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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 봉사 ‘투철’…민간외교 ‘첨병’

일본서 ‘공덕비’ ‘명예시민’ 추대

로타리 봉사 ‘투철’…민간외교 ‘첨병’


김 일  진주시 김 일치과의원 원장


진주시·기타미시 로타리 교류·결연‘가교역’
‘진주시 문화상’·치의 납세율 1위 등 모범
“환자에 마음을 주세요” 반세기 진료철학 감동

 

일본 북해도 기타미(北見)시에는 한국의 현직 치과의사의 공로를 칭송하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고 명예시민으로 추대된 기록이 있다.
기타미시가 일본인도 아닌 한국의 이방인에게 공덕비를 세워 가며 공적을 치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 사상 처음으로 명예 시민증을 수여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서 일까? 


공덕비와 명예시민의 주인공은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50년째 개원 중인 김 일 김일치과의원(진주시 한일친선 협회 회장) 원장이다.
올해 팔순을 훌쩍 넘긴 김 원장의 80년 인생 절반은 모범적인 치과의사로 삶을, 나머지 절반은 로타리클럽에서의 봉사와 한일 친선 민간 외교 활동으로 규정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5년 서울치대를(9회) 졸업한 김 원장은 고향인 진주시 중안동에 지난 61년 개원했다. 올해로 개원 50년째를 맞는 셈으로, 경상남도에서 활동 중인 현직 치과의사로서는 최고령자다.
김 원장이 평범한 치과의사로서 길을 벗어난 것은 지난 66년 진주시 로타리클럽 창립 회원으로 가입하고 ‘직업봉사’에 나서면서 부터다.


이후 그는 70, 80년대 천직인 치과의사의 재능으로 수 많은 무의촌 진료봉사활동에 나서게 된다. 특히 외국 로타리클럽과의 친선교류를 통해 국제사회에 봉사하는 등의 친선교류 중요성에도 눈을 뜨게 됐다.


“일본 기타미시와의 우정은 지난 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타미시 로타리와 진주시 로타리 간 자매결연을 추진했어요. 이후 100회 넘게 기타미시를 방문한 것 같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지난 85년에는 진주시와 기타미시 간 자매결연도 맺게 됐지요.”


김 원장은 초창기 기타미시를 방문할때마다 씁쓸함이 느껴졌던 부분은 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온 한국인들과 그 후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대우였다고 했다.
기타미시 로타리클럽 인사들은 물론 시의회 의장이나 공무원들과 신뢰를 쌓은 김 원장은 일본 발전에 기여한 한국인 교포들에게 차별대우를 하지 말 것을 간곡히 촉구하고 한국인 교포 후손과 한국유학생 등 외국인들에게 주어지는 많은 장학금을 기타미시에 자주 기부하게 된다. 이후 한국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국 요리 책부터 역사서 까지 수 많은 도서를 기타미시 시립도서관에 기증했다.


현재 기타미시 시립도서관 한 켠에는 김 원장이 기증한 도서를 한데 모은 ‘김일 문고’가 있을 정도다. 이후 양국 로터리클럽 간의 친선교류는 결국 진주시와 기타미시 간의 자매결연으로 이어졌다.
로타리 회원으로 26년 봉사를 한 김 원장이 지난 87년 진주 로타리클럽 3720지구 초대 총재와 ‘진주시 한일친선협회’회장직을 맡으면서 진주시와 기타미시의 젊은 세대를 위한 장학사업과 친선교류 행사는 더욱 무르익어 갔다.


김 원장의 이 같은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헌신적인 역할은 한일 양국에서 인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92년에는 진주시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진주 시민으로는 최대 영예인 ‘진주시 문화상(지역사회 개발)’을 수상하기도 했다. 98년과 2003년에는 반가운 소식이 기타미시로부터 날라 왔다. 양 도시 간 우호 증진에 기여하고 봉사에 매진한 공로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기타미시가 공덕비도 세우고 명예시민으로 위촉하겠다는 것이다.


“과분한 대우에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마음에서 부담감을 버리고 명예시민과 공덕비 건립을 받아 들였습니다.”
클럽봉사, 사회봉사, 직업봉사, 국제봉사 등 로타리 정신을 삶의 좌표로 잡아 살아 왔다는 김 원장. 그는 답답할 정도의 모범 치과의사로서 길을 아직도 걷고 있다.


한창 개원이 잘된 젊은 시절 몇 년간은 손가락 지문이 달아 희미할 정도로 환자진료에 나섰으며, 전국 치과의사 중 납세율 전국 1위를 기록한 적도 있다.
현재도 아침 6시 30분에 1년 열 두 달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 문을 스스로 열고 스탭들이 출근하는 9시까지 치의학 전문서적을 탐독하거나 편지나 일기를 쓰는 생활을 50년째 지속하고 있다. 김 원장에게 어떻게 하면 건강을 유지하며 50년간 진료를 하고 병원경영도 잘 할 수 있는 비법을 물었다. 대답은 너무 평범했다.


“절대 진료시간에는 자리를 비우지 마세요. 두 번째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료지식을 향상 시키고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진료를 하세요. 세번째는 환자에게  마음을 주세요”였다.
진주시치과의사회 회장, 경남지부 부회장, 경남지부 대의원총회 의장을 지내며 경남 치과계 회무 발전에도 노력한 바 있는 김 원장.
치과의사로서 로타리안으로서 항상 되내이며 신념으로 삼는 글귀가 있다고 했다. 
“평생토록 길을 양보해도 백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생토록 밭두렁을 양보해도 1마지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소학에 나오는 잠언의 일부분이다. 

박동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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