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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희 플로렌스 수녀] 하얀 눈과의 모험이야기

종|교|칼|럼|삶

이 연희 플로렌스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하얀 눈과의 모험이야기

  

올해는 무척이나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특히나 유럽의 여러 공항들은 이로인해 문을 닫았지요. 이곳 양들의 섬의 12월의 풍경도 오랫동안 하얗게 바뀌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유치원에서 39년을 일한 후 정년퇴임을 하는 67세의 한 여 직원, ‘오드뵈르’를 위해 마지막 날 모든 직원이 다 함께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면서 선물과  송별사 등으로 공식 예식을 마친 셈이었지요.


그러나 그녀가 모르는 깜짝 선물이 그녀와  같은 반에서 일하는 토브의 집에서 일주일 후에 기다리고 있음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17일 금요일 저녁, 그녀를 제외한 모든 직원들이 7시까지 토브 집에 모여와서 다락방에 숨어 있어야 했고, 7시 반에 오로지 같은 반의 여직원 셋만이 모이는 걸로 알고 있는 오드뵈르는 토브의 남편이 자가용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녀가 다락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토브와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린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고, 숨막히는 순간을 견뎌야만 했지요.


그녀의 발이 다락방에 닿는 순간, 그녀는 어둠속에 말똥거리는 수많은 눈들과 그림자들을 보고는 기절초풍하며 놀라움의 고함을 질러댔고 우린 지금까지 참아온 웃음 보따리를 속시훤히 터트렸습니다.


호텔에서 배달된 음식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넘쳐나 우리가 먹고도 엄청 많이 남았습니다. 눈이 쌓인 하얀 밤이 무르익도록 화기애애한 시간들이 흘러 즐거운 성탄과 새해를 위한 복을 빌어주고 받으며 하나 둘 떠나갔습니다.


저와 마리사 수녀는 하도 눈이 많고 토브가 사는 곳은 페로에 제도의 수도인 ‘토르사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동네여서 자동차 운전을 포기하고 택시를 불러서 왔었지만 집에 돌와 올 때는 다른 이들의 차에 동석을 했지요. 저를 집까지 태워준 한 여직원의 남자 친구는 생전 처음으로 수녀를 자기 차에 태웠다며 모든 이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 했다는 소문을 나중에 들었습니다. 


저의 하얀 눈과의 모험 이야기는 바로 다음 날에 이뤄졌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였는데 토브가 전화를 걸어 어제 남은 음식중의 어느 정도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다른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한 후에 제가 다시 전화를 하기로 했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야 그녀의 전화번호를 제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난감했습니다. 알고 있는 마리사 수녀는 침대에서 쉬는 중이어서 그녀를 깨우기보다는 제가 직접 차를 몰고 음식을 찾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큰 도로에는 눈이 치워져 있었고  마침 눈내리는 게 그쳐서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나섰지요.  그런데 그녀의 마을로 향하는 길을 너무 일찍 회전을 해서 눈이 두툼하게 쌓인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는 순간 제가 차를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차가 저를 운전하면서 제 마음대로 가려하자 저는 잔뜩 겁을 집어 먹었습니다.


거기다가 저의 바로 뒤에 다른 차가 다가오고 있었거든요. 겨우 되돌려 큰 길로 나와 바른 길로 회전을 해서 잘 나간다 싶었는데 큰 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하얀 눈으로 얼어 붙어 있어 차가 조금은 통통거리며 나아가서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운전하고 있는지 정신이 번떡 들더군요.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온 몸이 굳은 채 천천히 운전을 해서 그 유명한 마을의 어귀를 들어와 그녀의 집 앞에 당도하는 순간 두툼한 눈에 파묻혀 차의  시동이 꺼져버렸습니다.


이를 내팽개쳐두고 저는 그녀의 집으로 뛰어들어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대며 다짜고짜 하는 말이 다시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녀는 어리벙벙했고 저의 상황을 들은 뒤에 그녀는 그들이 음식을 우리 집으로 가져다 줄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저는 이야기로만 들었던 두 가지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 겁을 잔뜩 집어 먹으면 배가 아파 온다는 것과  제가 사는 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에 있는 마을이 어떤 곳인지를… 그래서 결국은 우스운 광경이 벌어져야만 했습니다 : 음식을 실은 후에 토브의 남편이 저의 차를 하얀 도로까지 운전해 주었고 그녀의 딸이 자신의 차로  그를 데리러 와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우스운 광경은 여기서 끝나지가 않았습니다. 집앞에 다 와서는 주차장을 바로 눈 앞에 두고 녹은 눈이 질퍽하게 쌓여 있는 입구에서 저는 차를 앞으로 뒤로를 연속 되풀이 했지만 계속 제자리였습니다. 마침 제 뒤에 다가온 이웃의 부부의 차가 마을길로 들어서더니 멈추고는 아내가 그들의 차를 운전해 갔고 남편은 제게로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바퀴 밑의 눈덩이를 파서 걷어내고는 제가 운전을 하고 그분은 뒤에서 차를 밀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살이는 서로를 생각해주고, 위해주고, 도와주는 발길의 멈춤과 따뜻한 마음이 있어서 행복한 사랑살이가 됨을 체험합니다. 다음 날 일요일이 저의 식사준비 당번이었는데 이 모험 덕분에 간단하게 해결된 셈이지요: 샐라드를 위해 대파의 하얀 부분만을 다져 한국식 양념장만 만들었고 가져온 음식을 데피기만 했으니까요. 


문득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유명한 작가의 책의 제목이 떠오릅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참으로 깊이 생각해 보고 묵상해 볼 만한 주제입니다. 이 물음에 대답하느라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살펴 본  천사의 답은 “사랑”이라고 아주 오래 전 소녀 시절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새해엔 사람이 살 만한, 아니 모든 피조물이 함께 살 만한 따뜻하고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발길을 잠시 멈추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여유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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