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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순 데레사 수녀] 사랑이야기

종|교|칼|럼|삶


노석순 데레사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사랑이야기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했습니다.
둘은 혼인해 살게 되었습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소는 육식을 하는 사자에게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초식을 하는 소에게 날마다 맛있는 살코기를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그러나 소와 사자는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하는 말,
“난 최선을 다 했어.”

  

  

어떤 책에서 읽은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둠으로 제 삶이 무질서해질 때, 마음을 다독여 주는 등대 불입니다. 멈추어 서서 나 아닌 누군가를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상대방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상대방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서 사는 무인도 일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지만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나의 기준, 내가 중심이 되어 생각하는 최선,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원하는 때에 행하는 최선, 상대의 필요와 마음을 못 보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고 맙니다.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을 품고 견디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내 가장 귀한 것을 오직 사랑 때문에 온전하게 거저 주는 소중한 마음입니다. 몇 해 전에 병원으로 환자방문을 다닐 때 만난 어느 부부가 생각납니다. 아내가 췌장암을 앓고 있었고 남편이 간병을 하고 있는 평범한 젊은 부부였습니다. 서로의 필요를 다 아는 듯 말수가 없었습니다. 되돌아 나오는 저에게 남편의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아내의 고통을 그저 바라 볼 수밖에 없어, 견뎌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 보다 자신이 대신 죽는 것 보다 덜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기도를 부탁하였지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이토록 아내를 깊이 바라본 적이 없었다며 이제는 말을 나누지 않아도 무엇이 필요한지 안다고 하셨습니다.
수녀원 뒷동산에는 가을이 깊어져 갈수록 은행, 호두, 밤이 익어 갑니다. 토실토실해 제법 묵직한 알밤을 손에 넣다가 주위에 갖가지 열매들을 제 마음에 담아 봅니다. 열매 안에 담겨 있는 희생, 수고, 그리고 사랑을 바라봅니다. 어쩌면 혹독한 겨울 날, 연약한 잔뿌리가 물길을 찾아 바늘 틈 같은 공간을 비집고 아래로 내려 갈 수 있었던 것도, 연초록 새 순이 견뎌내야만 하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도 열매 안에 깃든 생명이 주는 가능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딱딱한 열매가 품고 있는 씨앗의 생명력이 주는 희망과 사랑의 움직임….


한 바구니에 가득한 열매를 바라보며, 인간들에게 다른 동물들에게 내어주는 자연의 사랑에 잠겨봅니다. 필요한 만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필요를 채워준 뒤 저를 있게 한 대지로 다시 돌아가는 자연의 행보는 또 다른 생명을 자라게 할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다른 이를 위해 버릴 줄 알기에 꽃은 다시 피고, 열매는 다시 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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