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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정 사비나 수녀] 다시 모험에 나서면서

종|교|칼|럼|삶


홍현정 사비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다시 모험에 나서면서


서울 명륜동에 있는 저희 수녀원에는 한 달에 한 번 귀한 손님들이 찾아오십니다. 함께 기도하고 자기 삶을 나누면서 오늘날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길을 함께 찾아가는 도반들의 모임인데, 지난 토요일에 열아홉 분이 이 모험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왜 모험이냐고요? 우선, 이 바쁜 사회에서 한 달에 한 번 한나절을 정기적으로, 꾸준하게 시간을 따로 떼어내려는 결심 자체가 쉽지 않은 결단임을 독자들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일이나 취미 등, 공동 관심사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열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 역시 모험입니다. 나를 연다는 것은 바로 ‘나’의 핵심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나의 약함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에게 보완 받는 것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 웅크리고만 있으면 만남은, 만남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성장은 애초에 가능성부터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첫 모임에서 저는 이 시도가 던지는 또 다른 도전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거저’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들어보셔요.


이날 저희가 저녁을 준비해 대접해 드렸습니다. 솜씨야 살림하시는 분들에 비기겠습니까만 그래도 정성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모두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맛있게 드셔서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러면서도 저희의 수고를 염려하시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당부들을 하시더군요. 하도 그러시니, 왜 저희가 굳이 식사를 준비해서 드리려는지, 그 근본 동기를 스스로에게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들이고, 또 쉽지 않은, 그러나 소중한 갈망을 실행에 옮기고자 오시는 분들이라서 식사를 준비해 대접해 드리고 싶은 자연스러운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자면, 저희의 정성과 힘, 얼마 되지 않으나마 실질적인 비용까지도 포함하여 무언가를 ‘거저’ 드리는 것을 이분들이 체험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더군요.


실상 우리 삶에서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모두 ‘거저’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공기, 물, 흙 등 자연이 그러하고 어릴 때부터 받아온 사랑, 우정, 믿음 등이 또한 그러합니다. 이런 것들이 ‘거저’가 아니라 ‘조건부’로 주어질 때 우리는 무언가 중요한 결핍을 경험하고, 심지어 상처까지 받습니다.
나날의 모든 것이 ‘거저’ 받은 선물임을 고백하며 감사하는 것은 굳이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성숙한 사람의 표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희가 드리는 조그만 정성이 ‘거저 주시는’ 하느님의 그 너그러움을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얼마를 주었으니 얼마를 받겠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겠지 등등의 계산 없이 그냥 마음이 시켜서 기쁘게 내어주는 것. 그릇도 역량도 크지 않은 저희로서야 그리 큰 것을 드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작은 ‘거저 줌’의 행위를 통해 하느님의 큰 ‘거저주심’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거저’ 주어지는 것으로 채워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거저’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되겠지요.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좋습니다.

모든 것이 교환가치로 결정되고,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결과를 맺는 것이 추구해야 할 목표라 가르치는 이 소비사회에서 ‘거저 줌’의 자세를 선택하고 전파 하는 것, 이것 또한 모험임을 잘 압니다. 자칫 손해만 보고 말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러한 모험에 나서느냐에 참된 행복이, 조금 더 존재에 근거한 문화가, 조금 더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 건설이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연휴, 많은 분들이 여행을 떠나셨다고 하더군요. 이제 내면으로의 모험을 떠나보심이 어떠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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