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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닝 건 아닝 겨

임철중 칼럼

선친은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4회셨다(1929-1933). 가끔 절대다수인 일본인 틈에서 소수 조선 학생이 겪은 어려움을 회고하셨다. 조선 학생들이 축구팀을 만들고, 유난히 갑질을 하던 일본 학생을 옥상으로 불러내 무릎을 꿇리니까, 싹싹 빌더니 바로 교장에게 고했다. 양쪽을 불러 얘기를 모두 듣고 난 교장은 먼저 괴롭힌 일본 학생에게 더 큰 징계를 내렸고, 그 후로 조선인을 얕보는 갑질은 사라졌다고 한다.

 

협회란 무엇인가? 면허권을 가진 정부 당국은 지시나 감독을 하지만, 수많은 전문 직업인을 일일이 직접 관리할 수 없으므로, 정부가 인정하는 단체에 위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전문 직업인 또한 회원의 요구를 수렴하여, 관에 전달하고 협상할 언로가 필요하므로, 결국 ‘협회’는 쌍방 간에 꼭 필요한 소통의 공적 창구가 된다. 

 

1981년 당시 지헌택 협회장은 협회의 생일을 제정하고, 최초로 창립 60주년 협회사(史)를 발간하였다. 몇 년의 우여곡절 끝에 대의원총회에서 1921년 10월 2일 안(案)을 만장일치의 축복 속에서 통과시킨 쾌거였다. 공교롭게도 지회장과 이종수 의장이 동시에 연임(連任)한 첫 해여서, 두 분 사이에 쌓은 ‘케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 회장은 졸업 후 모교를 뿌리치고 세브란스에 가서 장차 연세치대로 성장할 기틀을 닦았다.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여 국제 학회를 누비며 선진국 학술 문화에 시야가 넓으셨다. 이 의장은 ‘82년 임기를 마친 뒤 클리닉을 서울로 옮겨서, 20대 협회장으로서 다시 한번 치과계를 위하여 일하셨다. 두 분의 치과계를 향한 열정의 시너지가 협회 역사에 굵은 획으로 결실한 것이다.

 

바로 그 해에 필자는 지부 학술이사에게 주는 협회 봉사상을 받았다. 서울대 교정과 수련과 해군 군의관과 충남의대 교수 5년을 마친 61학번에 개업 3년 차의 38세 치과의사가, 협회 기원을 따지는 갑론을박에 관여할 지견도 모자라고 그럴 입장도 못 되었지만, 그 후 총회 대의원과 지부장 및 총회 의장을 역임하면서, 어차피 백점짜리의 정답이 어렵다면, 선배님들의 판단이 과연 현명한 솔루션이었음을 깨달았다.

 

지난 제70차 대의원총회에서 지난 40년 지켜온 치협 창립일을 폐기하고, 내년 총회에서 재논의하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먼저 63%의 찬성으로 변경안을 통과시킨 총회 의결을 당연히 존중한다. 다만 향후 1년 남은 숙려(熟慮) 기간을 고려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첫째 역사의 역(歷)은, 겪을- 지낼- 전할- 력이다.  똑같이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정한 지난 40년의 역사는 어떻게 처리하며, 나아가 과연 역사를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점이다. 둘째 재판의 재심(再審)은 명백하고 결정적인 오류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본건의 쟁점은 그보다는 역사를 보는 시각의 차이로 보인다. 그래서 친일 몰이나 적폐청산의 시류에 영향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적받는 것이다.

 

셋째 국경 없는 의사회나 적십자정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의학은 생명을 다루는 무국적 비 이념의 전문 과학이다. 민족을 앞세우고 자존심에 매몰되면 학문은 과학으로부터 괴리되고 국제 학술교류에서 뒤떨어진다. 배움에는 상하가 없고, 지나친 자존심은 열등감의 다른 얼굴이다. 넷째 협회사 편찬위원회의 세 가지 안을 보자. A안(1921)이 부정되면 당시 조선 땅에서 조선인들 치료에 고군분투한 조선인 치과의사들은 무적(無籍) 치과의사가 된다. B안(1925)도 전신(前身)이라는 의미는 인정하나, 한성치과의사회는 일제하에서 공적 지위가 없는 지역단체(뒤에 문호를 열었다지만)였으므로, 무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C안(1945)은 해방 이후이지만, 미 군정 하에서 이름부터 ‘조선’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대한치과의사협회로 명칭을 바꾼 날을 D안(1949)으로 채택해야 할 것 아닌가? 모든 안(案)에는 다 일리가 있고 허물도 있기에, 이 땅에서 치과 진료를 하는 치과의사의 가입 단체가 탄생한 가장 빠른 날을, 탄생일로 잡는 데에 ‘합의’한 것이다. 혹시 지 선배님이 내려다보시며 충청도 사투리로, “아닝 건 아닝 겨!” 하시지는 않을까?

 

중국은 미국이 돌려준 의화단사건 배상금으로 설립한 영어 강습소를 칭화대학의 기원으로 삼고, 하버드 대학은 목사 양성소로 시작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제70차 의총 결의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내년 제71차 총회에서는 오직 국민 구강보건과 치과계의 앞날만을 위한 사려 깊고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