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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수녀] 어떤 질서에 관한 소고

종|교|칼|럼|삶


김수영 수녀
<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어떤 질서에 관한 소고


아주 오래 전에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중간부터 본 것이라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주인공이 많은 일을 겪은 뒤  맨 나중에 하늘을 가리키며 ‘저기 위의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나봐’라고 말을 하는데 그 대사는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힘든 일을 겪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깨달은 바가 있어서 하는 말이었으니까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그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상으로 주어졌다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나는 내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무에서 내가 창조되어 생명을 받았다는 것과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있는 많은 것들이 예를 들어, 공기, 물 같은 것들이 잘 구축되어 있다는 것도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 우주가 질서 정연하게 돌아간다는 것두요. 자연 질서는 물론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자연 질서를 존중하면 그대로 자연은 그 안에 속해 있는 우리를 돌보아 줍니다. 어기면 어기는 대로 되갚아 주기도 하구요.


자연 질서뿐 아니라 인간 마음에 새겨진 질서도 있다고 보입니다. 좋은 일, 착한 일을 하면 기쁘고 뿌듯하지만, 나쁜 일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 땀이 나고, 양심에 가책이 오고 하는 것을 보면요. 건강에도 나쁘지요.


이렇게 모든 것에 질서가 지어져 있는 것을 직관하면서 많은 작가들이 양심의 질서를 지킬 때의 좋음과 지키지 않을 때의 나쁨에 관한 글들도 많이 썼습니다. 고전 문학들이나 좋은 내용의 책이라고 칭찬 받는 책들을 보면 대부분 그러하죠. 양심과 고귀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대적, 대립의 서사를 보여주고 결국에는 누가 이기는가를 보여 줍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에게는 마음 안에 근본적인 질서가 있다는 것을, 그것이 무엇이고 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작가들은 이야기 해주고 싶어하는 듯 합니다.


문학들에서 제일 많이 나타나는 질서는 아마도 상선 벌악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만이 지상에서 유일하게 지성을 가지고 혼란을 겪는 동물입니다. 본능도 있지만 본능을 넘어서는 의지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 사건들이 생겨납니다. 이런 혼란 가운데서도 내가 왜 이 세상에 와 있나를 생각하면서 자연의 질서 안에 보호를 받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내 생명을 시작한 어떤 힘이 내 생명을 거두러 올 때 내가 정말 다른 질서들과 조화롭게 살았는가를 체크해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빅뱅이 있었을 때 수많은 물질 반물질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 물질-반물질들은 서로 부딪혀 0이 되어 사라졌는데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남은 물질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존재하는 이 몸은 물질입니다. 그래서 우주 바깥 어딘가는 반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인 이 몸이 이룬 것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 수많은 반물질로 또 존재하면서 나타날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뭔가 목적을 위해서이고 그 목적을 이룬 다음 우리는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영화의 그 주인공의 말처럼 저 위의 누군가 나를 사랑하니까 내게 생명을 주고 많은 것을 마련해 주어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한 해, 무언가 나를 있게 한 그 사랑에 용기를 가지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나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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