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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요한나 수녀] ‘나’라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종|교|칼|럼|

  

김수영 요한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나’라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모 프로그램에서 손모양을 종이에 그린 모습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테스트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심리학자는 성격 테스트를 위해 선발된 대학생들에게 흰 종이를 나누어 주어 그 종이에 왼손을 올리고 펜으로 손가락 모양 그대로 왼손의 모습을 대고 그리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그렇게 그린 손 모양으로 성격을 알 수 있다는 것에 의아해 하면서도 손을 그려서 심리학자에게 제출했습니다. 심리학자는 손이 그려진 종이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가 한참을 있다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성격분석을 한 종이를 나누어 주고 읽게 했습니다. 자기의 성격을 본 학생들은 하나 같이 ‘완전 내 모습이네…’ ‘신기하다, 어떻게 손 모양만 가지고 사람의 성격이 그대로 나오지..’ 등등의 감탄사를 연발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학생들의 성격 분석지의 내용이 똑같았습니다. 내용은 적당히 뭐라고 적혀 있었는가 하면 ‘나는 원래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편이다. 성격이 활발하고 외향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실은 내향적이다. 때로 부당하게 대우 받아도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동정심도 많지만 다른 이들은 냉정한 성격으로 오해한다. 남들은 자신을 잘 이해하지 못하며 나는 완전한 인간관계를 꿈꾸고 있다. 자존심이 강하다. 남을 의식하는 행동을 한다등...’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동의하는 내용이 나는 자존심이 강하다라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근자에 별로 시답지 않은 일로 남들 보는 앞에서 무안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당했다고 생각하는 억울한 일들은 생각해보면 상대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지만 내 감정은 상하고 또 상한 감정은 풀지 않으면 오래 남더군요. 그렇지만 이제 계속적으로 그런 일들을 겪고 보니 세상 일이라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산뜻하게 흘러가지 않음을 점차로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내 자존심을 위해서 싸우는 것도 좀 시들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루는 내가 겪었다고 생각하던 억울한 일들을 영화 장면처럼 되감아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하다 갑자기 깨달은 것은 그 모든 일에 공통으로 들어간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건마다 등장인물도 다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인생의 시간대도 다 달랐지만 빠지지 않고 꼭 끼어 있는 것은 바로 ‘나’ 였습니다. ‘내’가 저 일만 안 맡았었도, ‘내’가 그 사람만 안 만났어도, ‘내’가 그 시간에만 안 있었어도... 하고 생각하다가 ‘나’라는 고유성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구나를 알게 된 것입니다. ‘나’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저 마음 너그럽기로 소문난 A라면 전혀 대응책이 달랐을 것이고 다른 일이 생겨났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나’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다른 반응이 일어나고 아니면 요즘말로 쿨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고, 상황이 반전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문제라는 것이 있다면 ‘나’ 아니면 생겨나질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라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이는 은연중에 왕자이고 공주이고 왕이고 왕비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시답잖은 일들이 일어날 때 쿨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그저 너무나 평범한 인간일뿐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자기만의 왕좌에서 내려오기가 그렇게 힘이 든 것을 느낍니다. ‘내’가 왕자가 아니고 공주가 아닌 평민으로서 사는 삶이 얼마나 편하고 숨쉴만한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내가 너를 이해하고자 할 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쉬운 것은 아니었고 시간도 걸렸지만 그리고 평범한 자신에 대해 크게 실망도 했었지만 자기를 포기하니까 참 편안해 짐을 느꼈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젊을 때보다 나이가 들어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대하기가 편해지는 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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