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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이여 안녕!

시론

내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후 어느새 19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 때 처음으로 입주했던 새 아파트였는데 베란다 정면의 북쪽으로는 북한산이, 남쪽으로 관악산이, 그리고 동쪽으로는 정감 넘치는 남산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비나 눈이라도 내리고 나면 나지막한 연무에 허리를 감싸인 산들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했다. 멋진 능선으로 옹위된 관악산 연주대 위로는 형형색색의 비행기가 은익(銀翼)을 번쩍이며 쉬지 않고 날아들고 밤이 되면 동쪽의 남산타워 오색등이 별처럼 빛났다.

 

이렇게 아름답고 유서 깊은 한양(漢陽) 3대 명산이 간직한 조선 초기의 비사(祕史)를 살펴보자.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한 이듬해인 1393년에 무학대사(無學大師)와 함께 계룡산 언저리인 신도안(新都安)을 시찰하고 도성후보지로 선정한 다음 성곽축조 공사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개국공신인 하륜(河崙)의 강력한 반대로 신도안 천도를 취소하게 된다. 하륜은 한강이 무악재(母岳山)를 배경으로 연희동 일대의 평야를 아늑하게 감싸 안고 흐르는 지형이 마음에 들어 한양 천도를 주장했다. 그러자 태조는 개국 일등공신인 정도전과 무학대사, 하륜의 의견을 종합해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되 주례고공기(周禮考工期)로 대표되는 중국도시의 특성과 풍수지리(風水地理) 사상에 입각해 축성하기를 원했다.

 

정도전은 북한산(北漢山) 뒤 북악산(北岳山)을 주산(主山)으로 보고 우측에 인왕산(仁旺山), 좌측에 북한산, 남쪽으로 남산(南山)과 관악산(冠岳山)을 바라보는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의 자리에 도성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무학대사는 조선에서 불교가 점차 유교에 잠식되어가는 상황에서 불교의 중흥을 꾀하고자 선바위가 있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아 정서에 앉아 정동을 바라보는 유좌란향(酉坐卵向)으로 궁궐을 배치하고자 했다. 무학대사는 풍수지리 상 북한산과 관악산이 불의 산일뿐만 아니라 남산도 불쏘시개 산이어서 정도전의 안대로 궁궐을 지으면 향후 5대가 가기 전에 왕위찬탈이 일어나고 200년 내에 나라에 큰 변괴가 생길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정도전의 제안대로 1395년 4월부터 한양에 도성을 축조하면서 무학대사의 불길한 예언을 막아보고자 온갖 방책을 다 짜냈다. 관악산의 화기를 막을 물길을 내기 위해 청계천을 준설하여 물이 더욱 많이 흐르도록 하고 준설한 흙은 화마가 밀려들지 못하도록 광화문 오른쪽 황토현(黃土峴)에 높이 쌓았다.

 

원래 물은 땅에 깔려서 오지만 불은 위로 솟구치며 달려오므로 그 기세를 꺾기위해 숭례문 현판을 세워서 달았다. 숭례문 앞 서울역 자리엔 큰 연못을 파서 불길을 막을 물을 가두었는데 그 저수지가 바로 남지(南池)였다.

 

궁궐까지 화마가 달려드는 경우에 대비해 경회루 밑에도 연못을 팠으며 궁궐 처마마다 드므를 설치해 방화용 빗물까지 받아두게 했다. 그러나 이후 세조의 왕위찬탈과 경복궁 대화재, 그리고 임진왜란까지 거듭되면서 무학대사의 예언은 모두 적중하고 만다.

 

눈에 익은 북한산이 우리 집 창문에서 모습을 감춘 것은 이사 온 후 3년 째, H백화점과 아파트가 승천하면서 부터다. 20층쯤 쌓았을 때 이미 북한산 봉우리가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60층도 넘게 올라서고 나서야 멈춰 섰다. 그 다음 차례는 관악산이었다. 신도림역 근처 연탄공장 자리에서 우후죽순처럼 높다랗게 자라던 큐브시티 빌딩은 결국 연주대 위의 철탑까지도 감쪽같이 숨겨버렸다. 그리고 몇 해 전 동쪽에서 솟아오른 P아파트는 남산기슭 산등성이부터 갉아먹더니 금새 산의 형체조차 가려버린다. 드디어 남산타워 송신탑 맨 꼭대기의 빨간 불빛이 사라지던 날 나는 정든 산을 향해 와인 잔을 높이 들었다. ‘남산이여 안녕!’

 

예전부터 지정된 재개발지역은 투기억제라는 빌미로 덮어두고 수십 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남발하며 집값 폭등만 부추기다가 민심이란 불똥이 발등에 떨어지자 도심공공개발이나 신도시사업 같은 공급확대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앞으로 동네 안 비좁은 땅에까지 수십 층의 청년주택, 임대주택들이 들어차면 조망권이나 일조권 같은 것은 아예 포기하고 살아야 될 듯하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