐곱 명의 남자들이 숨죽이며 모여 있었다. 성만이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렸고, 나머지 남자들의 시선은 다시 환한 휴대폰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버지 생각이 난 게야.’
노인은 어둠 속에서 아버지가 “춘식아~”하고 부르며 성큼성큼 걸어 나오실 것만 같았다.


남구로역 새벽 인력시장에 도림로 빌라 공사 현장 십장이 모는 트럭이 막 도착했다.
“어이~ 고 씨? 오늘 일 안 나가?”


“가야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인디. 오늘은 여그 성만이도 데불고 가면 안되겠어라?”
성만이라는 소리에 주위에 몰려 있던 인력시장 사람들의 놀랜 표정을 노인은 의아해했다.


“뭔 소리여 시방?”

“와요?”


갑자기 십장의 목소리가 나지막해졌다.
“성만이 공사장서 일하다 작년 겨울에 사고로 죽었는디…….”
“작년 겨울에요?”


“자네 고향에 다니러 갔을 때였지 아마. 7급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이제는 병든 노모 모시고 동생들과 행복하게 살 거라고 얼매나 좋아했다고.”

노인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성만이 서 있던 자리를 한참이나 바라다봤다.


“고 씨 아저씨 뵐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참 좋았어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어르신~”
“성만이~ 만나서 즐거웠네. 하늘에서 자네 아버님과 우리 아버님 뵙거든, 내 안부 좀 전해주게. 그리고 ‘아부지, 사람의 영혼이 어디에 있대요?’ 이렇게 물어봐 주게.”


한 줄기 빛이 어둠 속에 잠시 머물다 여명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착한 영혼들을 어찌 그리 급하게 데려가나……’

 

고 노인이 페인트칠이 벗겨진 녹슨 1.5톤 트럭에 올라탔다. 낡은 트럭은 요란한 굉음 사이로 시커먼 매연을 한 무더기 쏟아놓으며 공사 현장으로 사라졌다.

 

<끝>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