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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치과의사 이야기

Relay Essay 제2465번째

오늘도 출근하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가 탄 버스는 항상 앞으로만 간다. 후진, 즉 뒤로가지 않는다. 그렇듯 나도 내 인생에서 앞으로 가기만 했다. 다시 말해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부끄럽고 창피한 세월일지 몰라도 비로소 한번 치과의사로서의 지난날을 돌아다 보았다. 치과의사가 된지 얼마나 되었을까. 벌써 39년. 까마득한 옛날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으나 끝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 돌아다보면 지나온 길이 끝없이 보이는 것처럼 치과의사로서 지내온 길이 벌써 한참이었구나 생각이 들자 마자 얼마나 남았을까 하는 잡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치과의사가 될 재주도 없는 내가 지인의 지나가는 한마디에 현혹되어 치과대학에 진학했고 손재주가 유난히도 없어 예과, 본과를 거치면서 실습시간마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검사 받는게 일상사였던 내가, 실습시간의 잔혹함을 못이기고 그만둔 여러 명의 동기들처럼 결단력도 없고 용기도 없어 끝까지 어찌어찌하여 치과의사가 되었고 지금껏 지내온건 무슨 조화이고 과연 누구의 도움이었을까 하며 돌아다 본다.

 

구강외과 수련기간 무모하기도 하고, 어설펐던 젊은 치과의사 시절의 치기는 나를 만나 스쳐 지나가셨던 모든 환자분들께 미안했었다는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설익은 재주의 발현이었지 않나 죄송스런 마음을 가지고 곱씹어본다.


수련시절 설익은 재주에 들떠 수술에 매진했던 나는, 군의관 생활을 거치면서 치과진료행위가 이처럼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치료술식이 많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군의관 생활 3년동안은 다양한 전공을 한 동료들 덕분에 치과의 전분야를 복습하듯, 배우고, 공부하고, 습득하는 시간이었다. 재주가 메주였던 내게 그 기간은 조금이나마 소중한 시간이였다는걸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시절 여러 친구 중 40년지기 대학동기 윤호중 원장을 빼고는 치과의사란 내 직업의 전개과정을 말할 수 없다. 과도할 정도의 학구열, 비상한 손재주, 탁월한 분석력, 명석한 두뇌,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과 지성의 소유자인 내친구 호중이었다.


치과학문에 그다지 큰 매력을 못느낀 나와 달리 그 친구는 개업중임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임상실력도 출중하고. 또한 치과의사를 대상으로한 강의도 많이 하고 다녔다. 내가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로...


거의 매일 통화하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꼭 만나는 사이였다. 윤원장 옆에만 있으면 떨어지는 치과임상의 떡고물만 무진장했다. 개업초기 그의 손에 이끌려 교합 세미나를 10여년간 한 것은 치과 보철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아주 어설펐던 내가 그 친구 덕분에 덜 어설픈 치과의사로 약간 업그레이드된 상황이라고나 할까?


분수도 모르고 날뛰듯 치과계 회무에 깊숙이 관여한 내게 “니가 회원들을 위해 회무를 해도 치과 임상실력만은 회원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며 나를 독려했고 치과임상에 관한 노하우를 만날 때마다 전해주었고 언제 어디서든 우리의 대화는 치과임상 세미나 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가족과 절친인 날 두고 세상을 떠난지 올해로 7년째다. “치과의사는 손으로 치료하지만 손재주로 표현되는 기술이전에 머릿 속에는 항상 그 치료에 대한 이론적 배경과 과학적 배경에 대한 확고한 철학으로 무장해야 진정한 의사란다”며 내게 들려주던 임상철학 그의 소신어린 주장이 자주 생각난다.


아마 천국에서 내려다 보면서 일갈할 것 같다. “석천이 저놈 내가 없으니 시원찮은 실력으로 근근히 먹고 살고 있구먼” 이라고...


내 친구 호중이는 보고 싶다는 말 만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친구였다. 치과계에서 뭔가를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다가, 내 능력도 잘 모르면서 폼(?) 잡다가 협회 회무를 끝내고 2011년 패잔병처럼 병원으로 돌아왔고 그 후 3년이 지나서 내 친구 호중이는 떠났고 다시 또 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치과진료가 어렵다는 정도가 아니라 쉬운 진료가 하나도 없음을 자인한다.

 

어설픈 치과의사인 내게 개업의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부쩍 생각을 많이 해본다. 어찌되든 은퇴할 시점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보자고 마음을 다 잡아 본다.


오래된 습관이긴 하지만 요즈음 딱히 갈 때도 없고해서 끝나고 1~2시간은 기본으로 병원에 머문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를 빼고는...


그날 진료의 복기를 하기도 하고, 앞으로 진료할 환자의 이미지(image) 처치를 해보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 찾아준 환자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며 예의이기도 하다.

 

스피노자의 명언은 아닐지라도 내일 물러나도 오늘까지는 연구하고 노력하는 임상개업의이고 싶다. 치과의사로 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이 허접하고 어설펐으니깐 꼴(?)에 끝에 가서는 유종의 미도 거두고 싶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자기 만족도 쬐금은 해보고 싶어서 열심히 해보는 것 아닌가 싶다.


엉성하고 변변찮은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건 8할이 치과의사 선후배 동료들의 덕분이라고 본다. 잘 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치과 진료 결과의 대부분이 육안으로 확인가능하고, 치료 결과에 대한 환자의 반응 양태가 수 천가지로 나타나는 진료의 속성상 그걸 잘 견디어 내는 선후배님 동료들을 보면 존경과 경의로움이 절로 솟구친다.


선후배 동료 선생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건승하십시오. viva. D.D.S. in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