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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일 논쟁, 무엇을 위한 것인가

대한치과의사협회 기원 ‘갑론을박’ 특별 기고

1981년 총회에서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 창립일을 1921년으로 결정한 이후 잠잠하다 최근 여러 이야기가 불거지고 있는 것은 이 결정에 따르면 당장 올해가 치협 창립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제가 제기되면서 1925년이나 1945년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왔고 나름 조용했던 치과계를 시끄럽게 했다.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 치협은 공청회를 2회나 개최하면서 이 문제에 관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고, 4월 대의원총회에서 문제를 놓고 최종 결정을 내리려 한다.

 

세부적인 내용은 관심을 가지신 분들께선 이미 여러 번 들으셨으리라 생각해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21년 이 땅에 최초의 치과의사 단체인 조선치과의사회가 일본인 치과의사 주도로 설립했다. 둘째, 1925년 한국인 치과의사가 주도한 치과의사 단체인 한성치과의사회가 결성되었다. 셋째, 두 단체 모두 역사적 연속성을 말하기는 어렵고, 1945년 해방 이후 조선치과의사회가 다시 창립되었다. 넷째, 1981년 세 안을 놓고 치협 대의원총회에서 1921년 안을 치협 창립일로 결정하였다.

 

대한치과의사학회 총무이사로서 기존 논쟁과 공청회를 모두 들어야 했고, 여기에서 그간 제기된 역사적 사실을 놓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사실, 본인 의료윤리학, 의료인문학 전공자로서 역사에 대해 따지는 것에 관한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한마디 더 얹는 것은,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치협 창립일은 1945년 12월 9일이다. 안종서 회장을 필두로 한 단체는 1949년 이름을 대한치과의사회로 개칭하게 되므로, 역사를 따진다면 당연히 1945년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1921년과 1925년 안을 놓고 경합을 벌이게 되는 것은 두 안이 지닌 상징성 또는 가치 때문이다. 여기에서 논쟁은 역사와 거리를 두며, 양 측이 역사적 사실을 더 발굴한다고 하여 논쟁을 정리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1921년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이 땅에서 치의학의 역사가 길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다는 데 그 상징성이 있다. 반면, 1925년은 무엇을 바라보는가? 한국인의 손으로 치의학이 시작된 것을 기념한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치과의 역사가 긴 것이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진 않는다. 50년이 되었든, 100년이 되었든 한국의 치의학은 외국으로부터 전래한 것으로, 중요한 것은 그 이후 많은 선배의 노력으로 지금 세계에서 순위를 앞다투는 수준까지 발전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인의 치의학이 출발한 것은 충분히 기념할 가치가 있다고 보는데, 이는 자긍심의 문제이자 한국 치과의사 상(像)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인 치과의사로서, 한국에서 치의학을 배우고 행하며 일익을 담당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필요가 있다. 현재 발생하는 여러 문제, 특히 윤리적 부분에서 산적한 여러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더 그렇다. 일탈하는 치과의사에게 무엇으로 권면할 것인가? 치과의사가 되는 것을 개인 정체성 확립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줄 것인가? 1925년 엄혹한 시기에 이 땅에서 고민하고 고초를 겪으면서도 치의학을 밝혀 나갔던 몇몇 치과의사가 있었음을 기리는 것이, 그들에게 우리의 치의학과 치과의사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할 출발점이 된다.

 

세브란스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이 1회 졸업생을 기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 때 무엇에 중점을 두었는지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의사 7인을 설명할 때 꼭 붙는 수식어는 ‘최초의 의과대학 졸업생’이 아니라,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다. 본인은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들의 이야기를 전했는데, 이들이 최초의 면허 의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의사로서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아갔음을 알고 그 삶을 학생들이 기억하고 기념하며 따르길 원했기 때문이다.

 

다시 묻자. 창립일 논쟁에서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문제는 역사가 아니라 무엇을 기념할 것인지, 무엇을 높일 것인지에 달려 있다. 엄밀한 역사를 따지려면 1945년을 창립일로 하자. 그리고 기원을, 가치를, 상징성을 따질 것이라면, 1921년 안을 택하는 것이 무슨 가치를 내세울 수 있는지 묻고 싶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