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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예술’ 세계가 반하다-박영숙 사전치과의원 원장

‘규방예술’ 세계가 반하다

 

한국자수박물관  관장
박영숙 사전치과의원 원장

 

“몬드리안이나 클레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다!” 프랑스 파리 기메 박물관장인 장 프랑스와 자리그 씨가 우리 보자기의 아름다움에 취해 던질 일갈이다.
이 같은 우리 규방문화의 독창적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반평생을 바친 치과의사가 있다.
박영숙 원장(사전치과의원)은 지난 40여년 간 3000여점의 자수, 보자기 등 규방 유물을 수집하면서 역설적으로 국내 보다는 해외에서 그 가치를 더 인정받는 문화유산의 체계를 확립해 왔다.


지난 7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박영숙 수집 한국전통 자수 500년전’을 시작으로 73회의 국내외 전시를 소화한 바 있는 박 원장은 서양미술의 추상화를 압도하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예술성과 가치를 입증해 왔다.


지난달 29일 인터뷰를 위해 찾은 박 원장의 치과는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는 한국자수박물관(공동관장 허동화, 박영숙)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접수 데스크 뒤에는 새삼스러운 창호문이 기자를 맞았고 이미 20여년에 준하는 세월을 담은 치과 인테리어는 고즈넉한 ‘시심(詩心)’을 간직한 듯 보였다.


박 원장은 “자수는 직물 위에 실과 바늘로 문양을 구성한 예술품”이라고 규정하며 “원래 우리 어머니들이 자기 가족의 장수, 출세 등을 기원하는 기복적인 염원을 담아 만들어 낸 한국 미의 정수”라고 자수의 정신을 표현했다. 


특히 박 원장은 “우리 자수는 실크가 많아 천 자체가 아름답고 색의 배열에 있어 오히려 그림보다 낫다”며 “또 실의 중복을 통해 구현되는 입체적인 색감과 표현력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자수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과연 치과의사와 자수, 보자기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그는 왜 다른 것이 아닌 규방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박 원장은 이에 대해 치과의사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예술성, 심미성을 구현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치과의사라면 예술적인 감각이 있어야 하고 이를 공부하기 위해 가장 친숙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수, 조각보 등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물론 기능이 우선돼야 하겠지만 지금도 진료를 할 때는 무엇보다 심미적인 측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박원장의 이 같은 의도에서 출발, 50여 차례나 진행된 국외 전시에 대해 해외 주류 예술계 인사들이 보인 반응은 어땠을까.
“이 전시가 끝나면 호주 디자인의 경향이 보자기의 영향을 받을 것”(시드시 파워하우스박물관 관장), “한국여성이 창출해 낸 섬유예술에는 무한한 아름다움과 신비가 있다”(일본 효고 현립 근대미술관장), “다양하면서도 감동적인 창의성과 수준높은 예술성을 보여준다”(프랑스 파리 기메 박물관장) 등 최대의 찬사가 쏟아졌다.


기실 익숙한 우리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보자기요, 조각보였건만 해외에서의 평가는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단순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반향을 넘어선 것이다.
또 해외 현지 교포들에게도 조국 문화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하나하나가 남다른 감동으로 와 닿는 전시였다고 박 원장은 회고했다.


최근에도 박 원장의 전시는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달 4일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치의학박물관에서 시작된 2010 구강보건의 날 기념 ‘이렇게 아름다울수가!-규방문화를 세계에 알린 박영숙 전’은 졸업 55년 만에 모교를 찾은 박 원장의 소회를 담아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하반기에는 국내 모 백화점 초청전에 이어 11월 10일부터 약 3개월간 스페인 마드리드 복장박물관에서의 전시가 진행된다. 1월 이후에는 역시 스페인 빌바오 등에서의 순회전시도 타진 중이다.


해외 전시는 많은 돈이 드는 작업이다. 아무나 초청하지도, 초청받지도 못한다.
박 원장의 남편인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은 “(해외전시 비용을) 한번에 5억 정도로만 추산해도 50여차례의 전시를 통해 우리 정부 및 관련 단체가 지원한 돈이 최소 2백50억이라는 계산이 나온다”며 “우리 전통 규방 문화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그와 같은 정성과 노력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최근까지 진행된 해외 전시를 돌아보면 관람 인원이 7백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추산되는 경제적 파급효과 뿐 아니라 인류 문화 및 화합을 위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매해 2, 3회의 해외 전시를 이어가는 등 세계적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자임해 온 박 원장이지만 근심도 적지 않다. 향후 이 같은 우수한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주체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여러 차례 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제대로 소화할 만한 전시 공간을 갖춘 주체가 없다. 나라에서도 벌써 20년째 난색을 표하고 있고, 기업의 경우 상업적인 의도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보자기는 내 삶의 상징”이라며 수십 년을 ‘바늘과 실’의 예술을 알리는 데 바쳐온 이 치과의사의 열정과 노력에 이제 우리 사회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윤선영 기자 young@k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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